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나의 입장을 밝히자면, 나는 케인즈주의자가 아니지만, 케인즈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고,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국부론, 자본론 그리고 케인즈의 일반이론에서의 다른 처방들을 비교해보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어쨌든 케인즈는 경제학자로서나 혹은 인간적으로나,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케인즈의 등장에는 1929년 대공황이라는 사건을 빼놓을 수 없는데, 실제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그보다 7년 후인 1936년의 일이다. '잊혀진 자들과의 새로운 계약'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뉴딜과 관련되어서만 케인즈를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케인즈를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칼도가 정리한 저축으로부터 투자로 이어지는 케인즈의 성장 이론은 지금도 매우 민감한 주제들을 가지고 있다. 케인즈의 성장이론의 핵심부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저축율이 다르다는 사실이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케인즈의 성장모델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부를 몰아줘야 저축률이 높은 부자들의 저축이 늘어 총투자가 늘어난다는 작동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제학 내부에서의 민감한 문제들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케인즈는 뉴딜이라는 사건, 그리고 전후 유럽에서 복지 국가의 등장이라는 두 가지 얘기에 집중되어 있다.
대공황과 케인즈의 등장 이후로 자본주의는 '수정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비중 있게 다뤄지게 된다. 그리고 특히 70년대 중후반의 미국 시카고 학파의 약진과 더불어 케인지안에 대한 학계에서의 대학살이 벌어져, 케인지안의 명맥은 가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세계화와 결합된 미증유의 금융공황 국면에서 자본주의를 수정 자본주의로 한 번 구해낸 적이 있는 케인즈가 다시 조망받는 것,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가 어느 정도 수위로 케인즈를 다시 복원할 것인가에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자본주의를 그만큼 위기 국면에서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 방향을 틀었던 사람은 일찍이 없었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뉴딜의 거시경제적 효과에 대해 여전히 경제학 내에서 입증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1936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세계는 과잉생산을 거대한 파괴로 단숨에 해소하게 됐고, 1945년부터 1974년의 석유파동까지, 세계는 '영광의 30년'이라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게 뉴딜 때문인지, 아니면 거대한 전쟁의 영향인지, 혹은 그 이후에 유럽에서 일반화된 케인즈적 복지국가 탄생의 효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물론 확실한 것은 있는데, 뉴딜의 대부분의 정책이 농업보조금과 실업급여 등, 흔히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한국형 뉴딜' 시절에 주창하는 것처럼 거대한 건설사업이 주축이 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헬기로 돈을 뿌려라"고 했던 케인즈의 말이 종종 인용이 된다. 특정 계층 혹은 특정 기업에게 유리한 '부의 재분배 효과(wealth effect)'가 재정정책에 생겨나는 것을 케인즈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60~70년대 내내 케인즈는 여전히 논란거리였는데, 재정정책을 중심으로 보면 약간 구분이 쉬울 것 같다.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케인즈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의료보험, 퇴직수당, 실업보험, 공공 교육 등의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이를 케인즈 좌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복지 국가'가 그 결과물이다.
반면 일부의 경제학자들은 군사에 대한 투자도 재정정책이라고 하면서 군산복합체를 결국 만들어내게 된 국방산업 그리고 고속도로와 같은 SOC 투자를 주장하였다. 이는 결국 국방산업과 건설업에게 상대적 특혜가 돌아가게 되는데, 이를 케인즈 우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케인즈 좌파이든 혹은 케인즈 우파이든, 워싱턴 콘센서스가 강력해지기 시작한 80년대 이후, 전부 퇴조하게 되고, 레이거노믹스 이후 신자유주의가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오바마와 함께 다시 케인즈가 전면으로 복권하게 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는데, 이 케인즈가 어떻게 해석된 케인즈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기는 하다. 오바마의 정책 중 학교 시절에 대한 투자 등이 앞에 나온 것과 힐러리의 의료보험 개혁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케인즈 좌파 입장에서의 해석, 즉 특정 산업에 대한 특혜 보다는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과 사회안전망 쪽에 무게중심이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게 어디로 튈지에 대해서는 아직 예측하기에 적합한 시점은 아닌 것 같다.
현 시점에서 미국발 금융위기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 같은데, 대체적으로 건설을 강조한 케인즈 우파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그린스펀(전 FRB 의장) 10년 동안의 저금리 시절에 발생한 과잉 유동성 공급이 파생상품과 결합되면서 서브 프라임 위기가 불거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미국은 국민소득 내의 건설지출 비율이 10%가 안 되는 나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건설주의 국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와 상관없는 투기적 장세가 펼쳐진 것은, 장기 저금리의 효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적 통화정책과 금융화 정책이 미국을 지금 어렵게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 케인즈 좌파적 생각이 약간 움직였던 것은 노동유연화와 함께 동시에 사회 안전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대중 대통령 초기 시절이 거의 유일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2만불 경제'와 함께 상당히 강력한 케인즈 우파의 입장을 취했고, 그 결과 골프장 300개라는 전대미문의 거시경제 정책과 함께 농지법 개편에 의한 개발주의 전면화 그리고 수백개에 달하는 특구와 특수도시 정책을 썼다. 이게 결국 집값을 걷잡을 수 없이 폭발시켜 결국 종부세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끌고 온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는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외형상으로는, 모든 재정지출을 사실상 건설사에게 집중시켜 주고 있는 형국이니 케인즈 우파라고 할 수 있지만 케인즈 경제학의 가장 큰 핵심인 정부의 조절과 개입은 방기하거나 포기한 셈이니 케인즈 우파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게다가 국민의 저축으로부터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모델의 핵심에 있는 케인즈 모델과는 달리, 10조원 이상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사실상 전부 건설사 입으로 들어가게 될 적자재정을 선호하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케인즈주의자는 아니다. 억지로 분류하면, 케인즈 우파의 나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인가? 그렇게 보기도 좀 어려운게,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미국 경제의 투기적 국면을 행정부가 나서서 조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미리 적극적으로 부시 행정부에서 4~5년 전에 미리 나서서 정리를 좀 했으면 지금의 사태가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건 '미필적 고의'라고 할 수는 있어도 미국 행정부가 건설중심의 경제를 운용하다가 온 파탄이라고 평가하기는 좀 어렵다.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케인즈주의의 우파적 요소와 신자유주의의 실패 요소에 대한 정부 조정실패라는, 두 가지 흐름의 나쁜 점만 모은 데에다, 재정적자를 통해 국민의 세금 혹은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부채까지 탈탈 털어서 건설사에게 몰아주는, 그런 정책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 케인즈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고상한 용어조차도 이 정도 상황에서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격이다. 여기에 금융산업에 대한 약간의 판단 착오까지 더해주면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딱인데, 이런 희한한 경제에 적합한 용어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없다.
'막개발파'라는 용어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때 일부 사용된 적이 있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은 '토지공개념'을 도입해서 지금의 투기이익 환수장치의 기본 틀을 마련한 사람들이라서 최소한 경제정책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그 품위와 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걸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막가파'라고 부르고 싶지만, 이것은 경제정책 용어가 아니니, 현재로서는 명박 경제 혹은 '명박파'라고 부르는 것 외에는 딱히 분류해서 부를 수 있는 용어가 없어 보인다. 독자 여러분들의 혜안을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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