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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저주가 비켜간 나라,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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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저주가 비켜간 나라, 몽골

[아시아 생각] 건설족과 광산족이 지배하는 정치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몽골-푸르다 못해 시린 하늘, "드넓은" 이란 말이 담아 내기에는 부족한, 카메라 렌즈 저 밖으로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초원의 나라, 그리고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양떼들. 딱 이것이 몽골로 떠나는 비행기안에서 조차 내가 가지고 있던 몽골에 대한 이미지의 전부였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물론이다. (이 질문이 몽골 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를 바란다.) 몽골에서 온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칭기스칸 이래 역사에서 사라진 듯한 몽골이 이주노동자의 모습으로, 다문화가정의 모습으로, 혹은 유목주의를 외치며 울란바타르 시내를 휘젓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다시 한국인들에게 나타났을 때, 이들의 사라진 역사, 사라진 삶의 모습이 머리 속에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게르와 흐미로 대표되는 여행사 가이드에 나오는 박제화된 몽골인의 모습이 아니라, 그야말로 살아 꿈틀대면서 삶의 고단함에, 역사의 질곡에 몸부림치는 몽골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울란바타르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몽골은 NGO의 나라로, 빈곤과 부패, 여성문제와 민주주의로 끊임없이 싸우는 나라로 등장했다.

자원의 저주가 비켜간 나라
▲ ⓒ나효우

1990년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데모 몇 번하고 싱겁게(?) 체제 전환에 성공한 이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스탈린식 통치체제가 그렇게도 허약했단 말인가? 단순히 '허약한 국가-강한 시민사회' 식의 도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1921년 혁명에 성공한 이래, 몽골의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초이발산과 몽골의 후르시쵸프, 안드로포프 등으로 인식되는 체덴발의 장기집권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허약한" 국가로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게다가 체제 전환이전까지만 해도 몽골에서는 이렇다 할 시민사회라고 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가지 의심할 수 있는 것은, 혁명이 외부로부터, 그리고 위에서 이식되었기 때문에 외부적 요인이 붕괴되면 한번의 가격에도 일순간에 붕괴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의문을 스티븐 피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그는 먼저 구 소비에트 블록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과정을 거쳤다가 다시 권위주의 내지 일인 독재로 나아가는 중앙 아시아 국가들과 몽골을 비교하면서 민주주의로의 성공적 전환을 막는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열거하고 이들 요인들의 부재로 인해 몽골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안착을 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먼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몽골은 다른 중앙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자원빈국(?)속한다. 지금이야 국제원자재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몽골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몽골은 카자흐스탄처럼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탐 낼 만큼 거대한 유전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투르크메니스탄처럼 세계 제 3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기록하고 있지도 않다. 바로 이런 점이 몽골이 상대적으로 강대국의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요인이다. 게다가 지정학적 중요성도 그리 크지 않아서 미국이나 러시아가 무조건적으로 미는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권이 부재하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몽골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고 본다.

결국, 빈곤에 허덕이는 몽골인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이러한 상대적 자원빈곤이 몽골의 민주화와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카스트로와 같은 위상을 갖는 인물이 체제 전환시점에서 몽골에서는 부재하였다는 점 역시 몽골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의 아버지, 민주화의 기수와 같은 위상을 갖는 인물이 계속 집권하고 있다면, 이는 여러 포스트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듯이 권위주의로 회귀하는데 중심적인 행위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몽골의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부재"로부터 가능했다고 하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카자흐스탄의 석유와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가 자원의 저주를 불러와 정치계급의 부패와 국가기구의 왜곡을 가져왔다면, 몽골은 이러한 자원의 상대적 부재로 그나마 체제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의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캐나다 등 외국자본과의 합작으로 인한 유전개발 결과에 따라 몽골 민주화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고 할 수 있다. 제발, 자원의 저주에 걸리지 않기를. 몽골인들이 바라는 자원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동사무소와 선관위, 그리고 NGO
▲ 몽골의 투표소. ⓒ나효우

이번 몽골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관심은 단연 선거였다. 선거 시기에 맞춰서 이 프로그램을 추진한 이유 중의 하나가 선거시기에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그리고 선거에서의 시민단체의 역할은 어떠한지를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감시단을 구성한 6개의 시민단체 중 몇몇을 방문한 결과, 우리는 몇 가지 몽골 사회가 안고 있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 사회주의 정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국가기구의 미비함은 시민단체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방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경우, 울란바타르 시 주민등록청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홍보와 안내 역할 및 주민등록청 직원에 대한 교육을 시민단체가 많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민단체가 주민등록에 집중하는 이유는 바로 주민등록 문제가 한편으로는 시민의 선거권을 제약하고 선거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골 이주민들이 몇 푼의 주민등록비를 내지 못해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매표 행위, 이중 유권자 등록 등으로 선거 부정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더구나 한 선거구에서 무더기로 유령 선거인 명단이 나온 것은 그만큼 주민등록 문제와 선거인 명부 관리문제가 이번 선거의 투명성을 가르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있고 시민단체의 역할이 따로 있는데, 왜 시민단체가 국가의 역할을 하느냐라고 하는 우리 방문단의 의문은 몽골과 같은 체제 전환국가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오만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었다. 도대체 한 줌의 선관위원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건설족과 광산족이 지배하는 정치
▲ ⓒ나효우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은 태생부터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인민혁명당이 구 공산당의 후신이라면, 1990년 몽골 민주화시기 민주화를 추동 했던 세력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만든 정당이 민주당이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연합이 중간에 매개되어 있긴 하지만, 민주연합의 정책 실패가 가져온 결과 인민혁명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탄생한 것이 민주당이기 때문에 두 집단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의 공약을 들여다 보면 거의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우리 나라 건설족들이 아파트 건설로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는 것만큼이나, 몽골에서는 광산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래서 인민혁명당이나 민주당은 광산개발로 나온 이윤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게다가 울란바타르 시내 외곽에 위치한 게르지역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공약 역시 두 당이 별 차이가 없다. 한 마디로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은 공약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 나라 정당들이 장터에서 시장 상인들이 가격 흥정하듯이 경쟁적으로 지난 대선에서 목표 경제 성장률을 높여 부른 것처럼, 한 쪽이 100만 투그릭을 제시하면 다른 한 쪽에선 150만 투그릭을 주민들에게 돌려 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시장 개방과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선 같다고 할 수 있고, 단지 얼마나 속도를 내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시장 개방과 사유화에 더 열성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면에서 몽골 민주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진보적인 정당 내지 자유주의적인 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부패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 역시, 인민혁명당이나 민주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비록 제 2정당이긴 하지만 그리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래왔고, 지금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개발론적 사고에서 몽골 국가와 정치인들이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척박한 환경에서 생태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진행되는 밀어붙이기 식의 개발은 그 몇 배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자연의 복수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점점 더 심해지는 황사와 수자원의 고갈은 이제 몽골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 그것은 몽골에서는 단순히 이미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국가들이나 내세우는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많은 유목민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권은 바로 인권인 것이다.

도대체 한 선거구에서 세 명의 입후보자를 내는 정당이 있다니
▲ 몽골 총선의 투표 용지. ⓒ나효우

몽골 방문 며칠 째 계속 드는 의문중의 하나는 왜 한 선거구에서 인민혁명당이 세 명의 후보자를 내는가 하는 것이다. 지난 번까지 소선구제였다가 이번에 중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고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비용과 성과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예컨대, 인구수에 따라 두, 세 명의 입후보자를 뽑는다 하더라도 한 정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자를 내면 그 후보자들끼리도 경쟁을 하게 되는 구조이고 그렇게 되면 정당에서 선거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자원이 분산되면서 다른 정당과의 경쟁에 불리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라는 게 될만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자원을 쏟아 부으면서 총력전을 펼쳐도 될락 말락한다는 게(물론 경합지역에서는) 내가 이때까지 갖고 있었던 상식이었다. 이런 상식에 위배되는 현실이 주는 퍼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끙끙거리면서, 한 정당(시민의 의지당) 선거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팀이 방문한 지역의 선거홍보담당자가 분노에 차서 하는 말 한마디가 바로 나의 의구심을 일소해 버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올해부터 바뀐 선거구제 때문에 인민혁명당을 위시한 거대 정당들이 한 선거구에서 한 정당에서 나온 후보자들만 뽑아야지 그 투표가 유효하다고 선전해 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대 정당들은 손쉽게 의석 수를 늘릴 수 있는 반면,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거대 지역구에서는 이런 정당들의 악선전에 중소정당들은 맥을 못 출수 밖에 없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 ⓒ나효우

1992년 아버지 부시의 정책 실패에 대해 민주당 세력을 결집하고자 클린튼이 들고 나온 캐치 프레이즈가 바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이다. 이 말은 15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작년 한국의 대선을 휘젓더니, 불과 몇 개월 뒤 몽골 사회를 그야말로 혼란에 빠뜨렸다.

7월 2일 인민혁명당사 앞에서 시작된 부정 선거 항의 시위는 밤이 되면서 폭동으로 발전하면서 그 성격이 바뀌었다. 때마침 각 정당과 시민단체와 함께 선거 평가 간담회를 열고 있던 우리는 참석하기로 했던 정당 관계자들이 부정 선거에 항의하면서 속속 불참을 통고해 와서 난감해 하던 중이었다. 간담회를 끝내자 마자 달려간 인민혁명당사 앞에는 이미 2,3천명의 시민들이 몰려와 시위를 벌이면서 돌을 투척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시위는 정치적인 것이었고, 화염병 대신 페트병을 던지는 그들의 시위가 필자의 눈에는 너무나 평화적으로 보였다. 밤으로 접어들면서 공항(!)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시위의 모습은 시위가 더 이상 시위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이 시위 장면을 계속 보여주면서 사태 진행을 중계하는 TV 화면(그 때까지만 해도 시위 장면에 대한 텔레비전 방영이 중단되진 않았다)에 펼쳐진 모습은 바로 몽골의 불안한 미래, 그것이었다.

토요타와 폐차 직전의 한국산 중고차가 공존하는 나라, 한국산 중고 학원 버스를 그대로 시내버스로 쓰면서 전국민의 40퍼센트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나라,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나라가 바로 몽골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자유화 이후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몽골이 그나마 하이퍼 인플레이션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유가와 세계 곡물가격에 취약한 경제구조하에서 올해의 유가 및 곡물가 직격탄은 그대로 경제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바로 몽골 최대의 백화점 앞에 있던 홈리스 아이들의 손바닥에, 지나가던 차량에 돌을 던지던 시위대의 분노에 담겨있는 것이다.

3 H를 기억하며 몽골 여행을 마무리하다

우리의 사소한 말, 질문 하나하나에도 다른 아시아인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무례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오랜 동안 국제사업을 해온 분들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업을 할 때에는 3가지 H를 명심해야 한다고 일깨워 준 분의 말이 생각난다. Humble(겸손하고), Humane(인간적이고), Humor(아무리 어렵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몽골의 각 단체와 정당 선거 사무소를 방문하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호기심에 찬 악의없는 질문이 그 곳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비쳐질 수도 있었겠다는 반성을 해본다. 국가의 역할이 따로 있고, 시민단체의 영역이 따로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나에게 시민단체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그걸 스스로의 성과로 내세우는 모습은 의아하다 못해,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시민단체가 비판하고 강제하지 않고 시민단체의 정체성과 자기 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닌 가 하는 식으로 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모습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무의식중에 오만한 생각을 가지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여러 가지 힘든 측면도 있었지만, 나에게 겸손함을 일깨워진 값진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감여행-민주주의 교류협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올해 선거가 예정된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여 그 사회를 이해하고 네트워킹을 구축함으로써 사회 교류의 장을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취지였다.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격주간으로 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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