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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공한 '미국 민주당'이 실패한 '한국 민주당'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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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공한 '미국 민주당'이 실패한 '한국 민주당'에게

8권의 책으로 본 美민주당의 대선전략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Every exit is an entry somewhere.)"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포드(Tom Stoppard)의 말이다.

도대체 지난 8년간 미국 민주당은 어떤 반성과정을 거쳤을까? 무엇을 반성했을까? 넋 놓고 '초인'만을 기다렸을까? 부시행정부의 실패에 따른 반사적 이익만을 추구했을까?

우리 사회에 소개된 책들을 통해 미국 민주당의 '근신'과 '반성'과 '대안'을 따라가 보자.

먼저 '프레임론'이 있다.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한 인지과학자의 말에 따르면, 프레임 (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코끼리는 생각하지마』, 17쪽) 그래서 조지 레이코프는 미국 민주당의 프레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프레임 전쟁에서 공화당에게 패배했다고 전제한다.

▲ ⓒ프레시안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 이후 보궐선거에서 대통령선거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거에서 사실상 완패했다. 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 많이 읽혔던 책이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이다. 이 책이 유행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열린우리당의 정책과 비전이 올바른데도 대중에게 접근하기 어렵거나 홍보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모든 선거에서 졌다'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최근까지도 이런 자성(?)은 만연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28일 민주당 의원 연찬회에서 "규정하지 않으면 규정 당한다"며 '프레임 전쟁'의 중요성을 강조됐다." 노무현 행정부도 "홍보가 일의 절반이다. 정책보다 홍보가 중요하다(노무현 대통령, 2004. 2. 신임국무위원 만찬)"고 강조했었다. 현재의 민주당은 한나라당식의 '세금폭탄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프레임으로 전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 프레임이란 자신의 도덕적 관점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프레임을 말한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187쪽)" 레이코프는 단순히 언어유희를 프레임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언어에는 신념이 있어야 하고, 진실이 있어야 하고, 세계관이 있어야 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후 2년 뒤에 출간된 『프레임전쟁』에는 그의 포지티브한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다만 이전 책과 마찬가지로 추상성을 벗어난 구체적 이슈나 정책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정책 프로그램은 서로 결집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168쪽)"

▲ ⓒ프레시안
"정치는 가치의 문제이고, 의사소통의 문제이며, 후보자가 옳은 일을 수행할 것으로 믿는 유권자들의 문제인 동시에 후보자의 세계관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며, 그 세계관과의 동화의 문제이다. 또한 정치는 상징성의 문제이다. 이슈는 이차적이다."(『프레임전쟁』, 19면)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레이코프가 제기한 '프레임론'을 잘 못 이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음은 정책론이다. 레이코프의 2004년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지 2년 후, 자칭 정치꾼과 정책광이라는 두 명의 민주당 브레인이 한 권의 책을 냈다. 람 에마뉴엘(Rahm Emanuel)/브루스 리드(Bruce Reed)가 그들이다. 책 제목도 거창하다. 『더 플랜-미국의 새로운 비전과 민주당의 도전』(2008년 6월)이다. 흥미롭게도 람 에마뉴엘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됐다. 이 정도의 정책적 일관성을 가져야만 비서실장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미국인 모양이다. 이들 두 사람이 책을 쓴 목적은 시종일관된다. 이를테면 클린턴 선거 당시의 표현대로 '바보야, 프레임이 문제가 아니라, 정책이야!' 이런 식이다.

"어떤 정당이건 간에 자신의 패배를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간주해 버리는 정당이라면, 또다시 패배하게 되어있다.(『더 플랜』, 44쪽) 레이코프는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가 단지 공화당이 올바른 단어를 다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틀렸다.(같은 책, 46쪽)"

▲ ⓒ프레시안
두 사람은 부시가 감세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원인이 이 법안을 '세금구제'라고 불렀기 때문이 아니라는 데에서 공화당의 프레임이 성공의 핵심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 그들에 따르면 부시의 감세정책이 성공한 주요 이유는 민주당이 뒤늦게야 자신들의 세금개혁안을 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같은 책, 46쪽) 그들은 말한다.

"2004년 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은 자기의 주장이 없으면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같은 책, 45쪽)" "승리를 얻는 비밀은 단순히 더 나은 전술에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확고한 동원력이나 보다 나은 유권자 표 구하기 게임, 더 날카로워진 공격적인 광고 이런 것들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해답을 구하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은 그저 정치적인 것일 뿐이다.(58쪽)"

이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내 거는 '플랜'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서 출발한다. '전 국민 봉사단', '전 국민 대학제도', '전 국민 은퇴연금제도', '모든 어린이를 위한 의료보험', '재정책임과 기업복지의 종식', '서민을 돕는 세제개혁',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새로운 전략', '하이브리드 경제' 등이 대표적이다. 오바마의 공약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영됐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람 에마뉴엘의 발탁은 '깜짝 인사'가 아니었다.

▲ ⓒ프레시안
시기적으로 볼 때도 이 두 사람의 책이 2006년도에 출간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 민주당은 동반성장과 빈곤퇴치를 내용으로 해밀턴 프로젝트를 2006년에 발표했다. 그리곤 정책을 통해 미 의회 권력을 민주당으로 되찾아 왔다. 대선에 들어서자 민주당의 중산층 활성화 정책구상, 8월에는 민주당 정강정책 2008 Renewing America's Promise을 통해 오바마의 정책이지만, 민주당의 정책을 내놓았다. 정책이 없는 홍보의 문제점을 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민주당 패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 혹은 건설적 비판은 『더 플랜』 이전에도 흔한 일이었다. 보스턴대 사회학과 교수인 찰스 더버는 그의 책 『히든파워』에서 "선거의 덫은 변화에 대한 실질적인 어젠다를 제시하지 않고, 선거에 승리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결국 선거에 패배하게 되는 것(216쪽)"이라고 질타했다.

▲ ⓒ프레시안
그는 단순한 언어공학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층에게 통렬히 일갈한다. "2004년 이후부터 수많은 대화는 주로 '프레임의 재구성'에 관한 것이었다 … 민주당파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프레임의 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파의 비전과 정책이 갖고 있는 본질에 있다. 프레임의 재구성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민주당으로서는 거의 재난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259~260쪽) 그러면서 1952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말을 빌어 표현했다. "순종 공화당파와 민주당의 옷을 걸친 공화당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국민들은 항상 진품을 선택할 것이다.(216쪽)"

답은 어디에 있을까? 중요한 힌트가 『더 플랜』에 적혀 있다.

"마크 펜이 <블루프린트>의 최근 조사에서 발견한 것처럼, 미국인 4명 중 3명-민주당원 6명 중 5명-은 공화당이 잘못한 걸 듣는 것보다 민주당의 아젠다를 더 듣고 싶어 한다(54쪽)"라고 했다.

미국 대중은 민주당에게 어떤 아젠다를 듣고 싶어 했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언제나 '상향식 경제'를 주장했다, 미국의 헌법정신을 강조했다, 기회의 평등과 기본적인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미국 대중들은 이를 '희망'이라고, '변화'라고 생각했다.

프레임이 상징하는 '홍보전'과, 프로그램이 상징하는 '정책전'이 치열하게 맞붙어 싸우는 가운데 미국 민주당의 미래는 싹트고 있었던 셈이다.

세 번째로 결국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근본적 논의가 중심에 섰다. 이런 중심을 분명히 한 다음 변화를 추구했고, 이 중심을 바탕으로 홍보와 정책이 결합됐다.

▲ ⓒ프레시안
민주주의라는 아젠다가 나오기 위한 조건에 대한 진단이 필요했다. 민주주의는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에서 한 번의 투표행위로 끝나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프란시스 무어 라페는 그의 저서 『살아있는 민주주의』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뼈만 남은 2인조의 '앙상한 민주주의(Thin Democracy)'라고 표현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단지 두 가지 문제, 즉 선거로 구성된 정부와 시장경제라고 생각하며 성장하게 되는지 그 이유가 쉽게 드러난다. 미국인들은 이 두 가지를 이미 가졌기 때문에, 투표장과 가게에 갈 때를 제외한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별로 할 일이 없는 셈이다…이런 민주주의는 무능한 민주주의(29쪽)"다.

가진 자들에게 공동체의 자원을 몰아주는 '트리클 다운 경제'에서 모든 시민들의 창조와 생산, 소비가 경제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상향식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정책으로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정치주체들의 정당한 압력을 위해서 시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라페는 '앙상한 민주주의'가 아닌 "공공권력의 장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47쪽)"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라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 우리에게, 혹은 우리를 위해 부과되는 어떤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창조하는 것으로서의 민주주의(47쪽)"를 '살아있는 민주주의'라고 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 또한 다시금 '민주주의'의 근본을 강조하고 나섰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에서 미국 민주당의 가치를 현실에서 실천하기 위한 백가쟁명의 논의를 정치의 자유시장에 미국 민주당의 정치시장에 내던지고 토론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 ⓒ프레시안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만이 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만이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 투자자, 경영자, 그리고 일반 직원들 모두 민주주의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윤리적으로도 기업에는 그와 같은 권리가 없다."(『슈퍼자본주의』320쪽)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도 아예 노골적으로 미국 민주당의 집권을 지지하고 나섰다. "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당파성을 띈다는 것이다....진보주의 안건이 입법화되는 유일한 방법은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고 민주당이 의회에서 공화당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다수당이 되는 것이다."(『미래를 말한다』342쪽) 그러면서 그는 떼려야 땔 수 없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 때문에 "진보주의자가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다"(같은 책, 343쪽)라고 선언한다. 물론 정책통답게 의료보험과 세금 등을 포함한 '새로운 평등의 정치'를 주창하기도 했다.

▲ ⓒ프레시안
물론 민주당 승리 이후 미국이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통한 '상향식 경제'의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오바마의 정책멘토로 손꼽히는 미국진보센터(CAP)와 새로운민주주의프로젝트(NDP)는 차기 행정부가 시행해야 할 경제 부분의 진보적 정책들을 상세하게 권고했다.

"연간 20만 달러 이하 가정 감세와 중산층 확대, 전 국민 의료보험, 2016년까지 빈곤층 절반 감축, 유치원~고등교육 등 교육투자 확대, 우수교사 지원, 이라크전비 1500억 달러 미국 내 인프라 구축에 투자, 노조활동 보장, 임금손실보험, 실험보험 등 추진, 우수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이민법 개정"등이 바로 이들이 내건 정책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도 이미 대부분 베스트셀러였고, 그런 영향력과 필요성 때문에 특별히 우리 사회에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이 책들이 현재의 우리 민주당과 진보세력에게 하나의 참고서가 될 수 있을까? 근신과 반성과 대안이라는 관점에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미국 민주당은 '백인 변호사 출신의 상원의원, 존 에드워드', '백인 변호사 출신의 첫 여성 대통령 경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흑인 변호사 출신의 첫 흑인 대통령 경선후보 버락 오바마'를 내놓고 경선을 치렀다. 그리곤 가장 급격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버락 오바마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내놓고 한 판 승부를 벌였다. 승리는 민주당의 것이었다.

오바마의 선거구호는 이랬다. "Change, We Can Believe In!"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미국 어느 대학 앞에는 노숙자가 또 다른 change를 의미하는 구호를 들고 적선을 구하고 있었다. "I need 'Change', Not only Obama!" 굳이 직역하자면, '변화가 필요한 것은 오바마 뿐이 아니다'이고, 제대로 풀자면, "오바마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거스름돈이다. 그러니 한 푼 줍쇼"라는 의미다.

지금 민주당원인 나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명박 행정부의 반사이익에 깃들고자 하는가?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괴롭다.

* 참고

-조지 레이코프, 유나영 옮김, 코끼리는 생각하지마(2006년 4월), 삼인 펴냄(미국 출간 2004년)
-조지 레이코프, 나익주 옮김, 프레임전쟁(2007년 7월), 창비 펴냄(미국 출간 2006년)
-찰스 더버, 김형주 옮김, 히든파워(2007년 8월), 두리미디어 펴냄(미국 출간 2005년)
-프란시스 무어 라페, 우석영 옮김, 살아있는 민주주의(2008년 8월), 이후 펴냄(미국 출간 2007년)
-람 에마뉴엘/브루스 리드, 안병진 옮김, 더 플랜(2008년 6월), 리북 펴냄(미국 출간 2006년)
-로버트 라이시, 형선호 옮김, 슈퍼자본주의(2008년 5월), 김영사 펴냄(미국 출간 2007년)
-브루킹스 연구소, 해밀턴프로젝트(2006,7월), KDI 경제정보센터
-폴 크루그먼, 예산한 외 옮김, 미래를 말하다(2008년 6월), 현대경제연구원BOOKS 펴냄(미국 출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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