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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민주노총도 '타도 대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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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대로는 민주노총도 '타도 대상' 된다"

[위기의 민주노총, 길을 묻다③]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으로 지도부가 불명예스러운 총사퇴를 했다. 이번 사건은 그 발생부터 이후 처리 과정까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도부는 물러났지만, 그것이 이번 사태가 드러낸 민주노총의 위기까지 정리해주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은 민주노총의 문제가 안팎으로 심각함을 대외적으로 확인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운동의 위기' 논의를 통해 수차례 지적됐듯이 민주노총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염두에 둘 때, 이런 상황은 노동운동은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연속 인터뷰를 진행한다. 민주노총에 애정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전·현직 노동운동가를 만나 20년 민주노조운동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설 민주노총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와의 인터뷰에 이어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만났다.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정인열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과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편집자>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4년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민주노총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던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과거를 염두에 두면 이번 성폭력 사건과 지도부 총사퇴 이후의 민주노총에 대해 묻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이수호 지도위원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내 생애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내는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평소에 자주 쓰고 다니던 모자도 쓰지 않는다. 혹 다른 이들이 '무엇인가 감추고 싶어 모자를 쓴 것 아니냐'고 오해할까 싶어서다.

그만큼 이수호 지도위원은 착잡해 보였다. 애정이 많았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더 엄격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사퇴를 하면서도 "은폐, 회유 시도는 결코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그는 "지금 민주노총은 입이 백 개, 천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 관리 능력이 집행부의 지도력이고 조직의 자정 능력이라고 할 때, 민주노총은 그 점에서 미숙했다"고 평가했다. 수감 중인 위원장까지 물러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것은 "그만큼 조직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자정 능력이 바닥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 이수호 지도위원은 "이대로라면 20년 전 한국노총이 '타도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민주노총 또한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이수호 지도위원은 "단위노조부터 총연맹까지 '지도부'는 일종의 특수 계층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 번 현장을 떠나 노조 간부가 되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돌아가면서 집행부를 맞는 일종의 '회전문 인사'에 대한 얘기였다. 당연히 집행부가 일종의 권력이 되고 기득권이 된다.

이수호 지도위원은 "이대로라면 20년 전 한국노총이 '타도 대상'이었던 것처럼 민주노총 또한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규직끼리) 선을 그어 놓고 (비정규직, 실업자는) 그 이상 넘어오지 못하게 한다"며 무게중심부터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시 일어날 것으로 본다"며 희망을 얘기했다. "펀치를 맞고 다운됐지만 KO패 당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이 다 사라졌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는 것은 다시 민주노총의 몫이다.

한편, 일부 언론에서 피해자를 찾아가 회유한 지도위원으로 그를 지목한 것을 놓고도 "피해자도 피해자 대리인도 만난 적도, 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이수호 지도위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말도 안 되는 성폭력 사건, 노동운동과 민주노총 전체의 잘못"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민주노총의 전 위원장이자 지도위원으로 이번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이수호 : 몇 가지 사건이 엉켜있었다. 경찰이 이석행 위원장의 수배와 관련해 은신처 제공자들을 조사 중이었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주경복 캠프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성폭력 사건은 그 와중에 일어났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권투에서 말하는 '카운터 블로'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미 보수단체와 조·중·동, 이명박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매일 불안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힘을 갖고 얼마나 버티고 공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한 번의 실수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잘못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났다. 충격이 너무 컸다. 노동운동 선배이자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 내가 부끄러웠고 책임감 때문에 힘들었다. 노동운동과 민주노총 전체의 잘못이었다.

사실 내가 모자를 잘 쓰고 다닌다. 그런데 이 사건이 벌어진 후 모자를 쓸 수가 없었다. 혹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모자를 썼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다. 이런 때일수록 나를 드러내고 손가락질을 당하든 매를 맞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지도위원이니 다른 이들보다 사건을 먼저 접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 처음 사건에 대해 들었나?

이수호 : 언론에 보도되기 직전에 알았다. 민주노총에 종종 들르기도 하고 같이 의논도 하지만, 최근에서야 전교조 위원장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듣자마자 '신속하게 원칙대로 처리해라'고 조언해 줬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보도된 내용을 보니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사건 발생 이후의 처리 과정을 (피해자 측 대리인 기자 회견을 통해) 알게 되면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민주노총의 조직 역동성, 자정능력의 한계 드러냈다"

▲ "민주노총은 입이 백 개, 천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거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조언도 했다."ⓒ프레시안
프레시안
: 사건 자체보다 피해자 측이 "민주노총이 은폐·축소하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노총에 결정타가 됐다. 민주노총은 억울하다는 입장인데 어떻게 판단하나?

이수호 : 이석행 위원장의 수배와 이 사건이 얽혀 있어 그런 과오를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우선의 원칙과 범인은닉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려던 것이 뒤섞인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입이 백 개, 천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거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조언도 했다. 지도부에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 한 마디가 확대되고 그 자체로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 20년 역사에 지도부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게 네 번째다. 이번 사태가 민주노총 안팎에 미칠 영향은 어느 수준일까?

이수호 : 민주노총이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이 됐다. 조직 전체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민주노조운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 받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 안 그래도 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런 '전시(戰時)'에 가해자가 소위 '이적 행위'를 했다.

더구나 위기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집행부의 지도력이고 조직의 자정 능력이라고 할 때, 민주노총은 그 점에서 미숙했다. 상황이 더 악화된 이유다. 그만큼 조직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자정 능력도 바닥이 된 것이다. 이 사건 이전부터 그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지도부 및 활동가와 현장이 괴리됐다.

게다가 정파 간 갈등과 대립은 서로의 힘을 약화시켰다. 민주노총 활동가들의 배출 구조가 없어 인력이 고령화되고 관료화되다 보니 유연성이 떨어졌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새로이 생겨난 비정규직이나 실업 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의 곁으로 돌아가서 그들과 함께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따로 놀고 있다.

현장에서 고통에 맞서 싸우는 현장 노동자가 중심을 이루는 노동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런 원인들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제대로 혁파해야 한다.

사건 이후 전 위원장들이 따로 모여 반성을 많이 했다.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이 모두 5명인데 한 자리에 모인 것이 처음이다. 지금 민주노총이 그런 상황이다. 사실 정파는 서로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친하다. 그런데 운동의 잘못된 풍토 속에서 전직 위원장으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 지도위원은 너무 참담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름은 지도위원이지만, 행사에서 앞자리 앉아 있는 것 외엔 하는 일이 없었다. 중요한 일에 개입할 수도 없었다. 그런 점을 함께 반성했다. 스스로를 돌아본 것이다. 앞으로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을 거면 이름도 걸지 말자는 다짐도 했다.

"비정규직 입장에선 민주노총도 20년 전 한국노총처럼 기득권"

프레시안 : 그 자리에서는 무슨 얘기가 많이 나왔나?

이수호 :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를 함께 고민했다. 심지어 이대로라면 민주노총도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노총은 기득권이다. 잘난 척 하고 선을 그어 놓고 그 이상 넘어오지 못하게 한다. (노동운동을) 수십 년 해 왔다는 권위를 내세워 자기들끼리 돌아가며 해먹는 것으로 비춰진다. 결국 20년 전 한국노총이 노동자들에게는 아무 도움도 안 되니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주노총을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이번에도 정파 간에 대충 타협을 통해 미봉책으로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면 민주노총의 수명을 얼마 간 더 연장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 아예 빨리 망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우리라도 벗어버리고 처음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 "대충 타협을 통해 미봉책으로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면 민주노총의 수명을 얼마 간 더 연장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프레시안

"더 이상 힘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으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이대로가 안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구체적 과제도 함께 논의됐을 것 같은데?

이수호 : 근본적으로는 비정규 노동자 등 소외 받고 있는 이들을 중심에 세우고 그들의 생존권을 살리는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힘 있는 정규직 대기업 노조 중심으로는 안 된다. 땅 따먹기 식의 정파 싸움도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사회적 의제와 관련해서도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문제라면 대안을 내야 한다. 총고용 보장이라고 할 때도 일자리 나누기까지 연결이 돼야 한다. 그런 내용에 대해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와 같은 수단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이 기본이다.

보궐 선거는 그런 고민의 실천 과정이어야 한다. 각 정파에서 각기 후보를 내고 사람들을 또 그에 맞게 줄서게 만들고 서로 욕하는 상황이 되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엉뚱한 곳에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느라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근본적인 과제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통합 지도부 구성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보자는 얘기를 했다.

프레시안 : 현재 일정표대로는 통합 지도부 이후 올해 말에 또 한 번의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것도 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직선제 선거다.

이수호 : 너무 형식에 얽매여 무조건 직선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어렵지만 합의해서 하면 되는 것이다. 통합 지도부의 임기를 1년 정도 연장해 제대로 준비하고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

프레시안 : 직선제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우려가 많다. 꼭 직선제를 해야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이냐는 반론도 있다. 위원장 직선제에 대한 입장은?

이수호 : 지향해 나가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전교조는 처음부터 직선제로 위원장을 뽑았다. 물론 단일직종이라 유리한 점이 있지만, 전국에 학교가 1만 개인 전교조보다 대공장은 더 쉽다. 그런데 서비스 노동자나 공무원, 건설 노동자 등은 어려운 측면이 많다.

그래서 하루 빨리 각 연맹과 지역본부의 실정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가능한지 아닌지를 검토해 봐야 한다. 힘들겠다면 조금 더 준비를 해서 하는 것으로 늦추는 것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합의다. 국민들이 보기에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갈라서지 않고 힘을 모으려고 애쓰는 구나 싶어야 신뢰를 다시 보내줄 것이다.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들의 근본적인 애정이 다 사라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보수 진영에서 민주노총과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빨리 추슬러야 한다. 펀치 맞고 다운 됐지만 KO패 당할 수는 없지 않나.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피해자 찾아간 적도, 대리인과 통화한 적도 없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 대리인과도 만난 적도 통화를 한 적도 없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다른 얘기긴 한데, 피해자 측이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찾아 와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피해자를 찾아간 지도위원이 이수호 지도위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수호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니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 대리인과도 만난 적도 통화를 한 적도 없다. 내가 전교조와 민주노총에 모두 지도위원이다 보니 그런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L씨'라고 적었던데, 지도위원 가운데 이 씨는 나 혼자다. 하지만 소설이다. 나 말고 다른 지도위원이 피해자 측 대리인과 만났던 것으로 확인했다.

"회전문 인사로 '지도부'가 특수한 계층이 되었다"

프레시안 : 다시 민주노총 얘기로 돌아가 보자. 민주노총이 위기라는 것은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니다. KO패 당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을까?

이수호 : 잘못된 정파 간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생각과 사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민주노총이라는 하나의 단결체를 통해 모아질 때 서로 순기능을 하면서 건강한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은 정파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우리끼리 힘을 빼는 부분이 너무 컸다. 적어도 민주노총이라는 이름 아래 있다면, 지도력을 세워줘야 한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했다면 지켜야 한다. 형식적인 통합 지도부로는 지금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

두 번째로는 사람이다. 정책 연구처럼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 한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지도부 구성에서는 같은 사람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은 안 된다. 소위 회전문 인사인 셈이다. 과감한 교체가 필요하다. 최고 지도부 역할을 했던 사람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자기 몸에 묻었던 권력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 그리고 다시 또 지도부로 올라오더라도 일단 내려가야 한다.

지금은 단위노조부터 총연맹까지 '지도부'는 일종의 특수한 계층이 돼 있다. 한 번 올라오면 잘 현장으로 내려가질 않는다. 그것이 부패하고 관료화되고 병든 조직의 원인이다. 안에 있는 사람은 잘 모른다. 늘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보고 듣는 세상은 그곳뿐이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 보니 권력화되고 기득권이 된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계속 발생한다.

프레시안 : 4년 전에 똑같이 지도부 총사퇴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바 있다.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 때문이었다.

이수호 :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내 생애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앞서 모자 얘기도 했지만….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의외로 알아보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것이 부담스러워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요즘은 모자를 쓸 수가 없다.

프레시안 : 위원장직을 맞고 있었던 당시가 더 책임감은 컸을 것 같은데?

이수호 : 그 당시는 사실 안으로는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내부의 갈등이 마무리되면서 단결의 여지가 만들어지는 때에 하필 비리 사건이 터졌다. 핵심 간부가 아니었으면 다른 방법으로 수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몸과 같은 수석부위원장의 일이었다. 같이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지금은 선배 입장에서 인간적 책임을 많이 느낀다.

"민주노총, 무조건 싸움만 할 게 아니라 '사회적 대화'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

프레시안 :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외환위기 때와는 또 달리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부터 피해를 입고 있다. 민주노총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수호 : 이미 사회적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회사가 파산을 하는데 노동자는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공기업도 공공연히 사람을 자르고 있다. 실업 노동자의 조직화가 제일 중요한 이유다. 비정규, 실업자, 특수고용 노동자를 중심에 세워야 한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만으로는 안 된다.

무조건 싸움만 해서도 안 된다. 일자리 나누기가 됐건, 총고용 보장이 됐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 대화'라는 말에 대해 여러 오해가 있지만, 말 그대로 '대화'가 필요하다. 경제 위기란 정부나 기업과 같이 돌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본과 정권을 갈라 세우기만 해서야 되나. 그건 혁명하자는 것이다.

투쟁은 투쟁대로 하면서 대화를 통해 끌어내야 한다. 경제 정책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가 기업 지원일 뿐 일자리 만들기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돈이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풀리도록 압박을 통해 바꿔야 한다.

사회적 대화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면 교섭을 하면 된다. 사실 사회적 대화가 결국 다자간 교섭 아닌가.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한국노총과 경총, 정부가 함께 들어간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에 민주노총이 참여해야 한다고 보나?

이수호 : 그건 애초부터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시작했다. 설득도 하지 않고,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 서둘렀다. 민주노총이 왜 대화를 마다하겠나. 결국 한국노총도, 경총도, 정부도 솔직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직이나 단체 이기주의에 빠질 때가 아니다. 내가 더 드러나 보이고 우리 조직의 성과고, 이런 것은 의미 없다는 얘기다. 이럴 때일수록 양대 노총이 같이 가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물론 민주노총을 무시하고 있는 정부 책임이 제일 크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못 한 말이 있다면?

이수호 :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나 역시 잘못이 많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가해자는 당연히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국민 앞에, 후배들 앞에 내가 머리 숙여 사죄하고 싶다.

민주노총에게 지금은 정말 마지막 기회다. 소외된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민주노총으로 다시 일어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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