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을 생각하면 그 연세에 정말 대단하다 싶다. 예전 YTN <돌발영상>에 나온 국정 감사 답변 모습을 보면, 청력이나 한글 해독 능력이 걱정스러울 지경인데, 다른 일은 어떻게나 귀신처럼 재바르게 처리하시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 분은 학원들 편의를 워낙 잘 봐줘서 사정택 교육감, 줄여서 '사교육감'으로 불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거 비용으로 학원들에게서만 18억 원을 빌렸다고 한다. 국제중학교 설립은 국민들 70%가 반대하지만, 서울시 교육위까지 바지저고리로 만들면서 밀어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맺은 단체 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려는데, 거기에는 "방과 후 활동이나 야간 자율 학습을 학생 동의 없이 강제로 할 수 없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강제로 다 시키겠다는 말씀.
그 분이 선거운동 당시 트럭 위에서 설파하신 교육관은 이런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쟁이 너무 낮아요. 이래서는 안 된다, 이 경쟁 대열이 초등학교 때부터 이뤄져야 된다, 고 저는 강력히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옥같은 말씀이다. 전체 유권자 7%만이 그 분을 찍었지만,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 자신감과 추진력은 우리들 나약한 젊은 교육자들의 귀감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한창 진행 중인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의 예광탄을 쏘아올린 8월 20일자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교육부 편수팀을 교체하라>는 으리으리한 글로써, 문장론 수업의 교본으로 삼을 만하다. 청소년에게 만연해 있는 '자학사관'(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을 극복하고, 역사 교과서를 대폭 갈아치워 '긍지의 사관'을 가르쳐야 한다는 그 글을 읽으며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뻔 했는데, 하도 명문이기에 끝부분만 소개해 본다.
(…) 이를 위해선 지금의 교육부 교과서 편수 담당 팀을 대폭 갈아치워야 한다. 지금의 팀은 노무현 시대의 팀 그대로다. 이들을 놔두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이래서 이명박 정부는 내년의 '제8차 교육 과정' 결정을 뒤로 미뤄야 한다. 그동안은 현행 교과서를 교정해서 쓰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 진영은 '방송 탈환' 투쟁에 이어 '교과서 탈환' 투쟁으로 돌입해야 한다. '촛불'에 겁먹은 이명박 정부가 '역사 탈환'을 결행할 수밖에 없게끔.
거의 상왕이나 대왕대비마마쯤 되는 어른이 아들 임금에게 훈계하는 수준인데, 글을 쓰려면 모름지기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 류근일의 주문대로 저들은 '방송 탈환' 이후에 '역사 탈환'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교조만 따로 상대하겠다는 이들이 단체들을 꾸리고, 여기저기서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 몇 년 이렇게 잔매 큰매 다 맞다보면 교육계도 거의 초토화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이런 때 우리 교육을 걱정하는 분들에게 나는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김종승 옮김, 궁리 펴냄)를 권한다. 이제 거의 아흔 살이 된,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의 소년기부터 미국 체제와 불화하기 시작하여 일생을 시퍼런 대나무처럼 살아온 이 불굴의 지식인에게 나는 여러 모로 용기를 얻고 배울 거리를 얻는다.
하워드 진은 이 책에서 미국 사회가 감추고 있었던 수없는 죄과들을 적시하면서 이 모두를 '가르쳐야만' 한 사회가 정신적으로 지탱할 수 있음을 웅변한다. 그는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처절한 가난을 겪으며 일찍부터 사회 모순에 눈떴지만,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콜럼버스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이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가 인용한 초등학교 2학년 아동용 도서 내용이다.
"왕과 여왕은 금과 인디언들을 번갈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놀라워하며 콜럼버스의 모험담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콜럼버스의 눈가를 가득 채웠습니다."
이런 식이다. 이러니 1519년 약 2500만 명에 이르던 인디언들이 1605년에는 100만 명으로 줄어든 연유에 대해, 아이들을 굶주린 개에게 먹이로 던져주고, 장난삼아 칼로 찌르고, 젖먹이의 머리를 바위 위로 내던지는 콜럼버스 일행의 끔찍한 악행에 대해 미국 사람들이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침략과 전쟁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저질렀던 미라이 학살 사건에 대해 아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베트남전을 기획하고 추진했으며 따라서 전범으로 기소되어야 마땅한 국무장관 맥나마라가 이를 "단순한 실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전 민간인 사상자를 놓고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그건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고 답했고,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한 국방장관 로널드 럼스펠드는 탈레반 포로들에 대한 고문을 승인했다. 그래서 탈레반 포로들을 가둬 놓은 컨테이너를 열면 "피범벅이 된 소변, 피, 배설물, 구토물과 썩어가는 살덩이"가 넘쳐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테러 조직 알 카에다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조지아 주에 있는 '아메리카 훈련소'에서 6만 명의 라틴 아메리카 군인들이 고문, 암살, 테러 훈련을 받고 남미 곳곳에서 그 임무를 수행한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이런 지경이니 이라크전 발발 당시 전쟁 지지율이 80%를 넘고,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관 관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학생이 전체 대학생의 60%나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교육
이처럼 미국인들을 몽매한 상태로 내몬 것은 미국의 학교 교육이 객관적 지식으로 채색된 '이상'만 가르칠 뿐 '현실'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워드 진은 되풀이하여 주장한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적용된다. 며칠 있으면 수능 시험을 치른다. 수능이 끝난 며칠 뒤에는 학교에 트럭이 들어오고, 아이들은 그간 썼던 그 많은 문제집, 자습서들을 통째로 내다버린다. 이것은 저 '지식 더미'들이 오직 시험을 치르는 데만 소용될 뿐 자신의 삶과는 무관함을 보여주는 희극적인 사태다.
아이들은 지식이 현실과 관계하는 맥락에 대해서도 별로 배운 바가 없다. 이를테면,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을 다룬 1950년대 작가 장용학의 <요한 시집>이라는 게 있다. 그 작품을 가르치다 보면 결국 우리 현대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아이들은 '모스크바 3상 회의'는 알지만, 그 회의 내용을 뒤집어 보도하여 격렬한 찬탁·반탁 갈등을 불러일으킨 <동아일보>의 그 끔찍한 오보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은 몽양 여운형은 알지만, 그가 해방 공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를 모른다. 그리고 몽양의 좌우합작 운동이 당시 정세에서 얼마나 절박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학생도 거의 없다.
하워드 진의 입을 빌릴 것도 없이 어느 교육학 교과서에건 다 나오는 이야기를 해 보겠다. 아이들은 자신을 구성하는 '현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왜 이렇게 공부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공부해도 결국 '웬만하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이 '자유 시장 경제'가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따라서 정부가 금융업계의 천문학적인 차관에 대해서는 지급보증을 서 주면서도 가난한 농민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농약을 마시고 픽픽 쓰러져도 수수방관하는 것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농업을 이토록 멸시하고, 물신숭배가 이렇게 꼭대기까지 차오른 사회는 결코 지탱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건국절' 운운하며 이 나라를 본격적인 이념 논쟁으로 몰아가려는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지만, 이념을 떠나서, 이 나라의 건국이란 친일 주구들이 민중의 당면한 요구를 배반하고, 반대편 사회 세력들을 박멸시킨 위에 건설한 테러 통치 체제에 다름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
'약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이 책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아래는 1880년대 '인디언 자치지역 해체에 관한 법안'(인디언 쫓아내자는 법이다)을 작성한 상원의원 헨리 다이스가 체로키족을 방문했을 때의 기록이다.
"부족을 통틀어 자기 집이 없는 가정은 없었다. 부족 내에는 단 한 명의 거지도 없었고, 그 부족에게는 단돈 1달러의 빚도 없었다. (…) 스스로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지었다. 하지만 체제의 결함은 너무도 명백했다. 그들은 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으므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 그곳에는 내 집을 이웃집보다 더 좋게 만들어줄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 문명의 바탕에 흐르는 이기심이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기심. 이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지상 낙원이었던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을 잔인하게 파괴하고, 미국을 물신의 제국으로 이끌고, 더 나아가 오늘날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낸 원동력이 다름 아닌 '이기심'임을 저들은 부지불식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이기심을 어떤 방법론으로 실현했을까. 그것은 '막나가는' 것이다. 필리핀을 점령하기 위한 전투에 참여한 한 미군 장교는 솔직하게 표현한다.
"돌려서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미국 인디언들을 몰살시켰고 모두가 그 일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진보와 개화에 방해가 되는 종족을 뿌리 뽑는 일에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역사를 문명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미국 사회를 지배했고, 우리 현대사를 주장질했다.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오늘날 지배 집단이 우리 교육에 대해 그 어떤 거룩한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제 이익을 지키겠다는 이기심의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체제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워드 진은 아주 쉬운 방법론을 제안한다. 아이들로 하여금 '약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멕시코 전쟁을 통해 전 국토의 절반을 빼앗겼던 멕시코 인민들의 입장에서, 콜럼버스가 아니라 그에 의해 지옥으로 내던져진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테러와 린치를 각오하고 민권운동에 뛰어 들었던 1960년대 흑인들의 시선으로 미국 사회를 보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대입될 한국 사회의 약자들은 누구일까.
하워드 진은 '용기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이 노력들이 무의미한 안락으로 파묻힐 수도 있었던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해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식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체제도 역사를 통해 바라보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무의미한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저항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만났고, 그들은 모두 훌륭했으며 그들과의 우정으로 기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의 나이 올해로 여든 일곱이다. 부정과 불의 앞에 지금도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그를 보면서 공정택과 류근일 류의 인간들로부터 얻은 상처와 피로를 잠시나마 잊는다. 그가 온 힘을 다해 외치는 것은 단순하다. 아이들에게 '현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야만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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