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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 포크의 영광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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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08년, 한국 포크의 영광은 계속된다

[대중음악의 오늘을 보는 시선 ⑤]

포크, 라는 말은 어쩐지 세대적이다. 힙합이 30대 중반 이상의 사람들에게 다소 덜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포크는 30대 이하의 사람들에게 서먹한 삼촌의 존재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통기타가 익숙한 놀이문화였던 세대,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대신 기타학원에 다니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연가' 같은 노래의 코드를 외우는 것이 훨씬 쉬크(Schick)했던 세대에게 포크는 추억이며 또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통기타 하나만 있으면 밤을 새워 노래하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광화문 근처의 카페에만 가 봐도 밤새 기타 치며 노래하는 40대들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서태지의 등장 이후,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 10대가 한국 대중음악의 주 소비층으로 등장한 이후 포크는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언어가 되지 못했다. 대학에서 MT를 가도 기타를 가져가지 않았고, 노래방 기계가 없이는 더 이상 함께 노래하지도 않았다. 그 무렵부터 왕년의 포크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미사리로 달려가 카페 간판에 자신의 히트곡과 사진을 박아 넣었으며, 중년의 언니오빠들은 사춘기 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없는 추억을 만들어내는데 열중했다. 그리하여 이제 포크는 1970-80년대의 상징으로 국한될 뿐, R&B와 일렉트로니카 같은 당대 트렌드의 구석에도 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포크 혹은 통기타 음악은 과거의 유산일 뿐일까? 어쩌면 우리가 2007년 최고의 음반 판매 뮤지션이 소녀시대이거나 원더걸스일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처럼 포크 역시 어떠한 오해의 대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대는 여의도와 미사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음악은 TV와 라디오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8년 현재 한국 포크는 과거로부터 돌아왔고 해외로부터 자극되었으며 다시 20대에게 기타를 쥐어주고 있기도 하다. 이 다양한 흐름을 일별하며 우리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제 한국 포크가 다시 메이저가 될 수 있다는 낙관이 아니라, 있어야 할 음악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명백하고 평범한 사실이다.

있어야 할 음악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
▲ 1970년대 말 명동과 신촌의 포크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1980년 광주를 거치며 낭만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되었던 김현성, 백창우, 홍순관 같은 이들은 포크의 아름다움과 민중가요의 진지함을 적절히 결합시키며 김민기와 양병집의 계보를 잇는 현실 참여적 포크 음악의 역사를 1990년대까지 끌고 왔다. ⓒ백창우홈페이지

먼저 한국 포크의 마지막 스타였던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고, 김창기가 떠난 동물원이 더 이상 히트곡을 내지 못하며, 잠시나마 영화를 누렸던 동년배의 뮤지션들이 대부분 미사리로 발길을 돌렸을 때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일군의 포키들이 있다. 1970년대 말 명동과 신촌의 포크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1980년 광주를 거치며 낭만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되었던 김현성, 백창우, 홍순관 같은 이들은 포크의 아름다움과 민중가요의 진지함을 적절히 결합시키며 김민기와 양병집의 계보를 잇는 현실 참여적 포크 음악의 역사를 1990년대까지 끌고 왔다. 그러나 노래가 감상되고 반추되기보다는 1회용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포크가 미사리로 밀려갈 때,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서정시와 결합시키며 한국 포크의 새로운 돌파구를 타진했다.

원래 가장 가사에 주력하는 음악답게 스스로 시와 같은 노랫말들을 써내곤 했던 포크와 시의 만남은 문학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혼종이 주는 이채로움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두 장르의 만남은 시노래의 격조와 품격을 획득하며 힙합과 트로트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던 이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다. '시노래모임 나팔꽃'이라 자신들을 명명한 이들은 이미 음악과 문학에서 부인하기 힘든 지명도를 획득했던 이들이었지만 서로간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활력을 수혈 받았고, 이들은 꾸준하고 기획력이 돋보이는 소극장 공연과 음반 출시, 지역 순회공연을 펼치며 포크의 생존을 알리는 보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동인체제로 운영되는 활동의 피로감으로 최근에는 다소 활동이 뜸하지만 시노래모임 나팔꽃은 2000년대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중년 포크 뮤지션들의 활동으로 기록될 만 하다.

미사리로 가지 않은 중년의 포크뮤지션들이 나팔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명동 포크의 중심이기도 했던 김의철을 비롯한 일군의 포크뮤지션들은 '청개구리'라는 이름을 걸고 명동과 일산의 공연장을 중심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곡 위주였던 나팔꽃에 비해 과거의 노래가 더 많았던 청개구리의 공연장에는 상대적으로 훨씬 연배가 많은 이들이 추억을 되새기며 꽉꽉 들어찼고, 작가주의적 엄숙함이 있는 이들의 공연에는 특히 왕년의 포크 매니아들이 튼실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오래도록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한돌 같은 옛 스타의 귀환으로 이어지던 청개구리 모임은 공연이 계속되며 손현숙, 윤선애, 전경옥 같은 민중가요 진영 출신의 여성 포크 뮤지션들이 결합해 활력을 더했다.

나팔꽃의 포크뮤지션들과 달리 다소 비현실참여적인 편이었던 청개구리의 포크뮤지션들 가운데 2000년대 들어 거의 유일하게 창작활동을 이어간 김두수는 발군의 저력을 선보이며 청개구리 모임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다. 그가 2002년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4집 [자유혼]은 한국에서 전무후무한 사이키델릭 포크 음반으로서 강한 음악적 아우라를 발산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김두수는 2007년 5집 [열흘나비]에서도 환상적인 사운드와 도저한 노랫말을 결합시키며 자신의 은자(隱者)적 이미지를 배가시켜 한국 포크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중년 포크 음악인들과 팬들의 귀환은 물론 더 이상 동시대의 음악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음악적 세대분열이라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한편 각기 다른 세대가 각기 다른 음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다양함이 성장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과거의 음악인들이 현재를 살아가며 벌어졌던 일은 단순히 공연과 새 음반 출시만은 아니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얄팍한 지층을 뒤늦게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전설적인 포크 음반들의 복각으로 이어졌고, 덕분에 팬들은 중고음반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되던 옛 명반들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 박인희, 현경과 영애, 해바라기 등의 복각음반은 비트볼, 뮤직리서치, 리버맨뮤직 등의 리이슈 전문 레이블들의 성장으로 이어지며 과거의 영화가 그리 만만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어떤 이에게는 추억이었을 이름들이 어떤 이에게는 놀라운 발견이 되었고, 이로써 과거는 현재로 이어질 통로 하나를 더 얻게 되었다.

포크의 전통을 유지해온 민중음악 뮤지션들

과거의 귀환이 현재 한국 포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면 다른 한축은 당연히 지금을 말하는 젊은 포크뮤지션들의 존재일 것이다. 먼저 민중음악 진영의 포크 뮤지션들 이야기를 해보자. 유의미한 가사 전달에 주력하고 즉각적인 공연이 가능하도록 음악을 전투용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민중음악은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음악적 분화를 거치면서도 포크의 전통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노래마을' 등의 노래모임에서 독립한 안치환, 손병휘, 문진오, 이정열, 이지상 등은 자신의 음악적 영토를 포크에 국한하지 않으면서도 포크의 섬세하고 묵직한 질감을 음악적으로 다양하게 변주했다.
▲ 미술에서 음악으로 장르를 바꾼 늦깎이 뮤지션 연영석은 명 기타리스트 고명원과 함께 록의 어법으로 독창적인 민중가요를 들려주면서도 클럽 빵에서는 통기타 하나만을 가지고 자신의 음악을 벼리며 홍대 인디 씬과 민중가요의 접합을 꾀하고 있다. ⓒ연영석홈페이지

포크에서 록으로 전향한 것처럼 보이는 안치환은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민중가요 다시 부르기 등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포크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손병휘는 늘상 거리의 음악인으로 달려가면서도 섬세하고 깔끔한 포크의 서정을 음악에 담아 보여주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활동을 겸하고 있는 문진오는 무게감 있는 보컬의 매력을 기반으로 가장 질박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으며, 이지상은 시노래모임 나팔꽃과 자신의 활동을 병행하며 '사랑-당신을 위한 기도'처럼 처연하고 쓸쓸할 때 더욱 빛나는 노래들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팀 활동 경력이 그리 많지 않은 박창근, 정윤경, 연영석의 존재도 빠뜨릴 수 없다.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창근은 여리면서도 매우 힘 있는 보컬과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결합시키며 가장 젊은 민중가요 뮤지션으로 민중가요의 진화를 증거하고 있으며, 정윤경은 곱고 매끄러운 노래들로 만만치 않은 창작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미술에서 음악으로 장르를 바꾼 늦깎이 뮤지션 연영석은 명 기타리스트 고명원과 함께 록의 어법으로 독창적인 민중가요를 들려주면서도 클럽 빵에서는 통기타 하나만을 가지고 자신의 음악을 벼리며 홍대 인디 씬과 민중가요의 접합을 꾀하고 있다. 이밖에도 청개구리 모임에서 언급했던 여성 포크록 뮤지션 손현숙은 꾸준한 음반 발표와 콘서트를 통해 일취월장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전경옥과 윤선애 역시 포크적 정서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말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지역 포크 공동체의 맥을 광주에서 이어가고 있는 김원중과 박문옥, 한보리 역시 유려하고 깊이 있는 음악들을 내놓으며 한결같은 가객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대추리에서 목 졸려 쓰러진 뒤 스스로 음악적 유폐를 단행한 정태춘의 입이 다시 열리는 순간 우리는 그의 비감한,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민중가요는 원래 음악적으로 포크적 정서에 기반 한 것이기도 했지만 팀 활동에서 솔로 활동으로 독립한 뮤지션들은 더더욱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음악활동을 찾아야했기 때문에 포크 음악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이 흐름은 한국 포크의 현실참여적 기풍을 지켜나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대에서 만날 수 있는 인디포크의 스타들

그리고 홍대 인디 씬 역시 현재 한국 포크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한국 포크의 새롭고 다양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집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대 인디 씬에 록밴드 만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클럽 빵과 바다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군의 뮤지션들은 여전히 통기타 하나만으로 자신의 음악을 전달하는데 거침이 없다. 김민기나 한대수, 노찾사보다는 조동진, 어떤날, 장필순을 듣고 비틀즈나 데미언 라이스(Damien Rice)를 더 아낄 것이 분명한 이들은 20대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에 걸맞는 수줍음과 떨림 가득한 정서로 곱고 다감한 개인적 서정의 노래들을 부르며 클럽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내공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

1980년대 동아기획에서 발아한 포크뮤직의 요람이었던 하나음악의 오소영, 이다오, 장필순 이후로 맥이 끊어져버린 개인적 서정의 포크 계보를 잇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이들의 음악은 '88만 원 세대'로 통칭되는 사회적 불안감이 비록 음악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아직은 연주나 가창이 서투르기도 하며 모던 록과의 경계가 다소 희미하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하고 투명한 포크 특유의 질감만은 영롱한 이들의 음악은 2007년 어쩌면 20년 전이라면 [우리노래전시회]가 되었을지도 모를 [라이브 클럽 빵 컴필레이션 3]을 통해 실체를 드러낸 바 있다. 수많은 아마추어 포크 뮤지션들이 클럽 빵의 오디션을 보고 한달에 한번뿐인 무대에 오르려 애쓰는 가운데 몇몇의 이름은 이미 홍대 씬에서는 어지간한 오버그라운드 뮤지션들보다 더 뜨거운 열광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귓속말을 하듯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시와의 치유 같은 음악과 가슴을 베일 듯 예리한 단편의 아름다움을 직조해낸 이장혁의 음악은 분명 2008년 이후 오래도록 주목하게 될 것이다. 1980년대 한국 포크의 진득함이 배어있는 박기혁과 한국 포크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아톰북의 선선한 음악에도 귀를 아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디 씬의 고참밴드로서 자리를 지키며 포크 록의 자장을 확장하고 있는 플라스틱 피플과 홍대 씬에서 출발했지만 이젠 홍대 씬을 넘어선 스타가 되어버린 루시드 폴 역시 아름다운 포크 음악 창작자들이다. 이젠 활동을 중단한 푸른 새벽은 몽롱하면서도 자폐적인 음악들을 선보이며 인디 씬에 한 획을 그었고, 밴드 편성으로 활동 중인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재치 있고 감각적인 작업들도 현재의 한국 포크음악을 대표할만하다.
▲ 이젠 활동을 중단한 푸른 새벽은 몽롱하면서도 자폐적인 음악들을 선보이며 인디 씬에 한 획을 그었고, 밴드 편성으로 활동 중인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재치 있고 감각적인 작업들도 현재의 한국 포크음악을 대표할만하다. ⓒ김중만

이처럼 홍대 앞의 포크 씬은 당연히 포크 음악을 하고자 하는 뮤지션들 덕분에 채워지고 재생산되지만 그 과정에서 클럽 빵이나 바다비와 같은 클럽의 역할을 결코 폄하할 수 없다. 이 클럽들은 포크 뮤지션들의 음악을 상시적으로 들을 수 있는 공간이며, 또한 뮤지션들 간의 공동체로서 서로를 교감하고 자극받으며 더욱 확장되는 근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클럽 빵의 무대에 더욱 많은 젊은 아마추어 포크 뮤지션들이 몰리고 있으며, 특히 20대 음악 팬들의 호응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낙관적이다.

서울대학교의 포크 모임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작업들 역시 20대의 자주제작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포크 록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히트곡 '앵콜요청금지'처럼 풋풋하고 진솔한 사운드의 포크공동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도 발랄한 통기타 음악의 싱얼롱 매력을 복원시키고 있는 나무자전거나 언니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유리상자 역시 통기타의 매력을 알리는 포크 메신저이다.

지금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나 글렌 한사드 & 마르게타 이글로바(Glen Hansard & Marketa Irglova)처럼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름들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해외의 인디 포크 뮤지션들은 영화와 인터넷을 통해 자국의 영토를 넘어 한국의 감수성 풍부한 소년소녀들의 예민한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 포크의 여러 경향들 가운데 재주소년이나 이장혁, 루시드 폴 같은 한국 인디포크의 스타가 조금 더 끓어오르는 순간 한국 포크는 1970-80년대의 과거와는 또 다른 지점의 영토를 수면위로 띄울 수 있을 것이다.

포크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장르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사회를 노래하건 자신에 대해 노래하건 뮤지션에게 통기타는 자신의 최소한의 근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획사에서 육성되는 뮤지션들조차 기타를 배우고 곡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기타 하나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음악의 길을 가는 사람은 가난하고 치열하게 정직해질 수밖에 없다. 자아가 사라진 채 남의 이야기를 붕어처럼 따라하거나 기계로 이어붙인 음악의 범람 속에서 포크는 음악에 대한 태도를 묻는 깐깐한 감독관이거나 아날로그의 매력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을 것이다.

시청 앞 촛불 집회의 '아침이슬'과 광화문 통기타 카페들의 '일어나', 그리고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의 '앵두'사이의 거리는 그리 가깝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은 촛불을 통해 서로의 음악적 실체를 확인하기도 했다. 옛 흐름을 이으면서도 젊은 세대들의 감성을 대변하는데 성공해가고 있는 포크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진심을 담은 노래는 언젠가는 만나게 되고, 그 노래는 누구의 가슴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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