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 졸속비준을 반대하는 비상시국회의' 토론회 발표에서 "이번 기회에 한미FTA의 독소·불평등 조항들을 전부 긁어내 재협상해야 한다"며 이와 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단순한 한미FTA 반대를 넘어서 질적으로 훨씬 좋은,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변화을 반영한 공정한 한미FTA의 기초를 놓는 일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먼저 독소·불평등 조항들을 다 걸러낸 신 한미FTA 정책을 만들어 대국민 설득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보기에 미국 내 상황도 '재협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미국 민주당이 '보호무역'이 아닌 '공정무역' 성향으로 통상정책을 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2006년 11월 이후 '공정무역론자(fairtrader)'들이 자유무역론자들을 낙선시키고 의회에 진출했는데, 이후 이들은 '신통상정책'을 입안했고, 부시의 USTR을 압박해 이미 페루의회가 비준을 마친 미-페루FTA, 서명을 마친 미-콜롬비아FTA, 파나마FTA, 협상 중이던 한미FTA 에 대한 재협상 요구를 모두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추가협의' 등으로 본질을 호도했지만, 미국 민주당 입장에서는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 모두가 노동, 환경 조항을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의제, 즉 신통상정책에 따른 재협상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 '공정무역론자'들과 적극 협상 나서야"
▲ 26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미FTA 토론회. '한미FTA졸속 비준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는 이날 토론회에 이혜민 FTA교섭대표를 초청했으나, 이 대표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시안 |
이 교수는 "그저 한미FTA '저지' 그리고 '대책' 요구라는 수세적 항변을 넘어서, 한미FTA 재협상을 공세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며 "특히 60~70석의 의석수를 가진 미국 의회 내의 '공정무역론자'와의 적극적 대화와 협상을 제안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의원단 대표로 미국을 방문한 민주당 문학진 의원도 보고를 통해 "미국은 금융위기와 자동차 산업 위기로 '제 코가 석자'"라며 "한미FTA는 미국 의회에서 2009년 하반기에나 논의될 텐데, 이 기간 동안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하는데 우리가 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진 "미국 사람들 립서비스"
문 의원은 미국 내 한미FTA에 대한 의견에 대해 "함께 간 한나라당 의원들이 '양국 간의 협정인데 돼야 하나 안 돼야 하나'라고 물으니까 당연히 '돼야죠'라고 답한 것"이라며 "전형적인 립서비스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만난 사람들은 '온리 오바마 노우스(Only Obama knows)'라고만 얘기하더라"며 "미국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고 덧붙였다.
문 의원은 '오바마가 당선이 됐으니,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했는데, 밥 돌 상원의원은 "오바마의 지지기반은 노조다. 오바마 지역구도 자동차다. 아마 노동부는 노조부가 될 정도로 노조의 입김이 엄청 세질 것이다"고 말했고,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한 연구원은 "FTA로 인한 낙오자가 없어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어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미국 내 기업과 노동자에게 공정하게 협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상절차법, 협상의 무기될 수 있다"
한국 의희에서 준비할 일도 있다. '통상절차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승환 경희대 교수는 "정부나 공무원들은 통상절차법을 통해 국회가 협상에 개입하는 것은 손발을 묶어 방해하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지만, 이는 삼권분립에도 맞는 것이고, 통상절차법이야말로 협상력이 취약한 한국 협상가들에게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재협상을 요구하고 싶은 충동이 있을 수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협상을 번복하기는 어렵다"며 "이럴 때 국회 차원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면 정부는 '국회 핑계'를 대며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어 협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교수는 또 "정부 차원에서는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지만 이는 사소한 것이고, 협상 체결 과정에서 생기는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해 생기는 사회적 손실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훨씬 효과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민 FTA교섭 대표 참석 거부"
한편 주최측은 이날 토론회에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를 초청해 정부의 입장을 듣고 토론을 벌이고자 했으나, 이 대표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한미FTA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제기를 하던 국회의원들과 농업계에서도 모두 참석했는데, 이 대표가 참석을 거부했다"며 "일정상 참석이 어려우면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거부한 것을 보면 이 정부의 오만불손함을 알 수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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