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 한국 수출은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 특히 원자재 자원 부국들의 고도성장과 거품상승에 힘입어 큰 성장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경기가 위축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수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진국 경제는 또 어떤가. 선진국 경제 역시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동안 선진국의 자산시장 거품이 실물시장의 거품까지 엄청나게 부풀려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수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한국 내수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부동산 거품은 크게 부풀어 있는 상태이고, 가계부채는 급증하고 있으며, 내수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상태에서 수출까지 크게 둔화된다면 이후 결과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위기관리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정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요즘 이명박 정부는 어떤가. 경기침체기에는 부유층에게 감세를 해 보아야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90년대 일본처럼 재정적자만 늘린다는 게 상식인데, 현 정부 관료들은 부유층에게 감세하겠다고 난리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프레시안>과 <대자보>기고문 등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으므로 이번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90년대 일본식 SOC 투자 남발하면, 치명적 결과 낳는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근래의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한 뉴욕대 루비니 교수도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가 1990년대 일본식의 낭비성 SOC 투자를 남발하는 것은 금물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자료들은 1990년대 일본의 낭비성 SOC 투자가 일본의 재정에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윗 자료들을 보면 1990년대 일본의 GDP 대비 정부의 (건설)투자 비중이 EU에 비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 또한 1990년대의 낭비성 SOC건설투자와 감세정책 등으로 일본의 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하여, 2000년 이후부터는 정부의 (건설)투자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일본정부의 낭비성 SOC건설투자와 감세정책 등은 일본의 재정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위의 자료에 의하면 2006년 현재 일본정부는 세입의 30.7%를 국공채 발행에 의존하고 있고 세출의 23.5%를 국채비(국채 원리금 상환 비용)로 지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현재 일본 정부는 재정 위기에 몰려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 나라의 재정 상황이 이렇게 되면, 정부는 과다한 경직성 비용 때문에 국가의 성장잠재력 확충에 필요한 요긴한 정책들을 펼 수도 없다.
"건설관련 연구기관들의 엉터리 보고서, 재정 낭비 부추긴다"
이쯤에서 한국 건설 관련 연구자들과 경제관료들을 돌아보자. 이들은 선진국에 비해 한국 물류비가 과다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SOC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1990년대 일본 정부가 저지른 것과 같은 천문학적인 재정 낭비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의 주장은 사실과도 동떨어져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두 가지 인용문을 비교해 보며 이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파헤쳐 보기로 하자.
(1) "우리나라의 SOC시설은 충분한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국가물류비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12.5%로 미국 9.1%(2005년), 일본 8.2%(2003년)에 비해 높다."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파이낸셜뉴스> 9월 30일)
(2) "2003년에 나온 IMD의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물류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중국 14.5%, 인도 14.0%, 일본 10.5%, 프랑스 11.7%, 독일 11.8%, 캐나다 11.8%, 미국 8.7% 등으로 선진국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것을 보여준다."(예상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서울경제신문> 9월 4일)
(3) "국가 물류비의 국제비교를 (하면서) 선진국의 경우 GDP 대비 10% 전후인데 우리나라는 16%(선진국들과 달리 하역비,포장비, 물류정보비, 외항수송비까지 모두 포함) 전후라 하는 것은 경제규모가 같은 수준에 있는 국가와의 비교에 있어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GDP 규모가 다르고 인건비와 지가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논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결국 이 말은 우리나라 물류비가 '고비용구조'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연구원, '국가물류비의 국제비교연구' 2001년 10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1)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겠지만 (3)에 대해서는 상당히 낯설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1)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할 뿐이다. 이 엉터리 주장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3)의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미국의 총물류비 대비 수송비 비중은 59.7%, 일본은 64.9%, 한국은 67.7%다. 결국 물류비의 상당 부분은 수송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인데 이 때 수송비라는 것은 상당부분이 유가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각국의 1인당 GDP 대비 리터당 유가 비율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여기에 (1)의 치명적인 오류를 검증할 수 있는 열쇠가 숨어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표는 OECD와 IEA가 발표한 각국의 유가 통계자료 중에서 필자가 영업용 디젤유의 리터당 가격을 가져와서 몇 나라의 수치를 비교해 놓은 것이다.
윗 표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동일한 거리를, 동일한 질의 도로로, 동일한 차종의 차량이 운행해서 동일하게 영업용 디젤유 1천리터를 소비했다 하더라도 각국의 1인당 GDP 차이에 따라 1인당 GDP 대비 물류비 비율 차이는 엄청나게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위의 표는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일부 국책연구소 연구원들과 일부 경제 관료들처럼 이런 엄청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우리나라의 GDP 대비 물류비 비율을 미국과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정말 무모하고 위험한 주장이다.
최소한의 사회과학 연구의 기본이라도 갖춘 사람은 결코 우리나라 일부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이나 일부 경제관료들처럼 그렇게 무모하게 선진국과 단순비교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과학 방법론 기초교과서들이 강조하는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구자라면 각국의 GDP 대비 유가 비율을 동일하게 통제하고 각국의 물류비를 비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GDP 대비 유가 비율을 동일하게 통제하고 한미일 3국의 GDP 대비 물류비의 비율을 비교한다면 3국의 차이는 일부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이나 일부 경제관료들의 주장처럼 그렇게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2001년 국토연구원의 비교적 똑똑한 연구원들이 "우리나라 물류비가 고비용구조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로 그들의 연구보고서의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90년대 일본식 재정 낭비 피하려면 북유럽식 재정정책 벤치마킹해야"
그러나 이러한 소수의 똑똑한 연구자들과 달리 일부 국책연구소 연구원들과 일부 경제관료들은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무능과 독선'을 드러내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
사실 GDP 대비 물류비 논쟁은 논쟁의 가치도 없는 연구의 기본 자세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런 엉터리 보고서와 주장들이 본격적으로 걸러지거나 검증되지 않고 사실인 양 유포되고 매년 수조 원의 SOC 투자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MB정부가 90년대 일본식의 낭비적 재정투자로 국가의 미래에 큰 고통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SOC 총량이 부족하다느니, GDP 대비 물류비 비율이 과다하다느니하는 전혀 근거없는 낭설부터 집어치워야 한다.
재정을 무모하게 낭비했던 일본과 달리, 북유럽 국가들은 90년대 겪었던 거품붕괴 위기를 오히려 국가 재건의 기회로 만들었다. 한국 정부 역시 북유럽 재정 정책을 눈여겨 보고 이들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