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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 도대체 왜 하는 거지?"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17>

2007년 2월 16일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전형적인 장면'들이 몇 가지 있어. 그 중 하나가 아내가 갑자기 밥을 먹다말고-혹은 음식 냄새를 맡고-헛구역질을 하면서 화장실로 뛰어가는 거야. 한동안 웩웩거리다가 잠시 구역질이 멈추면 그녀는 갑자기 손가락을 꼽으면서 날짜를 세어보고, 다음 장면은 십중팔구 산부인과 병원 건물이 비춰지면서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라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이 나오지. 그러고 나면 소식을 들은 남편은 싱글벙글하며 뭐가 먹고 싶냐 아내에게 묻고 아내는 갑자기 자다 말고 일어나서 밥을 비벼먹거나 제철이 아니어서 구하기 힘든 과일이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곤 하는 장면들이 이어져.

임신을 하게 되면 입맛과 식욕이 변하고, 메스꺼움이나 구역질을 동반한 입덧이 시작된다고 해. 입덧이 괴롭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엄마는 그 괴롭다는 입덧도 약간은 기다려졌어. 적어도 입덧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기가 무사히 잘 자라고 있다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엄마의 입덧이 시작된 것은 7주쯤이었어. 어느 저녁, 갑자기 바지락 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졌어. 그래서 아빠의 퇴근을 기다려 칼국수집을 찾아갔지.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주문하고 칼국수가 나오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질 정도였어. 그렇게 기다려서 먹게 된 칼국수였는데, 국물을 한 수저 뜨고 나니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어. 갑자기 칼국수에서 밀가루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것 같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거든. 결국 칼국수 한 그릇을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나마 국물 몇 수저 먹은 걸 토하고 말았지.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면서 '드디어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
▲입덧은 주로 아침에 심하기 나타나기 때문에 영어로는 'morning sickness'라고 한다. ⓒparents.com

입덧은 임신 초기 임산부들이 겪는 불편함을 뜻하는 말로, 영어로는 'morning sickness'라고 해. 주로 입덧이 위장이 텅 비는 아침이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대. 보통 입덧은 임신 5주경부터 시작하여 12주 이후로는 점점 사라진다고 하지만, 이건 개인차가 심해. 어떤 사람은 전혀 입덧이 없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임신 막바지까지 입덧을 하기도 하거든. 입덧을 하는 기간 뿐 아니라, 입덧을 하는 양상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 그냥 음식 냄새를 맡으면 속이 약간 메슥거리는 수준부터 물만 먹어도 토하는 수준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속이 비면 참을 수 없어서 끊임없이 먹을거리를 달고 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엄마처럼 안 먹으면 괜찮은데 뭘 먹기만 하면 소화가 안 되어 괴로운 사람도 있지. 엄마의 경우, 입덧을 할 때 김치와 밥은 괜찮았는데, 고기나 우유가 들어간 음식은 전혀 먹을 수가 없었어. 심지어는 TV 화면에 고기 요리가 등장하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가리는 음식이나 선호하는 음식이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입덧의 양상에는 이렇다 할 표준이 없는 듯 해.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왜 늘 임산부들은 주로 신 과일이나 순대, 족발, 떡볶이를 찾는 건지 모르겠어. 엄마도 그런 내용을 하도 많이 봐서 임산부는 무조건 신 과일이 좋고, 한밤중에 떡볶이가 먹고 싶어야 되는 줄 알았다니까.

이렇듯 입덧의 증상은 다양한데, 이 입덧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진화상으로 입덧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과정이라고 해. 태아는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이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해. 이 시기는 뇌를 비롯한 모든 내장기관과 신체의 모든 형상이 발생하는 시기인데 반해 아직 태반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아서 외부의 물질들을 걸러내는 능력이 부족한 시기거든. 그래서 약물이나 화학물질, 바이러스 등에 노출되기 쉽고, 그로 인해 태아의 발달 이상이나 유산 등과 관계가 깊은 시기가 바로 이 시기야.

따라서 이 시기의 엄마는 먹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음식을 거부하는 입덧 증세가 나타난다는 거야. 대개 입덧을 하는 사람들은 자극적인 음식이나 단백질 음식, 독특한 냄새가 나는 채소류를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극적인 식품 첨가물이나 상하기 시작한 단백질, 식물에 포함된 알칼로이드 등은 태아에게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음식을 거부하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 이 시기의 태아는 아주 작기 때문에 설사 엄마가 영양 섭취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엄마의 몸속에 보관되어 있는 피하지방만으로도 충분히 발달이 가능하거든. 그러니 굳이 위험한 물질을 몸 안으로 유입시키는 '모험'은 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에, 입덧이라는 현상이 진화 과정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된 것이라고 해. 그렇다면 입덧을 유발시키는 원인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입덧은 hCG 호르몬 수치와 관계가 있다고 해. 이를 제시하는 논문들은 임신 초기 hCG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즈음에 입덧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혈중 hCG의 농도가 낮아지는 임신 4개월 이후부터는 입덧 증상이 사그라진다는 것을 들어 입덧이 hCG 호르몬의 수치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hCG 농도가 높아지는 시기에도 아무런 증상이 없거나, 반대로 hCG가 낮아지는 시기 이후까지도 입덧이 계속되는 사람도 많아서 이는 절대적인 원인이 되지 못해.

둘째, 임신을 하게 되면 늘어난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등이 소화기관의 연동 운동을 방해하여 소화를 지연시키고, 이로 인해 입덧을 발생시킨다는 보고도 있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역시 모든 임산부들에게서 증가되는데, 입덧의 개인차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두 가지는 일반적인 원인들이고 좀 더 구체적인 원인도 제기되고 있어.
▲목 앞쪽에 자리한 갑상선의 모습. ⓒkdaq.empas.com

그 중 하나가 임신 중 갑상선 호르몬의 농도야. 갑상선이란 목 아래쪽 기도를 감싸고 있는 나비 모양의 기관을 말해. 갑상선은 갑상선호르몬을 분비해서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갑상선호르몬은 인체의 여러 가지 대사과정을 촉진시키고 체온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호르몬이야. 따라서 갑상선호르몬이 적절하게 유지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만약 갑상선호르몬이 너무 많이 나오면 대사과정이 격렬하게 일어나서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늘 피곤해하고, 더위를 참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나고, 반대로 갑상선호르몬이 적게 나오면 전반적인 신진대사 반응이 떨어져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찌고 무기력해지며 추위를 많이 타는 증상을 보이게 돼.

보통의 경우에는 갑상선호르몬은 상황에 맞게 적절히 분비되어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시키지.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면, hCG도 갑상선을 자극해서 갑상선호르몬을 증가시킨대. 하지만 그만큼 간에서 갑상선호르몬 결합 물질(TBG, thyroxin binding globulin)의 생성이 나와서 많아진 갑상선과 결합하여 균형을 맞추지. 하지만 때로 TBG가 모든 것을 커버하지 못해, 혼자서 떠도는 갑상선호르몬의 양이 늘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임신오조(姙娠惡阻)라고 하는 심한 입덧을 겪는 사람들의 피 속에는 혼자 떠도는 갑상선호르몬의 양이 보통의 임산부보다 많았다고 해.

그리고 또 한 가지, 미네랄의 일종인 아연의 농도와 입덧이 관계가 있다는 보고도 있어. 아연은 인체 활동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미네랄인데, 아연의 농도가 낮을수록 입덧이 심하게 나타난다고 해. 혈중 아연 농도는 임신하게 되면 평상시 상태에 비해 60~70%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중에서도 50% 이하로 심각하게 낮아진 사람들에게서는 입덧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났다고 해. 이는 아연이 미각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연의 농도가 낮아지게 되면 미각이 엉망이 되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맛을 느끼기 때문에 좋아하던 음식을 거부하게 되거나, 평상시와 같으면 도저히 먹지 못하는 이상한 음식을 찾게 되는 이식증(異食症)이 나타난다고 하지.

또 입덧을 비롯해 임신 중 느끼는 다양한 불편함은 상당부분 정신적인 면에 의지한다는 보고도 있어. 같은 증상이더라도 가족들의 지지를 받고 편안하게 안정을 취하는 임산부들은 그 증세가 덜한가 하면-아무래도 더 잘 '견디는' 거겠지- 그렇지 못한 임산부들의 경우에는 증세가 좀 덜했으니까. 주변의 경험을 들어보면, 입덧이 심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링거만으로 탈수증을 막을 정도로 심한 사람들조차도 친정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봐서는 '따뜻한 보살핌이 들어간 음식'은 신체적인 거부 반응조차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아.

이처럼 입덧을 일으키는 원인들로는 hCG의 증가, 여성호르몬의 증가, 갑상선호르몬의 변화, 아연 농도의 변화,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 꼽히고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결정적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나아가 근본적으로 임신을 하게 되면 왜 이런 호르몬이나 미네랄의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근거가 밝혀져 있지 않아. 입덧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참고 자료들을 찾던 엄마는 사실 좀 실망했어. 일단 입덧에 대한 논문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그나마 엄마가 찾은 논문들에는 모두 '입덧의 원인은 아직까지 분명치 않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었어.

세상의 거의 모든 여성들이 임신을 하고, 그 여성들의 대부분이 입덧을 겪는데, 그 흔하고 때로는 심각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니 말이야. 이 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야. 자신의 임신과 육아 경험담을 책으로 펴낸 생물학 교수의 저서<모성혁명>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와. 거기서도 주인공은 입덧의 원인에 대해 알고 싶어서 논문을 뒤졌다가 별다른 원인이 나와 있지 않음에 실망하는 이야기가 등장하거든. 세상 거의 모든 여성들이 한 번씩은 겪는 일이고, 때로는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일인데 왜 이 분야에 대해서는 연구가 드문 것일까. 혹시나 누구나 겪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대개의 경우 입덧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답일 정도로 임신 기간이 지속되면 점차 없어지는 증상이긴 하지만, 때로는 임신오조(姙娠惡阻)라고 하여 심각한 입덧을 겪는 사람도 있어. 임신오조는 전체 임신부의 약 0.1~2% 정도가 겪곤 하는데, 입덧으로 인한 구토가 너무 심해서 임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탈수증·구토로 인한 식도손상·전해질 불균형 등이 나타나고, 극히 드물지만 정말로 심한 경우에는 간과 신장 기능의 손상 및 면역 저하, 그리고 베르니케 뇌병증 같은 심각한 뇌질환이나 태아와 모성 사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대. 아는 사람이 아기를 가졌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서 고생하자 주변 어른들 말씀이 '입덧은 아무리 심해도 죽지 않는다'라고 하셨다는데 그 말도 다 옳은 것은 아닌가봐.

다행히 엄마는 그다지 입덧이 심하지 않았어. 그저 고기와 유제품을 먹지 못했고, 음식을 먹으면 더부룩해서 헛구역질을 하는 정도였지. 대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속이 편했기 때문에 입덧 시기에는 오히려 체중이 2~3kg 정도 줄었어. 하지만 7주경에 시작한 입덧은 13주 정도에는 완전히 사라졌고, 그 이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임신 생활을 보낼 수 있었지. 이제 곧 우리 별이 얼굴을 초음파로나마 볼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는구나. 다음에 또 만나자.
베르니케 뇌병증(Wernicke's encephalopathy)

필수비타민인 티아민 결핍으로 인해 발생되는 질환으로, 정신 혼란·운동 실조·안면 마비 증상을 일으킨다. 보통의 경우 알콜 중독의 합병증으로 발생하지만, 드물게는 심한 입덧으로 인해 체내 티아민의 양이 급속히 떨어졌을 경우에도 생기는데, 이 경우 신경학적으로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

참고 문헌

안홍석, '한국 임신부의 혈청 아연 함량에 관한 연구', <성신연구논문집> 제27호,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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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찬 외, '정상 초기 임신에서 갑상선 기능과 입덧의 심한 정도와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순천향의대논문집> 제3권 제1호, 1997.

김경래, '임신 오조와 갑상선 기능', <대한내분비학회지> 제13권 제1호, 1998.

조헌영 외, '임신 오조증이 하병된 임신에서의 출생아의 성비에 관한 연구', <대한주산회지> 제13권 제2호, 2002.

이승현 외, '임신 입덧으로 발생한 베르니케 뇌병증', <영남의대학술지> 제21권 제1호, 2004.

이홍우 외, '임신 오조와 정상 임신에서의 주산기 예후에 대한 비교연구', <대한산부회지> 제47권 제11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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