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열리고 있다. 속셈이야 어떠하든, 미 부시행정부는 대화와 외교로써 북핵문제를 풀려는 자세다. 같은 핵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란에 대해 미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강경-온건 양론이 부딪치고 있다. 미 강경파들은 "이라크 다음으로 이란을 체제변혁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신보수주의(neocon) 강경파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Christian fundamentalist)들로 일컬어지는 보수세력 일부가 그런 주장을 편다.
미 강경파들은 이란이 '악마와 같은 이슬람 율법정치'가 지배하는 광신적 국가이므로 외부의 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1979년 호메이니 이슬람혁명 이래로 미국과 이란이 '전쟁상태'에 있다고 여긴다. 지난해부터 이란 핵개발 문제가 불거지자,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 도시들 위로 핵버섯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일을 막으려면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에 맞서 미 온건파들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란도 군사적 옵션이 매우 제한돼 있으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이어 이란 체제 엎어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부터 미 유대인 네오콘들은 "이라크뿐 아니라 이란도 함께 쳐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 왔다. 친 이스라엘 싱크 탱크인 안보정책센터(CSP) 소장 출신으로 1기 부시행정부 시절 미 펜타곤(국방부) 서열 3위의 국방차관(정책 담당)을 지낸 더글러스 페이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2월 미 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동질서를 재구성하는 계획들을 세워놓았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가 말하는 계획들 속에는 '이란의 부패하고 인기 없는 정치체제를 제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9.11 이전부터 줄기차게 이라크 침공을 주장해 '아라비아의 월포위츠'란 별명을 얻었던 폴 월포위츠 전 미 국방부 부(副)장관(현 세계은행 총재)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래로 꾸준히 이란 망명자들을 지원해 온 인물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란 출신의 여성 지식인 아자르 나피시가 그녀의 베스트셀러 '테헤란에서의 롤리타 읽기'(2003년판)를 월포위츠에게 바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월포위츠의 지론은 이라크와 이란의 체제변혁을 가져옴으로써 태생적 모국인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고 미국의 중동석유 이익을 확실히 지켜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국방차관보(국제안보정책 담당)를 지냈고 부시 행정부 출범 뒤 펜타곤의 국방자문위원장을 맡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리처드 펄도 유대인 네오콘. 그의 지론인 '창조적 파괴론'에 바탕을 두고 이렇게 외친다. "미국은 이란의 반체제 세력을 돕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미국은 이란의 정권교체를 가져올 수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이 매주 즐겨 읽는다는 영향력 큰 주간지이자 미 네오콘들의 나팔수인 <위클리 스탠다드>의 편집인 윌리암 크리스톨도 유대인 출신. 그는 바그다드 함락 뒤인 2003년5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미국은 이란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이란과의 전투에서는 외교에서 비밀 군사작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미 유대인 네오콘들의 또다른 집결지인 미국기업협회(AEI)의 상임 연구원 마이클 레딘은 '이란 침공론' 주창자로서 부시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이란 망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인 '이란민주화 연합'의 공동창립자다.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의 측근으로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에 무대 뒷편에서 영향력을 끼쳐 왔다. 레딘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부터 이라크뿐 아니라 이란의 체제변혁을 강조한다. 그의 책 『테러 전문가들과의 전쟁』(2002년)은 이라크, 이란, 시리아,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체제변혁론의 당위성을 쓴 것이다.
***"이란 석유지대 점령해야"**
마이클 레딘을 비롯한 미 네오콘들은 이란 망명자들과 손 잡고 지난 2003년 이란민주연합(CDI)이란 단체를 구성했다. 이들의 목표는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군사력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란의 신정(神政)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CDI는 "미군이 이란 문제를 군사적으로 풀기까지는 이라크에서 철수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미 강경파들과 이란 망명자들은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이 '제한적'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란 석유자원이 몰려 있는 서남부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테헤란 정권을 고립 약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화 도미노론에 바탕을 둔 레딘의 논리로 보면, 이라크 후세인 체제의 몰락은 그 지역 체제변혁의 출발점이고 그 다음이 이란, 그리고 시리아다. 레딘은 이란 민주화가 미국의 군사적 수단으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는 <내셔널 리뷰> 2003년1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미 의회와 국무부 안의 온건파들을 '대이란 유화파'(appeasers)라고 매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독설을 내뱉었다. "대이란 유화파들은 이란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펜타곤(미 국방부)이 이란을 겨냥한 군사적 행동에 나서려면, 행정부 안의 몇몇 고관들이 이란 테러분자들 손에 죽어야할 듯하다."
***"이란 침공은 반미감정과 유가 높인다"**
문제는 미국이 강경파들의 주장대로 이란을 겨냥한 군사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해도 그 선택 폭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란은 국토 면적이나 인구에서 이라크에 비해 훨씬 큰 나라다. 이란의 핵시설은 한군데 몰려 있질 않고 분산돼 있다. 미군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할 경우, 실효성도 떨어질 뿐더러 자칫 중동에 이라크전쟁에 이은 또다른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 공군은 컴퓨터 가상 모의전쟁 끝에 이란에 대한 군사력 사용은 어렵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 외교협의회(CFR)는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즈>를 발간하면서 미 외교정책 수립에 큰 영향력을 지녔다. 이 단체의 리처드 하스 회장(전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미 대외정책의 색깔 논쟁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는 인물. 신간『기회: 역사의 과정을 바꾸는 미국의 순간』에서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의 정권교체는 성공했지만, 북한과 이란의 정권교체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스는 핵시설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적 옵션에 한계가 있음은 물론이고, 이슬람 세계의 반미감정이 높아질 것을 걱정한다.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집단으로 하여금 미 ․ 이스라엘을 공격하도록 부추기며, 이라크 ․ 아프간 ․ 사우디의 내부혼란을 일으켜 미국의 중동안정 전략을 흔들어댈 것으로 보인다.
하스가 또 하나 걱정하는 것은 국제 석유가의 급등이다. 미-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경우, 이라크전쟁으로 이미 급등한 유가는 더욱 높아질 게 뻔하다. 덩달아 우리 한국경제도 타격을 입기 마련이다. 따라서 하스의 결론은 "북한과의 6자회담처럼 이란 핵위기는 대화와 외교로 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이란 혁명수비대원들의 군사 퍼레이드(@ AP 자료사진)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프레시안 기획위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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