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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화, 혐한(嫌韓)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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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화, 혐한(嫌韓)의 세계화

[정희준의 어퍼컷] LPGA '영어 의무화'의 본질

미국 LPGA(여자프로골프협회)가 선수들의 영어 사용 의무화 방침을 2주 만에 철회했다. 그동안 소속 선수, 미국의 언론과 정치인은 물론 후원사들까지 반대하는 등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원래의 계획을 취소한 것이다.

LPGA의 영어의무화 방침은 발표하자마자 인종 차별 정책이라는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영어사용 의무화는 영어가 서툰 선수를 차별하는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이런 규정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모욕적이자 자멸적인 행위"라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곧 최경주 등 PGA 소속 남자 선수들도 비판에 나섰고 현재 세계랭킹 1위인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도 반대의견을 보탰다. 분위기기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처음엔 LPGA의 영어강제방침을 내심(!) 환영했을 법한 스폰서들까지 이를 말리고 나서게 된 것이다.

지난 토요일(6일) 철회 방침이 우리에게 전해지자 우리는 '그럼 그렇지' 하며 안도하는 듯하다. 그렇다. 이렇게 좋은 뉴스는 당연히 9시 뉴스에 내보내야 한다. 앵커는 무표정하게 뉴스를 전했지만 우리는 이런 '무식한' 정책을 밀어붙이려 했던 LPGA를 조소하며, 결국 그들이 백기를 든 사실에 '깨소금처럼 꼬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공공의 적'이 된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
▲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영어 사용 의무화는 영어가 서툰 선수를 차별하는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이런 규정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모욕적이자 자멸적인 행위"라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영어사용'이 아니라 '한국어 금지'였다. ⓒ뉴시스

논란의 핵심은 '영어 사용'이 아니라 '한국어 금지'였다. 논란이 되면서 비영어권 국가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라 말들 했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한국 선수들을 겨냥한 정책이다. 지난달 세이프웨이 클래식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을 모아놓고 영어 의무화 방침을 통보한 것부터가 그렇다. 어쩌다 한국 여자 선수들이 LPGA에서 '공공의 적'이 됐을까.

우리는 우리 '낭자군단'이 미국 대회인 LPGA에서 잇단 승전보를 전한다 해서 좋아들 했지만 이들이 잘 하면 잘 할수록 LPGA에서 '애물단지'가 돼간다는 것은 간과했다. 현재 LPGA에 등록된 121명의 외국 선수 가운데 한국인이 45명이다. 무려 37%가 한국인이고 '김'씨만 열명을 넘나든다. 어느 대회에선 상위 입상 10명 중 7명이 한국 선수들이었다.

필자가 작년에 밝혔듯(언론에선 안 알려주는 '왕따 골프' 이야기) 한국 선수들이 대회를 휩쓸기 시작하자 미국 선수들이 우승에서 멀어지게 됐고 결국 스폰서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해 LPGA 대회 개최마저 위협받게 된 것이다. 흑인 타이거 우즈가 지존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비제이 싱, 최경주 등 유색인들이 백인과 함께 군웅할거 하는 PGA와는 달리 LPGA는 백인중산층, 즉 WASP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리그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은 인종 차별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LPGA도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스포츠 리그이기에 인종적 다양성은 필수다. 이번 문제는 오히려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문화를, 아니 자신이 소속된 리그의 문화조차 무시해 버리는 한국 선수들이 초래했다. 그래서 이번 문제를 미국의 인종 차별 쪽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매우 단선적인 사고인 것이다.

배울 만큼 배웠을(?) LPGA 사무국이 이번 같은 노골적 인종 차별 방침을 시도한 이유는 단순히 미국 선수들이 우승을 못해서는 아니다. 이 LPGA에 진출한 우리 선수들은 미국의 문화는 물론 골프 예절, 심지어는 규칙까지 무시하며 경기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골프 대디'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한국 아버지들은 경기 중 수신호는 물론 한국말로 코치하는 등 규정 위반을 '아끼지 않고' 반복해 대회 기간 외국 선수들과 시비까지 벌이곤 했다.

급기야 2003년 미국선수인 잰 스티븐슨이 '아시아 선수가 투어를 망친다'며 한국 선수들을 비난했고 LPGA는 한국 선수들에게 코스에서 부모와 한국말로 이야기하지 말라는 권고를 해 그때 이미 인종 차별 논란에 빠진 바 있다.

한국인의 '나홀로 세계화'?

특히 LPGA가 이번에도 내세웠듯 한국 선수들은 대회 전날 열리는 프로암대회(프로선수와 아마추어들이 함께 라운딩 하는)에 너무 무성의하게 임했다. 프로암대회는 후원사의 고위임원과 이들이 초청한 인사들, 그리고 지역의 유지들이 별도의 참가비까지 내고 참여하는, 일종의 팬서비스이면서 축제다.

그런데 상당수 한국 선수들은 이들을 없는 듯 대하거나 심지어 첫 인사 '헬로' 외엔 입을 닫아버려 스폰서들이 주최 측에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져 LPGA를 난처하게 했다. '언어'를 못하더라도 함께 한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은 여럿 있게 마련인데도 한국 선수들 중엔 자신의 캐디나 그곳까지 쫓아 나온 아버지와 코스 분석에만 열중하면서 함께 동반라운딩에 나선 아마추어들을 무시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 선수들과 그 가족에게 미국은 '욕망의 땅'이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은 한 가정의 '브레드위너'로 전락하게 되고 이들은 어린 나이에 어른들로부터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받게 된다. 결국 프로선수가 된 후에도 우승하고 돈 따오는 데에만 골몰했지 미국 골프문화의 구성원이 되려는, 즉 그들과 '교류'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정복'에서만 만족을 찾는 반면 자기 직업과 자신이 소속된 리그에 대한 배려나 책임 의식은 아랑곳 하지 않는 '수준 낮은 프로'가 돼버린 것이다. 언론이 전하는 우리 선수들의 우승 장면을 보라. 옆에서 축하하는 사람이라곤 모조리 한국선수들 뿐이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폭동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LA폭동이다. LA의 고속도로를 규정속도 이상으로 달리던 흑인 로드니 킹을 네 명의 백인 경찰관들이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했는데 마침 고속도로 건너편 아파트 거주민이 이를 찍어 방송국에 넘기면서 인종차별 문제로 미국사회가 들끓게 됐다. 그런데 이들 경찰에 대해 무죄판결이 나오자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반한 감정 '창조'하는 한국인들

그런데 폭동을 일으킨 LA의 흑인들은 코리아타운을 공격해 이곳 한인들의 상점 90%가 파괴되는, 전혀 엉뚱한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LA 전체 피해액이 7억1000만 달러였는데 한국교민 피해액이 3억5000만 달러로 전체 피해의 절반이 코리아타운에 집중된 것이다.

이는 LA에 이주한 많은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해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는 동안 흑인커뮤니티를 적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 미국으로 이민을 가 경제력이 넉넉지 않은 한국인들은 당연히 건물값, 집값이 싼 흑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열심히 일 한 덕에 돈을 벌긴 했지만 이들은 흑인동네에 살면서도 흑인들을 무시하고 이들을 항상 '잠재적 도둑'으로 간주했다.

게다가 돈을 벌어 좋은 동네로 이사 간 한국인들은 이후 캐딜락 같은 좋은 차를 타고 다시 나타나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다니면서 흑인들의 '염장을 지르는' 쓸 데 없는 행동을 하고 다녀 반한 감정을 스스로 '창조'해 냈다. 흑인들 상대로 장사를 해 그들 덕에 돈을 벌었는데 어찌 그들을 '도둑'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시절 자신이 살았고 자신을 성공하게 만든 동네인데 그곳에 장학금을 내거나 봉사는 못할망정 어찌 그리 무시할 수 있을까. 하긴 그럴 것도 같다. 우리는 우리가 못 살았을 때의 알던 이웃은 애써 모르는 척 하지 않는가.

'세계화'를 떠들 거라면 적어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나 그 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만큼은 필수적이다. 과연 우리가 그러했던가. 뭐 굳이 외국 나간 한국인들만 뭐라 할 것 없다. 지금 우리도 여기 앉아서 똑 같은 짓, 아니 더 한 짓 하고 있지 않나.

한류의 나라가 반한의 나라로 변한 까닭
▲ '베트남 이주여성 영가를 위한 합동위령제'가 지난 4월 28일 베트남여성문화센터와 원불교여성회의 도움으로 대구시 중구 남산동 원불교 대구.경북교구 교구청에서 열렸다. ⓒ뉴시스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린 어떻게 대하고 있나. 굳이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다. 그런데 그 못된 버릇은 외국에 가서도 도대체 바뀌질 않는다. 많은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국가에 생산기지를 운영하면서 그곳 현지인 노동자들을 한국에 온 외국인노동자들과 똑 같이 대해 그곳에서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도대체 왜 때려.

또 베트남, 몽고, 필리핀, 캄보디아에서 들어오는 국제 결혼 이주민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 지난해 베트남 출신 신부 레티김동은 9층 아파트에서 도망치기 위해 커튼으로 만든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떨어져 숨졌다. 9층이다, 9층.

한 달 후엔 역시 베트남의 신부 후안마이가 갈비뼈 18개가 부러지도록 남편에게 맞아 숨졌다. 나이 열여덟이다, 열여덟. 후안마이 경우는 베트남의 언론들이 '작심하고' 크게 보도해 베트남은 한류의 나라에서 반한의 나라로 돌아섰다. 올해에도 22살의 쩐타인란이 투신자살했다.

'초·재혼 상관없음, 나이 상관없음, 장애인 가능, 후불제, 염가제공, 도망가면 책임짐, 베트남 숫처녀….'

국제결혼업체 홍보물의 내용이다. 지난해 미국 국무성의 인신매매 보고서는 인신매매의 성격을 띤 한국의 국제 결혼을 고발했다. 한 지자체는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하면서 '베트남 여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순결한 처녀입니다,' '베트남 여성은 몸매가 환상적입니다'라는 홍보물을 돌려 말썽을 빚기도 했다.

외국 대사관에서 이런 것을 파악 못하고 있을까. 그래서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최근 국제 결혼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이것 역시 사실상 한국인을 겨냥한 것이다.

'깃발 꽂기'가 그렇게 좋을까

우리는 '세계화'를 떠들면서 타문화와의 '교류,' 그리고 타문화에 대한 '배려'와 '동화'는 무시한다. 우리에게 세계화란 오직 이기는 것, '정복'이다. 현지 문화와 정서는 아랑곳 않고 군사작전 하듯 공격적이고도 일방적인 해외선교에 나서는 기독교가 또 다른 사례다. 한국 기독교에게 이교도는 적이다. '공존'은 없다. ('한국형 선교'의 빗나간 진화, 그 끝은 어디?) 굳이 중동의 무슬림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불교를 대하는 국내 상황만 보아도 그러하다.
▲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에서 우승한 한국 대표팀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연합뉴스

그런 '정복욕' 때문인가. 우리는 '깃발 꽂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2년전 미국에서 열린 WBC야구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마운드에 깃발을 꽂았다. 감동적이라 했다. 그때 이를 꼬집었던 사람은 인터넷 공간에서 몰매를 맞았다.

야구경기 이겨서 기쁘면 됐지 웬 감동!? 그런데 이번에도 꽂았다.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쿠바를 물리치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자 선수들은 또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번엔 두 개 꽂았다. 또 감동이란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 바로 중국! 괜한 짓 했다.

현재 중국의 반한 감정을 보자. 누군 이것을 '혐한 정서'라고도 한다. 정서나 감정이나 비슷한 이야기인데 영어로는 sentiment 쯤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보다 더 구체화되고 실질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면 주의(-ism)가 된다. 나는 중국에서의 '반한'이 '정서'를 넘어 '주의'의 문턱에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부터 돈 좀 벌었다고 중국 드나들면서 '돈지랄'하고 중국인들 무시했던 '업보'가 지금 우리의 '국위'에 위협을 가할 정도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인들이 반한 정서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자 주경기장 냐오차오는 일순 조용해졌다. 아무리 미워도 올림픽 역사상 개막식에서 이랬던 경우가 있나 싶다. 또 무조건 한국의 상대팀만 응원한 것도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의 야구경기에서 중국 관중이 일본을 응원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만주전쟁과 난징대학살이라는, 근대인류사에서 가장 잔혹한 만행을 자신에게 저지른 일본보다 한국인이 더 미운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이제 이를 '혐한'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집단적 차원에서 이건 증오의 수준이다. 그래서 급해진 재중한인회가 자정운동까지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지난 주 한 신문이 전했다. 앞으로 골프장과 가라오케 등 유흥업소에서의 행동을 조심하자는 것, 그래서 일본인들보다 팁을 더 주고도 욕을 먹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흑인, 백인, 아시아인, 이젠 또 누구?

백인들과는 어울리지도 않고, 흑인들은 도둑 취급하고, 아시아인은 두들겨 패고, 중국인은 무시하고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이 바로 반한감정이다. 남 탓할 것 없다. 다 우리가 만들어 낸 것 아닌가. 그럼 이제 남은 데는 아프리카랑 남미 정도인가.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대할까. '원주민'이라고 원숭이 흉내 내며 놀려대지나 않을까.

세계화는 서로 친하게 지내며 교류하는 것이지 승리하고 무찌르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도 잘 되고 또 어렵고 급할 때 서로 돕자는 것 아닌가. 세계화 하자면서 맨날 세계를 상대로 무찌르려는 생각만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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