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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그 슬픈 이야기"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16>

2007년 1월 29일

지난 검사 결과가 나온 이후, 엄마는 1주일이 너무 즐거웠어. 엄마 몸속에 별이가 찾아왔다는 생각에 매일 맞아야 하는 프로게스테론 주사도 별로 아픈 줄 몰랐지. 엄마는 병원에 1주일에 한 번씩 가니까, 내일이 또 병원 가는 날이야. 의사 선생님이 내일이면 6주째 들어서니 아기집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이제 내일이면 드디어 초음파로 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들떴어.

그런데 오늘 왠지 기분이 이상해. 아침부터 배가 아프고 기분이 영 좋질 않아. 마치 생리통일 때처럼 말이야. 임신을 했으니 생리를 할리는 없을 텐데 왜 이럴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갔었는데, 변기에 앉으니 뭔가 주루룩 하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이런 세상에! 변기가 온통 새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지 뭐야.

엄마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본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말았어. 이제 막 별이가 찾아왔는데 이렇게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겁이 났어. 도대체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택시로 병원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어. 임신 중인데 하혈을 한다고 하니 접수대의 간호사가 안 됐다는 표정을 지었어. 엄마는 다시 울컥하는 기분을 간신히 누르고 검사 의자에 앉았지. 내일이면 별이와 초음파로 처음 만날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초음파 기계의 화면이 떴어. 흐릿한 초음파 화면에 물방울 같은 무언가가 두 개 잡혔어. 그게 바로 아기집이래. 한눈으로 보기에도 한 쪽 아기집은 모양도 동그랗고 또렷한데 비해, 다른 쪽 아기집은 흐릿하고 찌그러져 보였어. 마치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말이야. 의사 선생님이 착상에는 성공했는데 아무래도 한 쪽 아기가 떨어지는 중인 것 같다고 하면서, 이미 출혈이 시작된 쪽은 어쩔 수가 없다고 했어. 다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은 출혈이 심한 부위만 전기소작술로 지혈을 해주겠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머지 아기집이 무사할지 아닐지는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대. 그저 기다리는 것 뿐.

엄마는 별이를 잃을까봐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전기소작으로 지혈을 한다고 하는데도 아픈 줄 몰랐어. 그저 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어. 엄마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착상을 돕는 프로게스테론을 용량을 늘려 맞고, 아스피린을 끊고, 가만히 누워서 쉬는 것 뿐. 나머지는 별이에게 달려 있었어. 우리 별이,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있어 줄 거지?

그렇게 별이가 무사하길 빌며 침대에 누워 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다 났어. 그 중에서도 엄마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불길한 단어는 '유산'이라는 두 글자였지.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불안한 마음 탓인지 계속 떠오르더라. 유산이란 태아가 생존이 가능한 시기 이전에 임신이 끝나는 것을 말해. 보통 임신 주수 20주 이전에 태아가 엄마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아기의 생존
▲아멜리아 테일러. ⓒ이은희

아멜리아 테일러라는 이름의 이 작은 아기는 진짜 이름보다 '기적의 아기' 혹은 '볼펜 아기'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 2006년 10월 24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임신 21주 6일 만에 태어난 아멜리아는 출생 당시 몸무게 280g, 키 24cm 정도로 아기 옆에 놓인 볼펜보다 약간 큰 정도의 수준이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간의 경험상 임신 23주 이전에 태어난, 몸무게 400g 미만의 아기는 생존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었고, 약 4개월간의 집중 치료 끝에 보통의 신생아처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멜리아의 퇴원으로 인해 태아가 모체의 몸 밖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임신 24주 이전의 낙태를 합법으로 규정하던 미국의 낙태 관련 법이 약간은 무색해지고 말았다.


이 주수에서는 태아가 살아 있는 상태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현대 의학으로는 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유산이라고 하지. 유산의 종류에는 절박유산, 불가피유산, 계류유산, 습관성유산 등이 있어.

절박유산은 임신 중 하혈이나 복통 등이 나타나며 태아의 상태가 불안정해지는 것으로 보통 이런 증상을 겪은 사람들 중에서 20~50% 정도는 실제로 태아를 잃게 된대. 엄마의 경우가 지금 이런 상태인 것 같은데, 엄마는 이 자료를 보고 오히려 약간 안심이 되었어. 출혈과 복통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그건 일어난 일이었으니 되돌릴 수 없잖아.

하지만 그런 증상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유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비록 이런 일이 생겼지만, 별이는 엄마에게 꼭 붙어 있을 거라고 믿게 된 거지. 절박유산이 불행히 더 진행이 되면 불가피유산으로 이어져. 불가피유산이란 자궁이 열려서 태아와 태아의 부속물(태반 등)이 밖으로 밀려나오는 상태를 말하는데 여기까지 진행되면 유산을 막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그리고 계류유산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별다른 증상없이 태아가 자궁 내에서 사망하는 경우를 말해. 계류유산은 절박유산과 달리 출혈이나 통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 엄마들은 정기검진일에 초음파를 찍어보고서야 아기의 심장이 멈춘 것을 알지. 겪어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계류유산의 경우 신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고통이 더 크대. 아기가 뱃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의 상처로 남으니까. 게다가 계류유산의 경우, 태아가 저절로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소파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태아나 임신 잔류물이 자궁에 남아 있는 경우 감염을 일으켜 모체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 그 충격은 더 크다고 하더군.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엄마는 그저 바랄 뿐이야.

마지막으로 습관성유산은 유산의 종류라기보다는 반복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유산이 3회 이상 반복되는 경우를 말해. 유산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서 임상적으로 진단되는 임신의 약 15%가 유산으로 끝난다고 하니 가임여성이 평생 1~2회 정도의 자연유산을 경험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야. 하지만 유산이 3회 이상 반복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로 인해 유산이 반복되는지를 검사하고, 임신 초기부터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처지를 해야 해.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자.

유산이 일어나는 원인은 여러 가지야. 엄마에게 질병이 있는 경우도 있고,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면역학적으로 엄마와 아기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밖에도 환경오염·감염·커다란 충격이나 스트레스 등의 정신적인 원인·방사선·약물·호르몬 이상 등 다양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할 수 있어.

대개의 유산은 임신 3개월 이내, 그러니까 임신 초기에 집중되어서 일어나. 태아를 보호하는 태반은 임신 4개월 즈음에 완성되기 때문에 그 전의 태아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해. 그런데 초기에 일어나는 유산의 경우, 대개 아가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래. 연구결과, 첫 3개월 내 유산의 50~70% 정도가 태아의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태아 사망으로 일어났다고 해. 인간의 염색체는 상염색체 44개와 성염색체 2개로 구성되어 있어. 염색체 수가 정상보다 많거나 혹은 적거나, 염색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거나 하는 경우 태아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태아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해서 저절로 유산이 일어나는 거야.

염색체 수적 이상 중에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삼염색체(trisomy)인데 이것은 정상적이라면 두 개씩 짝을 이뤄 존재해야 하는 염색체가 3개 존재하는 경우야.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도 분리되어 고르게 분배되어야 하는데, 염색체가 분리되지 않아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거지. 염색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 원인은 아직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어. 다만 한 가지, 엄마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염색체가 비분리된 난자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실제로 난자와 정자의 비분리된 염색체를 가진 비율을 살펴보면 정자는 평균 3~4%인데 반해, 난자는 17~18%에 달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야. 정자는 매일매일 새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달리, 난자가 될 세포는 여성이 아직 태아이던 시절에 이미 다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추측되지. 엄마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난자는 그만큼 더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분열시에 실수가 더 많이 일어난다는 거지. 실제로 21번 염색체가 3개인 다운증후군의 경우, 모체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발생률이 급격하게 늘기 때문에 35세 이상의 임산부인 경우 특히 주의해서 산전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있어.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나오니까 그 때 다시 이야기하자.
▲신생아의 다운증후군 발생율과 모체의 나이 사이의 상관관계. ⓒanswers.com

유산은 어떤 징조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엄마들은 임신 초기에 많이 불안해. 엄마는 정보를 찾다가 초기임신인자(early pregnancy factor, EPF)라고 불리는 물질이 임신 유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이야기를 보았어. 초기임신인자는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지만, 포유동물이 임신하면 모체의 혈액에 등장했다가 태아가 죽거나 출산을 하게 되면 사라지는 일종의 단백질이야. 사람의 경우에도 수정 후 24시간만 지나면 혈액 속에 나타났다가 유산이 되면 급격히 떨어진다고 해. 초기임신인자는 임신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될 뿐만 아니라 임신을 유지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동물실험에서 인공적으로 초기임신인자를 억제하는 항-초기임신인자를 주입하면 태아의 생존력이 저하된다는 보고가 있고, 사람의 경우 초기임신인자의 수치가 떨어진 1주일 후 자연유산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었거든. 아직까지 초기임신인자를 이용해 임신을 유지하는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초기임신인자를 통해 임신의 유지 여부는 확인이 된다고 해.

태아의 염색체 이상 외에 유산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면역학적 이상이라고 해. 특히나 유산이 3회 이상 반복되는 습관성유산의 경우, 가장 많은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도 이 면역학적 이상이지. 면역학적 이상이란 태아와 엄마가 면역학적으로 맞지 않아 엄마의 면역계가 태아를 이물질로 인식하여 이를 공격하기 때문에 일어나. 건조하게 보자면 태아는 엄마에게 있어 절반은 '나의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남의 것'이야. 우리 몸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물질을 인식하고 항체를 만들어 이를 퇴치하는 면역계가 존재해. 우리가 수많은 세균들에 노출되어 살면서도 대부분 건강한 것은 이 면역계가 건재하기 때문이야. 면역계는 수없이 많은 외부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매우 민감하게 작용하는데, 때로는 이 민감성이 문제가 되기도 해. 그래서 몸에 해롭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도 과민하게 작용하거나(알레르기), 자신의 세포를 공격한다거나(자가 면역 질환), 엄마의 몸속에 자리잡은 태아까지도 이물질로 규정하고 공격하기도 하지. 유산을 일으키는 면역학적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이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나와 있으니 유산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밀하게 검사해 보는 것도 좋아.

이 밖에도 해부학적 이상이나 호르몬 이상으로도 유산이 일어날 수 있어. 즉, 자궁 내부에 상처가 나서 자궁의 일부가 달라붙는 자궁유착증상이 있거나, 유즙분비호르몬인 프로락틴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거나 하면 유산이 일어날 수 있어. 앞서 얘기했듯이 프로락틴 호르몬은 모유 수유시에는 매우 중요한 호르몬이지만, 그 전에 분비되는 경우 불임과 유산을 일으킬 수 있는 호르몬이라서 그 수치에 주의할 필요가 있대.
▲임신 8주째, 엄마 뱃속에 자리잡은 별이의 모습. ⓒ이은희

엄마는 그날 이후 다음부터 병원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꼼짝 않고 집에만 있었어. 갑갑하고 지루했지만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계속 맞는데도 출혈은 멎지 않았기 때문에 겁이 나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어. 다음에 병원에 갔을 때는 처음에 보았던 두 개의 아기집 중 하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별이만은 굳세게 남아 있었어. 하지만 출혈은 그 때도 멎지 않았고, 그렇게 살얼음 위를 걷는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8주째, 엄마는 초음파 사진 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단다. 작은 심장이 콩콩거리는 소리가 엄마 귀에는 얼마나 크게 들렸는지 몰라. 우리 별이, 드디어 엄마 몸속에 뿌리를 내렸구나.

참고 문헌

배정훈 외, '절박유산의 산과적 예후', <대한산부회지> 제47권 제6호, 2004.

이향아 외, '습관적 유산의 원인적 분류에 의한 임상적 고찰', <대한산부회지>, 제48권 제4호, 2005.

고현선 외, '자연 유산의 세포유전학적 분석', <대한주산회지> 제16권 제1호, 2005.

이진용 외, '절박유산과 정상임부 및 시험관아기시술 환자에서 초기임신인자의 임상적 유용성', <대한산부회지> 제40권 제6호, 1997.

최윤영 외, '계류유산의 유산물에 대한 세포유전학적 분석에 관한 연구', <대한산부회지> 제41권 제8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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