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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님, 포항이 와 이럽니꺼?"

'묻지마 건설'의 후폭풍…건설사, 납품업체 붕괴에 지역경제도 '빨간 불'

40%. 경북지역 미분양 아파트 1만5000여 가구의 40%가 포항에 묶여 있다. 지난 수년 간 지속된 지방경기 침체에 포항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유독 포항에 이렇게 미분양 물량이 많이 쏟아졌을까.

기대감 때문이다. 대통령 배출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리라는 기대감이 지역 경기와 관계없이 건설 공급량을 끌어올렸다. 후유증은 극심하다.
국민의 4분의1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그렇지 않은 날이 드물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지방경제가 더욱 신음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따른 여파도 있지만 이른바 적하효과를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도 적용시켜, 수도권이 발전하면 지방도 혜택을 입는다는 논리로 상대적으로 지방은 등한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방의 불만을 억누르는 이명박 정부의 카드 중 하나가 건설경기 부양이다. 도로 등 대규모 SOC 사업 등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20만채가 넘는다는 미분양아파트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산업과 달리 건설업에서는 특히 수요를 무시한 공급은 '재앙'이다. 지난 13일과 14일에 걸쳐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텅텅 비어가는 아파트 숲
포항시내 남북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남구 효자동에는 SK건설 뷰 3차 분양이 예정됐다. 1, 2, 3차 합해 총 2000여 가구가 공급된다. 현대차 포항지점 인근에는 대우건설이 논 위에 시멘트를 부어 아파트촌을 만들고 있다.

북구 역시 마찬가지다. 두호지구에는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가 들어선다. 양덕지구에는 풍림 아이원을 비롯해 남광토건의 하우스토리, 대림 e-편한세상 등 대형 건설사들이 줄줄이 고층 아파트를 쌓아올리고 있다. 어림잡아 5000여 세대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지역 건설사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했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분양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다. 13일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절반이 미분양이다. 평당 분양가가 600~800만 원 정도인데 지역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수요와는 거리가 먼 고분양가가 미분양의 큰 원인이다. 인근 풍림 아이원은 지난 9월 분양에 들어갔으나 계약률이 30%에도 못 미친다. '포항 최고급 아파트'를 지향해 야심차게 분양에 들어간 두산 위브 더 제니스가 지난해 신고한 미분양 물량은 640 세대가 넘는다. 이미 분양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은 장성주공 현진 에버빌은 아직까지도 100여 가구가량을 해소하지 못했다.

특히 외지 대형업체가 분양가를 이렇게 올려놓자 지역 건설업체마저 반발하고 나섰다. 한 지역 건설업체 관계자는 "외지 업체들이 이렇게 분양가를 올려놓았다. 나중에 거품이 꺼지면 결국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간 입주민만 피해를 볼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분양 계약률이 이렇게 바닥을 기는데도 물량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건설경기가 바닥을 친 가운데도 공사는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에만 총 1만여 가구가 시장에 쏟아졌다. 포항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시 인구는 지난 2000년 51만5977명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달리고 있다. 아파트 장사가 잘 될 리 만무하다.

한 지역민은 "사람이 늘어나지도 않는데 저렇게 많이 지어서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새로 짓는 곳들도 다 난리 날 게 뻔하다"라며 혀를 찼다.
▲양덕지구 아파트단지 공사현장. 당초 기대와는 달리 분양률이 바닥을 기자 인근에 자리잡은 부동산 업체들은 파리만 날리는 꼴이 됐다. ⓒ프레시안


우방 워크아웃설 터지니 핵폭풍 지역 삼키네

양덕지구에서 비교적 싼 분양가를 책정해 관심을 모은 곳이 있다. C&우방이 총 8개동 812가구를 공급하는 우방 유쉘이 주인공이다. 이곳은 인근 아파트에 비해 비교적 싼 평당 500만 원대 분양가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현재 이 아파트 공사는 전면 중단된 상태다. 모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유동성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공사현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틈으로 들어가 보니 혼자 공사현장을 지키던 경비원이 '사람들이 못 들어오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제재하고 나섰다. 인부들이 바삐 움직이는 주변 아파트 공사현장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회사가 약 700명의 계약자들에게 분양금 환급을 결정해 일단 계약자들은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계약자 피해는 일단 막아야 한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11월 현재 공사가 전면 중단된 '우방 유쉘' 공사현장. 건설사의 무리한 공급은 결국 지역경제에도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레시안

하지만 후폭풍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아파트 건설자재 납품업체들은 여전히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사의 돈줄이 말라버려 납품업체도 현금 구경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방 측에 건설자재를 납품한 한 업체 관계자는 "우방이 돈이 없지 않나. 이렇게 큰 회사에 자재를 납품해도 현금 수금이 안 된다. 이제는 어디가 우량산지, 어디가 불량사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매출량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줄도산 움직임도 서서히 관측된다. 업종과 회사명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포항의 한 건설 자재 납품업체 임원은 "포항지역 T건설이 주도하던 공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곧 망한다는 소문이 돈다"며 "대형 건설사는 차라리 망해도 괜찮다. 우방처럼 정부에서 구제에 나서기 때문에 납품업체도 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조그만 건설사가 망하면 우리 같은 납품업체는 끝장"이라고 하소연했다.

건설사 부도-철근·레미콘·섀시·내화물 등 관련 납품업체 부도-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최악의 고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서서히 가시화하는 셈이다.

한 지역민은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기대감이 연초에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대통령을 대놓고 욕하기는 뭣하지만 밑에 공무원이나 한나라당 의원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대통령이 잘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일단 계획했던 공사는 이상 없이 진척시켜야 하지 않겠나"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SOC 3조 투자…"그래도 대통령 고향"

'계획했던 공사'. 포항에 계획된 공사가 엄청나다. 건설경기 반짝 상승효과가 적어도 내년부터 수년 간 포항을 달굴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여전히 지역민들이 '대통령 효과'를 기대하는 이유며,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은 원인이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 시의 숙원사업이 마치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는 위력을 맛본 터다.

오랜 기간 진척이 없던 포항-삼척 간 동해안고속도로 확장 공사와 지방산업단지 입주가 대통령 당선과 함께 확정됐다. 아직 구체적인 결론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신항만공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정부가 밝힌 내년 SOC(사회간접자본) 투자액 상당량도 포항에 집중 투하된다. 내년 전국 주요도로 11건 공사비 7조292억 원 가운데 40.2%에 달하는 2조8235억 원이 포항에 투입된다. 포항-안동 길안 간 국도(72.6㎞, 1조235억 원), 포항외곽순환고속도로(20㎞, 1조8000억 원)가 그것이다. 자연스럽게 '특정지역 챙기기' 비난이 쏟아질 만하다.

특히 '상왕' 이상득 의원(포항 남구)의 발언이 불씨를 댕겼다. 그는 대통령의 규제완화 사업이 수도권에 집중됐다는 당내외 비판에 대해 "포항은 불만 없다"고 일갈했다. 곧바로 야당 쪽에서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챙겨주니 불만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포항시가 발표한 '2009년도 국가예산 확보대책 2차 보고회'에 따르면 타워 브리지 건설, 포항종합박물관 건립, 근로자 종합복지회관 건립, 포항 산업진흥원 건립 등의 계획안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포항 동빈내항 복원과 영일만 대교 건설 등의 청사진을 내비쳤다. 동해면과 장기면 일대에는 990만㎡ 규모로 한일부품단지를 조성할 방침을 나타냈다. 당초 제외됐던 대구ㆍ경북경제자유지역에도 포항이 추가 편입됐다.

모든 계획이 실현되리라는 꿈은 물론 섣부르지만 지금의 어려운 경제 사정, 빡빡한 국가 재정을 감안하면 일단 분위기만이라도 다른 지역과는 차원이 다른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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