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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06년 은행 권유로 엔화 대출 받았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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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06년 은행 권유로 엔화 대출 받았을 뿐이고…"

엔화 대출 피해자들 "원금 2배, 이자 4배로 불어나"

서울에서 작은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C(53) 씨는 지난 2006년 3월 한 시중은행을 통해 1억 엔을 빌렸다. 당시 원-엔 환율은 800원 대였고, 대출금리는 2.1%였다. 은행 직원도 원화 대출에 비해 금리도 훨씬 싸고, 엔화 환율이 오르면 원화 대출로 갈아타면 된다면서 엔화 대출을 적극 권유했다. 당시 은행들은 '덩치 키우기' 경쟁을 한창 벌이면서 대출 신규 고객 확보에 온 신경을 쓰던 때였다. 당시 저금리의 엔화 대출은 은행들이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미끼 상품'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올 가을 들어 엔화 환율이 2배 넘게 급등한 것이다. 그러자 은행의 태도도 돌변했다. 올해 3월 재계약할 때 대출금리는 4,2%로 두배가 됐다. 그나마 본격적으로 환율이 오르기 전이라 덜 오른 편이었다. 이번 달에 재계약했다는 중소기업 사장 A(58) 씨는 9.49% 금리로 재계약했다. 그는 2005년 2.5%의 금리로 1억 엔을 대출받았다. 그는 치솟는 금리와 급등하는 환율로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자 보유하고 있던 땅 1만5000평을 팔아 원금을 상환해 3000만 엔의 대출금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환율과 대출금리 급등으로 이중 부담이 늘어난 '엔화 대출자 모임'(엔대모) 회원 50여 명이 23일 오후 한국은행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환율 급등으로 갚아야할 원금이 두배로 늘어난 것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 책임이므로 감수해야겠지만 재계약시 신용금리 가산, 적금가입, 추가 담보 요구 등 은행 측의 무리한 요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중은행에 대한 관리, 감독이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이 은행의 부당한 영업 행위를 제어해 달라고 주장했다.

대출금리 급등, 추가 담보 요구, 조기상환 요구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 기업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11월 말 현재 1조403억 엔에 이른다. 환율변동의 위험 등으로 가계 대출은 안 되고, 법인 대출만이 가능한 엔화 대출은 은행들이 '덩치 키우기' 경쟁을 벌이던 2-3년 전 급증했다. 2006년 한 해에만 시중은행들의 엔화대출 잔액이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주로 중소기업, 자영업자,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등이 엔화 대출을 많이 받았다. 개인별로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1억-10억 엔 정도가 가장 많다고 한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B(42세) 씨는 "2% 내외였던 엔회대출금리가 최근 8-9%대로 치솟고 있고 환율이 배로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연 16-19%대의 살인적인 금리가 됐다"며 "월 250만 원의 이자를 내던 자영업자가 갑자기 2000만 원의 이자를 내야 하는 형편이 됐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이처럼 개인들이 지불하는 이자는 1년 전에 비해 8배가 늘었는데 은행들이 일본 금융권에 지불하는 이자도 8배나 늘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엔대모는 "은행들은 금리를 올리는 이유에 대해 조달금리가 높아졌다고 하는데 엔화가 본격적으로 급등한 것은 지난 10월부터 였다"며 "그런데 금년 3월에 연장계약한 엔화대출자들의 금리가 1.9%에서 4.7%로 급등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은행들이 환율 급등을 이유로 신용금리를 가산해 대출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최초 엔화대출 계약시 환율변동에 따라 신용금리가 가산될 수 있다는 설명이 전혀 없었으며 단지 리보금리의 변동에 따라 금리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만 있었다"며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기관들이 환율에 의해 환차익이 발생했을 때 신용금리를 내리지 않으면서 환차손을 보았을 경우에만 신용금리를 가산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위"라고 덧붙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B 씨는 은행으로부터 원금 상환을 강요받고 있다. 요즘 건전성 지표인 'BIS 비율' 높이기가 최대 목표인 은행들 입장에서는 부실 위험이 있는 대출은 서둘러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일부 은행에서는 대출 재계약시 적금 가입이나 추가 담보를 요구한다고 한다. 시중 은행들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거래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한국은행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엔화 대출자 모임. ⓒ프레시안

시중은행들 무반응…"이대로 가면 엔화대출자들 모두 고사할 것"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무반응이다. 일부 엔대모 회원들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해당 은행들로부터 '제기한 민원을 접수받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어떤 근거로 금리를 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해명이 없었다고 한다.

엔대모 회원들이 이날 집회를 벌인 한국은행 쪽의 반응도 마찬가지. 한은은 "금리 및 담보 제공 등에 대해서는 한은이 관여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집회에 참석한 한 회원이 말했다.

"키코(KIKO)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처럼 '개인의 선택'으로 감내해야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정책당국에서 '떼쓰기'라고 비난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단기간에 환율이 두배나 급등하는 사례는 아마 한국이 처음일 것이다.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에 은행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환차손의 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 더 나아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이런 상태로 해를 넘기고, 설이 지나면 엔화 대출 받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다 거리로 나앉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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