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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이명박과 '고임금' 은행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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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이명박과 '고임금' 은행노동자

[기자의 눈]방만 경영의 주체는 '사장님'들이다

이명박 정부가 21일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가 국내은행 해외 외화자금 차입에 대해 지급보증하기로 결정했다. 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당장 은행들의 '달러 가뭄'을 해소해주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정부가 지급보증하면 은행들이 외화 차입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이를 대신 물어줘야 한다. 이 경우 국민들의 세금을 쏟아 붓게 된다는 얘기다. 국민들의 세금을 담보로 은행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자칫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게다가 현재 은행들이 겪고 있는 '달러 가뭄'은 전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부 변수 탓으로 돌리기 힘들다. 은행들의 경영 방식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은행들은 외화대출을 늘리려고 무분별하게 외화차입을 해왔고, 수수료 수입확대를 위해 외화자산과 부채 간의 만기불일치를 유발하는 외환영업 행태를 보였으며, 조선과 플랜트 업체의 선물환을 경쟁적으로 매입해 달러 수요급증으로 환율 폭등을 불러왔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는 등 이미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무분별하게 늘리는 등 부실을 자초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부동산 PF, 금융부실 폭탄되나)

MB "고임금 받으면서 정부지원 받으면 안 돼"
▲현대건설 사장 시절의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지급보증안은 은행들의 이 같은 방만 경영에 대한 책임 문제는 덮고 넘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은행들에 대한 지급보증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은행들의 자구적 노력을 촉구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혜택을 받는 은행들이 고임금 구조를 유지한 채 정부지원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받을 임금을 다 받다가 정부지원을 받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은행권은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화답을 보냈다. 은행연합회장과 시중 18개 은행장들은 2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회의를 갖고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자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들의 연봉 삭감과 직원들이 자발적 임금 동결을 유도하겠다"고 결의했다. 22일 대다수의 언론들도 은행의 고임금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나섰다.

물론 은행들의 임금 수준이 다른 산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사실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평균 급여는 국민은행 7230만 원, 신한은행 6920만 원, 하나은행 6500만 원 등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과연 1000억 달러나 정부가 지급보증해주는 현실이 과연 은행원들의 고임금 때문일까? 현 사태를 불러온 은행들의 방만 경영의 핵심 문제가 고임금 구조인가? 더 나아가 방만 경영의 책임이 고임금을 받는 은행 노동자들에게 있을까?

사장님들의 도덕적 해이,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

아니다. 방만경영의 책임은 분명 은행의 경영진들에게 있다. 하지만 '사장님'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임금 많이 받는 노동자'들 탓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 발언의 문제점은 공기업, 금융권 등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임금을 받는 이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여론 탓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대통령은 방만한 경영을 한 은행의 경영진들을 질타한 게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지급 보증을 해주는 등 방만 경영으로 불거진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고통 분담'(?)을 감행하라는 것이다. '사장님' 출신 대통령이 나서서 '사장님'들의 실패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준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질타'에 은행들이 행여나 뒤질세라 일제히 '임금 삭감'을 결의하고 나선 것도 이런 '사장님들간의 연대'를 잘 보여준다. 더군다나 올 금융노조의 임.단협 협상이 23일 시작될 예정이었다는 점에서도 시점도 참 절묘했다.

은행 노동자들의 고임금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사장님 마인드' 때문에 궁지로 몰리는 것은 은행 노동자들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이었던 지난 1월 "비정규직 문제가 참 많지만 법을 어떻게 만들더라도 기업에 수지가 안 맞으면 기업은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며 "강제로 정규직을 쓰라고 하면 쓰겠냐"고 말했다. 기업들이 현행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지 않으려고 각종 '꼼수'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이 대통령은 또 "노동자들이 태안 사고현장의 자원봉사자들처럼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그 기업이 성장하는 게 뭐가 어렵겠냐"고 노동자들의 인내와 희생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사장님' 이 대통령의 날카로운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달 25일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그동안 주로 기업들이 부담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식비를 노동자들이 부담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처럼 '사장님' 이명박 눈에는 임금 등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무조건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면 이 대통령은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세금을 끌어다가 유동성 지원을 해주기로한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은행들의 '도덕성' 문제를 걸고 넘어진 것은 은행과 관계에서 항상 불리한 '을(乙)'의 입장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건설사 '사장님'의 경험이 투영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어쨌든 이를 통해 다시 한번 이 대통령의 '건설업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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