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직장폐쇄로 일괄 실업자로 전락해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금속노조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 하청노조는 '가족대책위원회'를 출범한다고 8일 밝혔다. 3개월째 농성에도 묵묵부답인 사측에 대해 가족들이 함께 나선 것이다.
이날 대책위 출범식에 앞서 언론에 배포한 '성명서'와 '호소문'에는 이들이 가정을 떠나 '투쟁'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이들은 성명에서 "나의 남편은 IMF 외환위기 당시 하이닉스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고통분담 차원에서 법적 최저임금으로 주야 2교대 근무를 했고, 하이닉스는 지난해 설립 이래 2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했다"며 "회사가 정상화된 만큼 하청노동자들도 지난해 10월 노동조합을 결성해 정규직의 43%에 불과한 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시키고자 했지만, 노조설립을 이유로 사측은 직장폐쇄를 통해 이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고 사측에 강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이들은 "남편은 올해초부터 천막농성, 집회, 가두시위, 교섭, 노동부 부당노동행위 진정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3개월째 사측은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지난 1일 정문 앞 집회에서 경찰병력에 의해 조합원은 물론, 함께 참여한 가족들은 몽둥이세례를 받아야만 했다"며 "3개월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수입은 없었다. 마이너스통장도 바닥나고, 세금마저 밀리고 있다. 아이들 유치원, 학원 보낼 돈도, 준비물 사줄 돈도 다 떨어졌다. 돈을 빌리러 친척을 만나는 것도 더 이상 염치없다. 가족의 생존을 유지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라며 그동안의 고통을 폭로했다.
이들은 "이제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아무런 죄 없는 가족들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세상에서 등 돌리게 할 수 없다"며 "잃어버린 일자리를 다시금 되찾을 수 있도록 연대와 지지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다음은 "잃어버린 가족의 행복를 되찾기 위해" 대책위에 참여하기로 한 박소분씨(41)와의 전화 인터뷰 전문이다. 박씨의 남편 유용현씨(41)는 하이닉스-매그나칩에서 10년째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
***해고 하청노동자 가족 인터뷰**
프레시안 : 남편 유용현씨는 하이닉스에서 얼마나 근무하셨습니까?
박소분 : 올해로 11년째입니다. 당시에는 하이닉스-매그나칩으로 바뀌기 전이니까, LG반도체에 입사한 겁니다.
프레시안 : 오늘 오후 가족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고 들었습니다. 대책위에 함께 참여하시기로 마음을 정리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생각으로 참여를 결정하셨습니까?
박소분 :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남편 혼자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이라도 나서야 이 싸움이 하루라도 빨리 끝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프레시안 : 올해 초 실직자가 된 이래 남편분이 3개월동안 말 그대로 가외 활동 없이 투쟁만 하셨는데, 생활이 가능하셨습니까?
박소분 : 제가 부업을 했습니다. 전자제품 간단한 조립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아파트 관리 총무를 해서 조금 벌기도 했고...가까이에서 사는 친정 부모님이 조금씩 생활비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프레시안 : 부업이라고 해봐야 한 달 30만원도 채 되지 않았을 텐데, 쉽지 않은 3개월이었겠습니다. 혹시 자제분은 어떻게 되십니까?
박소분 : 중학교 1학년 딸아이와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딸아이는 공부도 잘해서 학교에서 상도 자주 받아옵니다. 용돈을 줘서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지만, 말로만 '칭찬'할 수밖에 없어 마음이 시릴 때가 많습니다.
프레시안 :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조는 지난해 10월경 만들어졌습니다. 남편이 근무하신지 10년만에 노조가 만들어진 셈인데요, 그 동안 남편분은 노동운동이나 노조활동 등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박소분 : 솔직히 우리 남편은 그런 쪽에 전혀 문외한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다를 바 없구요. 다만, 회사가 되살아 났으면서도, 처우가 개선되지 않자 노조가 필요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회사가 경영위기에 빠지자 고통분담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보너스 8백% 중 6백%를 반납했죠. 그런데 회사는 지난해만 2조원이라는 설립이래 최대 순이익을 달성했지만, 어떤 성과급도 주지 않았습니다. 보너스는 2백% 그대로였고, 연말 성과급도 정규직은 5백% 받았지만, 남편은 비누세트만 달랑 가져왔습니다. 아시겠지만 월급은 정규직의 43%, 10년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집안에 있는 사람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일터에서 뼈빠지게 고생하는 남편의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프레시안 : 지난 1일에는 집회 도중에 경찰들과 충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박소분 :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노조 사람들이 면담을 요청하려고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들이 거칠게 몸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정말 싸움을 하려고 했다면, 미리 준비물도 챙기고 했겠지만, 그야말로 몸뚱아리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회사 안으로 끌려들어간 15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퉁퉁부었더군요. 그 때 일은 말도 못합니다.
프레시안 : 친정 오빠가 위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안 내려가십니까?
박소분 : 부산에 있는 오빠가 갑자기 쓰려졌습니다. 오늘 오후 출범식 기자회견 참석하고, 매주 금요일 마다 하는 촛불문화제까지 하고 나서 내일 아침에 내려갈 생각입니다.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소분 :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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