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해임 소식을 접하고, 심지어'방송법'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하여, 하나씩 배워가며 글을 썼다. 오류나 착오가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정연주 사건을 담당하게 될 판사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현명한 판단을 하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하며 이글을 감히 쓰게 되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중에 정연주 사장이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과연 점입가경이다.
정연주 해임을 알리는 11일 연합뉴스 기사는 다음과 같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오늘 오전 KBS 이사회의 제청을 받아들여 정 사장 해임 제청안에 서명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KBS가 심기일전해 방만한 경영 상태를 해소하고 공영성을 회복,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해임안에 서명하면서 'KBS도 이제 거듭나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연합뉴스 11일자).
청와대도 법률적 검토를 하는 등 깊이 고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주장대로 대통령에게 KBS사장 해임권이 있다면, 왜 구태여 국가의 주요 공권력(감사원 검찰 경찰 방통위 국세청 대학 등)들을 망신시키는 과정까지 거쳤는지 의아하다.
'정연주 사냥'은 이제 사법부로 넘어갔다. 법리로 다투자면 핵심은 두 가지 사안일 것이다. 하나는 대통령이 사장을 해임할 권한이 있는가이다. 또 하나는 '현저한 비위'가 사실이고 해임을 결정할 정도로 중대한가의 여부이다. 물론 보다 핵심은 전자에 있다고 여겨진다. 후자의 문제는 사실의 문제이고 좀 더 복잡하고 게다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의 것이므로 필자가 감히 시비를 가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전자에 집중하여 논하려 한다.
앞서 본 청와대의 설명에서도 해임권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없다. 그나마 한나라당이 같은 날(11일) 발표한 글이 주목할 만하다. 그 글의 제목은 '대통령에게 KBS 사장의 임명권뿐만 아니라 해임권한이 있다'이다. 이 글은 3가지 근거를 대고 있는데 그 근거를 따라가며 생각을 펼쳐보려 한다. 그에 앞서 '임명'의 역사적 기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한국방송공사법='任免'에서 2000년 (통합)방송법='任命'으로
(통합)방송법은 한국방송공사법까지 포괄하여 2000년 1월 12일 공포되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전사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이를 자세히 언급할 여유는 없다. 어떤 법안들이 올라왔고, 각종 위원회와 본회의에서의 논의과정, 전문위원의 설명 등에 대해서는 국회싸이트에 비교적 일목요연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http://likms.assembly.go.kr/bill/jsp/BillDetail.jsp?bill_id=015540)
그리고 방송법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방송개혁위원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방송개혁위원회 활동백서(1998.12.4-1999.3.3)>를 참고하길 바란다.
방송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의 세간의 평가들에 대해서는 KINDS를 통해 각종 신문 기사들을 검색하면 된다. 방송개혁위원회가 활동하던 시기의 언론 기사는 위의 책 뒷부분에 영인 재록되어 있어 쉽게 살필 수 있다.
자세하고 정통한 설명은 누군가 감당해줄 것을 기대하며, 다만 필자는 몇가지 사실만 거론하고자 한다.
방송법은 수년간 입법이 지연되다가 방송개혁위원회의 자문보고서를 기초로 법안이 마련되었다. 물론 국회 논의와 입법과정에서 '변질 왜곡되었지만'(강원용, <<역사의 언덕에서 5>>, 126면), 그 취지만은 기본적으로 계승되었다. 공동여당과 야당간에 주로 논란이 되었던 것은 방송위원회의 위상과 구성 방식이었다. 결국 신기남 정상구외 154인안(공동여당안)은 1999년 12월 28일 209회 임시국회에서 공동여당 단독으로 수정 가결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보면, 방송법의 입법 취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방송개혁위원회과 공동여당의 논의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야 한다. 입법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한 측 보다는 법안을 추진한 주체들의 의도가 중시되어야 한다.
강원용은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거듭된 부탁으로 '평생 관심사'인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2월 28일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는 그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나의 평생지론인 방송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방송이 권력이나 자본, 그 어떤 외부 힘에도 침해받지 않고 국민을 위한 방송으로 서기 위해 방송의 질을 도모하는 길을 법제화한 것으로 여러 민주주의 선진국들에 비해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되어 나는 오래간만에 무척 흐뭇했다"(앞책, 123면).
강원용이 인터뷰나 그의 회고록에서 누누이 강조한 것은 방송의 독립성이었다. 그는 프랑스 방송을 모범으로 삼았다. 그는 2006년 8월 사망했다. 그가 생존해 있다면 '임명'의 입법취지에 대해 용기있게 증언했을 지도 모른다. 전체 삶을 두고 보면 그는 비교적 소신을 지킨 드문 인물이다.
방송개혁위원회의 기본방향 10개 항목에서도 '독립성 확보'와 '공정성 강화'가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었다. KBS의 국가기간방송으로서의 위상과 공영방송화가 강조되었다. 물론 이러한 원칙이 얼마나 지켜졌는지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지만 그러한 시대적 대의에 충실하려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강대인 교수는 당시 방송개혁위원회의 부위원장겸 실행위원장이었다. 그는 방송개혁위원회의 핵심이고 실무 책임자였다. 그도 강원용과 마찬가지로 '실행위원들이 이 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우선적으로 꼽은 것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이었다'고 증언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임명권만 명기했다고 했다.
방송개혁위원회 위원(14명), 실행위원(30명), 전문위원(8명) 등 수많은 인사들이 보다 자세히 증언해 줄 것이다. 그리고 방송개혁위원회의 기록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거기서 보다 신빙성있는 증거 문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방송개혁위원회는'KBS 이사 및 사장 임명절차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방송개혁위, 앞책, 97면). 당시 사장은 이사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任免하고, 이사회(12인)는 방송위 추천으로 대통령이 任免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에 개혁위는 KBS사장의 경우 방송위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任命하고, 이사회의 경우 방송위 6인(비상임), 사장 4인(상임, 부사장 포함) 등 총 11인으로 구성되며 사장이 이사장을 겸하는 방식을 택했다.(방송개혁위, 앞책, 253면). 물론 이 자문안은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수정되었다. 하지만 '임명'이란 표현만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방송법안을 발의하고 국회 통과를 주도한 신기남의원은 그 입법취지를 설명하면서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성을 확보하고 상업주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설명은 법사위와 본회의에서도 되풀이 되었다.(국회속기록, 15대 제 183회 문화체육공보 제5차, 10면; 208회 법제사법 제11차, 13면; 209회 본회의 제1차, 11면 등)
방송법안의 원형을 제공한 방송개혁위원회의 강원용과 강대인의 증언, 국회 입법을 주도한 신기남의 속기록 등의 내용을 고려하면 '임명'의 입법 취지는 분명해 보인다.
심지어 '임명'으로 바뀐 것이 한나라당의 요구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오홍근(국민의 정부 청와대 공보수석)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공기관장 임기 보장법을 발의했고 상위법인 그 법의 취지에 따라 하위법인 통합방송법에서 '免한다'는 대목이 빠졌다고 한다.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오마이뉴스, 8.11)
당시 사정에 밝은 오홍근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입법취지는 보다 더 분명해진다.
이상을 개괄하자면 방송개혁위 단계에서 처음으로 '임면'을 '임명'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용어의 전환은 기간방송 공영방송 독립성 공영성 등의 문제의식의 소산일 것이다.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의 해임권을 배제하여 임기를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방송개혁위원회의 '임명'이란 용어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자문안의 내용이 수정되는 와중에서도, 최종 방송법까지 견지되고 있다. 방송위의 위상과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가 격돌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야당마저도 '임명'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방대한 분량의 법안 검토보고서와 심사보고서(국회의 위 사이트에 연결되어 있음)와 언론기사에서도 '임명'과 관련된 이의제기는 찾지 못했다.
이상이 '임명'의 역사적 기원과 현재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임명'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이라는 문제의식하에서 '임면'에서 '임명'으로 의식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대통령의 해임권은 배제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입법취지 문제는 아래에서 좀 더 보완할 것이다.
근래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임명'을 '임면'으로 되돌리는 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 법안의 내용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스스로 '임명'이란 표현이 해임권을 배제한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법 50조의 '임명'이란 단어를 '임면'으로 고쳐서 정연주 사냥을 했더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치마저 부정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법을 전공한 자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리고 따지기를 잘하는 주류 신문들이 구차한 논리로 해임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안스러울 지경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총체적 신뢰 상실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래에서 그 실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2.해임 옹호 논리와 그 비판
1)상식에 근거한 법해석의 문제
한나라당은 '임명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해임권한이 있다는 것은 명문의 규명이 없어도 상식적으로 자명한 일이다'라는 말했다. 그리고 'KBS전임 사장들은, 똑같은 방송법의 적용을 받으면서도, 정연주 사장과 같은 명백한 귀책사유가 없었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에게 재신임을 스스로 물어왔고, 스스로 사임함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왔었다는 점은 이번 사건에 큰 시사점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말하는 상식이다.
상식(common sense)이란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이해력 ·판단력 및 사려분별'이라고 한다. 물론 상식에도 처한 입장과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과연 한나라당이 정상적인 일반인들의 집합인가에 대해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는 물론 최근 행태와 비리사건들을 보면 그러하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판결시에 헌법재판소는 황당하게도 '관습헌법'을 들이댔다. 한나라당 핵심 인사들이 뇌물 받는 것도 구시대의 관행이고 그들의 상식일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공영방송 사장의 사표를 받는 것도 구시대의 관행이고 그들의 상식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노무현정권 출범시에 당시 KBS사장의 사표를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이와같이 상식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치를 논하게 된다.
'임명'만 규정했지만, 임명권한이 있으니 당연히 해임권한이 있다는 것이 상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법치와는 거리가 있다. 임기에 관한 법조문이 엄연히 있고 해임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도, 정권이 바뀌면 사표를 내야하는 것이 상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법치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그들만의 관습법'에는 그런 조항이 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법조문에 보다 충실한 것이 상식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성문법이 존재하는 한, 자의적 해석은 최대한 절제되어야 한다. 법은 상식의 최대공약수'라고 한나라당은 말했다. 정녕 현행법이 상식을 벗어났다고 여긴다면 법을 개정하면 된다.'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한나라당의 상식이란 10-20년전의 관행이다. 그들의 관행=상식에 맞게 법을 바꾸는 편이 차라리 낫다. 물론 그것은 시대착오적 개정이지만 법치라도 해야 한다.
2)입법취지의 문제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임명'이라고 규정된 조항이 해임권한을 명백히 배제하고자 함이 아니었다는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다.
(1)'任命'과 '任免' 사용례
한나라당은 "종전 근거 법률이었던 한국방송공사법에서도 '임명'과 임면'이 혼용되어 왔다"고 했다. '임면'에서 '임명'으로 변한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 법에는 '임명'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사용되고 있다. 한국방송공사법에서 '임명'이란 단어가 들어간 모든 조항을 망라하면 아래와 같다. 쉽게 알아 볼 수 있게 '임명'과 '임면'만을 한자로 노출했다. 정말 쓸데없는 짓이고 구차하고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다. 한나라당 사람들만 꼼곰히 살피길 바란다. 일반 독자들은 이 사용례를 건너뛰어도 좋다.
가) 9조 2항
임기가 만료된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는 그 후임자가 任命될 때까지 그 직무를 행한다.
나)15조 2항
②부사장은 이사회의 동의를 받아 사장이 任免하고, 본부장은 사장이 任免하되 직근하급직원중에서 任命하여야 한다.<개정 1990·8·1>(15조 2항)
다)부칙 3조
第3條 (임·직원에 관한 경과조치) ①이 법 시행당시의 이사장을 포함한 비상임이사는 이 법에 의한 후임자가 任命될 때까지 그 직무를 행한다.
②이 법 시행당시의 사장·감사 및 본부장은 이 법에 의한 후임자가 任命될 때까지 그 직을 가진다.
라)부칙 <제4264호,1990.8.1>
④(본부장 任命에 관한 경과조치) 이 법 시행당시 재직중인 본부장은 제15조제2항의 개정규정에 불구하고 이 법에 의하여 任命된 것으로 보고, 그 재직기간은 종전의 재직기간을 통산하여 계산한다.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위의 예문들에서 '임명'을 '임면'으로 바꾸어도 뜻이 통하는지를 실험해보라. 그런 경우는 하나도 없다. 결국 '임명'과 '임면'은 결코 무분별하게 혼용되지 않았다. 두 단어가 무차별적으로 혼용되었다는 주장은 법을 만든 이들을 모욕하고 법전의 신뢰도를 불신하는 것이다.
(2)방송위원회의 '임면'과 '임명'에 대한 모호한 해석
당시 방송위원회가 '해임권한이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고, 해임권한이 배제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근거이다. 이 자료의 출처가 어디인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다만 강대인 교수는 전혀 다르게 증언하고 있다. 강대인은 방송위원회 초대 부위원장(2000.2-2002.2)을 역임했고 이어 위원장(2002.2-2003.2)을 지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PD저널(7월 21일자)은 전하고 있다.
"2000년 통합방송법이 제정되면서 해임권을 없애고, 임명권만 명기한 가장 큰 이유는 공영방송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 역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KBS 이사회의 추천으로 (형식적인) 절차만 갖는 것이고, 대통령이 특정 인물을 지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구조가 아니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92)
앞서 살펴보았듯이 강대인이 말한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한다. 한나라당은 자료의 출처를 공개하기 바란다. 아마도 방송위 관계자 증언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한나라당이 말한 식으로 법정 증언할 이들도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방송위원회 관계자의 증언은 입법취지를 가리는데 신뢰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방송위는 방송법 제정과 직접 관련을 가진 기관이 아니며, KBS사장의 임명 문제와도 직접 관련이 없는 기구이다.
입법 취지의 문제는 중요하므로 약간 부연해보자. 2000년 (통합)방송법이 제정되면서 '임면'이 '임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任免한다'(한국방송공사법 15조)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任命한다'(방송법 50조 2항)
두 조항을 비교해보면 단어 하나만 바뀐 것을 분명하게 살필 수 있다. '임면'이 '임명'으로 바뀐 것이 별 의미도 없는 것일까. 부주의한 실수일까? 임명과 관련된 다른 조항들을 살펴보면 이는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이사 임명 규정>
'이사는 방송법 제11조의 규정에 의한 방송위원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任免한다'(한국방송공사법 8조 3항)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任命한다'(방송법 46조 3항)
<부사장과 본부장 임명 규정>
'부사장은 이사회의 동의를 받아 사장이 任免하고, 본부장은 사장이 任免하되 직근하급직원중에서 任命하여야 한다'<改正 1990·8·1>(한국방송공사법 15조 2항)
'부사장과 본부장은 사장이 任命한다. 다만, 부사장을 任命할 경우에는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방송법 50조 5항)
<감사임명 규정>
'감사는 이사회의 제청으로 문화관광부장관이 任免한다'<한국방송공사법 개정 1989·12·30, 1998·2·28>(15조 3항)
'감사는 이사회의 제청으로 방송위원회에서 任命한다'(방송법 50조 4항)
이상의 사용례를 통해 보면, 사장은 물론 이사 부사장 본부장 감사 등은 '임면'에서 '임명'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방송법은 '임명'이란 단어만을 사용했던가? 방송법은 '(직원의 任免)공사의 직원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장이 任免한다.'(52조)라고 '임면'을 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규정은 이전의 한국방송공사법 18조와 한 자도 변함이 없다. 결국 사장 부사장 본부장 이사 감사에 대해서는 임명의 규정만 있고 해임 규정이 없다. 이와 달리 일반 직원에 대해서는 임명과 해임이 동시에 명시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은 한국방송공사법과 방송법에 등장하는 '임명' 혹은 '임면'의 사례들을 총 망라해서 살펴본 것이다. 별 의미도 없고 수고만 많았다. 하지만 사용례들을 분석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통해, 한나라당이 말하는 위의 두가지 근거는 모두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3)방송법 51조의 문제
한나라당은 방송법 51의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문구를 갑자기 들고 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같은 날(8월 11일) 나경원(제6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으로 발표된 글에도 아래와 같이 등장하고 있다(위 두 문건은 한나라당 홈페지에서 볼 수 있다).
"해임권여부에 관한 논란은 이미 법적으로 분명해진 상황이다. 방송법 제51조에 규정된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명백하며 임명권자가 해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탄핵 또는 형사소추에 의하지 않고는 해임할 수 없다' (소위 신분보장규정)는 규정이 없는 한 임명권자가 해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責任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두 가지 뜻이 있다. 1)맡아서 해야 할 임무 또는 그 의무(responsibility), 2)행위의 결과에서 생기는 손실이나 制裁를 한 몸에 떼어 맡는 일.
그럼 '경영성과에 책임을 진다'는 표현에서 '책임'은 두가지 뜻 중 어느 것일까? 그 문구가 들어간 51조 1항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51조(집행기관의 직무 등) 1항 '사장은 공사를 대표하고 공사의 업무를 총괄하며,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눈치 빠른 이들은 필자가 말하려는 바를 대충 짐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51조는 '執行機關의 職務 등'이란 표제어에서 살필 수 있듯이, 社長과 監査의 업무들을 5개항에 걸쳐 나열하고 있다. 거기에 난데없이 견책을 의미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은 어색하다. 그리고 하나의 문장에 職務와 譴責을 동시에 규정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경영성과'라는 단어에 이어 '책임'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결합되면서 견책과 징계의 의미로 해석할 여지도 없지 않지만, 이 문구는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직무를 규정한 51조의 성격을 감안하면 '책임'의 두가지 의미 중 전자 즉 義務나 任務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전히 필자의 해독을 의심하는 이들은 51조의 5가지 조항들을 직접 살필 것을 권한다.
나경원과 조윤선은 '책임'을 후자의 의미로 해석했다. 법에 문외한이지만 나경원과 조윤선보다 필자의 해독이 더 합리적이라고 감히 자신한다. 그들은 정연주는'잘못된 경영성과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그렇게 오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물론 필자의 강박감이 오독을 초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경원의원이 법전을 펴들고 해임의 법적 정당성을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중 이 문구를 발견하고 환호작약하는 장면을 필자가 떠올렸다면 오버한 것일까?
백번 양보해서 '잘못된 경영성과에 책임을 진다'고 해독하더라도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가? 누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더 나아가 그 책임을 대통령이 물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공영방송을 평가하는데 적자 경영이 주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을지, 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로 책임을 져야하는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숙고해야 할 문제로 남는다.
한나라당 '대통령에게 KBS 사장의 임명권뿐만 아니라 해임권한이 있다' 세가지 명백한 근거 (2008-08-11) 대통령에게 KBS사장의 임명권뿐만 아니라 해임권한이 있음은 다음 세 가지 근거에 의해서 명백하다. 1. 우선 상식에 근거한 법 해석이다. 법은 상식의 최대공약수이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 해석은 궤변에 불과하다. 임명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해임권한이 있다는 것은 명문의 규정이 없어도 상식적으로 자명한 일이다. 임기가 보장되는 직책은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 자의적으로 해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임명권자의 전횡을 막기 위함이지,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임기 동안에는 절대 해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법 규정은 그 어느 법에도 없다. 통상 임기를 보장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중 해임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1983년 정부투자기관 기본법 등)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정연주 사장은 부실 경영과 방만 경영 등의 책임 져야 할 사항이 분명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해임될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이다. 2. 입법취지상으로도 임명권 조항이 해임권한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기록상 명백하다. KBS에 관한 법률은 사장의 임명권한에 대해서 종전 근거 법률이었던 한국방송공사법에서도 '임명'과 임면'이 혼용되어 왔다.특히 2000년 방송법이 제정되면서 '임명'이라 규정한 조항에 대해서 당시 방송위원회에서는 '해임권한이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고, 해임권한이 배제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따라서 입법취지 역시 해임권한을 명백히 배제하고자 함이 아니었다는 점이 명백하다. 3. 해임권한이 명기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와는 별도로 정연주 사장은 방송법 제51조에 의해서 경영상의 책임을 져야한다. 방송법 제51조는 공사의 사장은 '공사의 경영성과에 대해서 책임진다'는 조항이 있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정 사장은 재임기간 동안 무려 11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또한 국세청과의 소송에서 소송을 중도에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소가 차액 1000억여 원, 감사원 추계액 512억 원의 손실을 회사에 입게 한 책임이 있다. 해임권한이 있는 지와는 별도로 법 제51조에 의해서 감사원 감사 결과 명확하게 밝혀진 부실 경영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KBS사장직만 아무리 잘못이 있어도 임기를 마치기 전에는 해임할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법률적인 검토를 차치하고라도, 선거로 선출된 직책의 경우에도 탄핵과 국민 소환에 의해서 직위를 박탈당할 수 있는 마당에 KBS사장직만 아무리 잘못이 있어도 임기를 마치기 전에는 해임할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KBS전임 사장들은, 똑같은 방송법의 적용을 받으면서도, 정연주 사장과 같은 명백한 귀책사유가 없었어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대통령에게 재신임을 스스로 물어왔고, 스스로 사임함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왔었다는 점은 이번 사건에 큰 시사점이 될 것이다. 정연주 사장 개인을 비호하는 민주당 등은 법규정에 단지 '임면'권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유일한 근거로 삼는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이런 주장은 법률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전혀 옳지 않음은 명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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