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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는 양촌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희준의 어퍼컷] '나팔수' 유인촌의 너무 큰 '팡파르'

잠시 잊혀졌던 그가 다시 등장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4일 "이제 촛불을 끄고 일터로 돌아가야 할 때"라며 "정부도 불법과 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경찰이나 검찰이 해야 할 이야기가 또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 "경찰은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 및 경찰진압 관련 허위사실 유포, 불법시위 선동 등에 대해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면서 네티즌들의 신문광고물 압박 행위에 대해서도 수사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협박했다. 또 장기 도로 점거나 폭력행위자에 대해서도 현장 체포한다고 말했다니 국민을 '단속대상' 내지는 '잠재적 범죄집단' 정도로 보는 그의 시각은 선명하기만 하다.

움츠려 있던 2MB정권이 마침내 감행하는 대반격의 신호탄이다. 그 나팔수는 바로 유인촌. 요즘 광우병 정국을 놓고 과거로의 회귀를 이야기 하는 이들이 많은데 유인촌을 보며 다시 느낀다. 군사독재 시절 독재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문화공보부 장관의 부활이다. '문화'보다는 대국민 '공보' 기능이 더 중시됐던 당시 문공부 장관은 정권의 나팔수였고 공안정국을 조율했던 사실상의 앞잡이였다. 민주화 이후 문공부는 없어졌고 지금은 시대 변화에 발맞춰 예술, 체육, 관광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만들어 이를 유인촌에게 맡겼지만 유인촌은 개의치 않고 과거의 문공부 장관 노릇을 하고 있다.

'인촌본색'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뉴시스

원래 유인촌은 썩 괜찮은 배우였다. 최고의 햄릿이었다. 이미지도 좋았다. 양촌리 김 회장댁 둘째 아들 용식이로 나와 동네 어려운 일을 앞장서 해결했고 동네 이웃간 갈등도 다독이고 추스렸다. 촌사람이지만 지적인 면모도 있었다. 그 덕에 유인촌은 CF도 많이 찍었다. 아마도 냉장고, 세탁기 광고에 나온 유일한 (아니면 마지막) 남자 모델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후 그의 모습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장관이 되자마자 맨 처음 한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 쫓아내기, 이른바 '좌파세력 적출'의 신호탄을 날린 것이었다. 여당도, 청와대도, 다른 장관들도 머뭇거릴 때 그가 총대 매고 앞장섰다. '앞잡이'란 얘기가 나오던데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이명박에 대한 충성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하다. '주구'란 얘기가 나오던데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나름의 철학과 이념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문화예술단체의 수장으로 있는 선배들을 모욕했고 며칠 후엔 "끝까지 자리에 연연한다면 재임 기간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공개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저잣거리 건달이나 하는 짓이었다.

또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한국 문화예술의 산 증인인 선배들을 실명까지 거론하며 이들을 자리나 탐하는 사람쯤으로 몰아붙였다. 그 분야 단체장의 임기는 법으로 명시돼 있다던데 유 장관에겐 법이고 뭐고 없었다. 그에겐 권력이 있었고 그 권력을 앞세워 법질서마저 무너뜨렸다. 이를 두고 '안하무인'이라 하는 걸까. 유 장관이 너무 '막' 나가니까 급기야 같은 편인 조중동까지 나서서 말려야 했다.

'사람 두고 볼 일이다'부터 '꼴도 보기 싫다'까지

"문화예술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습니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문화예술은 근본적으로 진보 아닙니까? 그것은 편가르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진정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한테 정말 필요한 게 뭔가, 목표가 뭐냐는 겁니다."

이 말은 지금의 유인촌을 비판하는 어느 예술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유인촌 자신의 2006년 발언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장관 자리에 오른 그의 변신은 놀랍기만 하다. 배우가 연기를 해도 이 정도의 연기 변신은 어려울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게 원래 그의 참모습인가. 어느 게 그의 본색인지 헷갈리기만 한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름 붙였듯 그는 이제 '정권의 나팔수'가 됐다. 반응은 다양했다. '실망했다,' '사람 두고 볼 일이다' 정도의 반응도 있었지만 '양촌리로 돌아가라,' '너부터 사퇴해라'처럼 그의 퇴장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고 여기서 더 나아가 '꼴도 보기 싫다,' '짜증난다' 식의 불쾌감의 표출도 있었다.

여기까진 그냥 남들처럼 권력에 눈이 멀었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는 그 자신이 연예인이면서 다른 연예인은 폄하하는 참으로 이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김민선으로부터 시작된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연예인들의 릴레이 비판에 대해 그는 자기가 연예인들의 생활패턴을 잘 안다면서 그들이 직접 그런 글을 쓰기는 힘들 것이라며 대필 의혹을 주장했다. 인기 관리 차원에서 소속사나 다른 사람이 쓴다는 것이다.

과거 '딴따라(연예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 이미지가 강했던 연예인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전문인의 반열에 올라섰는데 이들을 다시 '딴다라 주제에…'라는 옛 편견으로 다시 끌어 내린 사람이 바로 연예인이었던 유 장관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연예인들은 생각도 없는가. 말도 못 하는가. 연예인들은 자기 밥상 걱정 하면 큰 일 나는가. 아니면 유 장관 자신이 소속사의 대필'써비쓰'를 받아왔고 매니저가 모든 것을 챙겨줬기에 남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어떻게 문화판 동지들인 다른 연예인들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고, 생각도 없고 글도 못 쓰는 '딴따라'로 만들어 버리는가. 자신은 이제 '장관급' 연예인이라 그런가?

서울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이제까지 많은 연예인들이 참여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환, 김장훈은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걱정돼서, 촛불을 든 10대들을 보고 창피해서 나섰다. 김경형 감독과 양희은, 김부선, 문소리도 그들의 신념으로 행동했다. 안치환은 아예 '유언'이라는 신곡을 들고 나와 부르기도 했다.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도 못 받고 그냥 죽을텐데 땅도 없고 돈도 없으니 화장해서 대운하에 뿌려다오."

선배는 협박하고 후배는 폄하하는 정치장관, 이제 애처롭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9일 청와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인간은 자존과 자결을 위해 어떠한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 여기엔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고 정치인, 딴따라의 구분도 없으며 귀함과 천함도 없다. 인간은 신념에 따라 발언하고 행동할 권리와 자유가 있으며 이는 매우 자연스런 것이다.

미국의 밥 딜런, 존 바에즈는 70년대 주변으로부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반전을 노래했고, 젊은 시절 반전운동의 기수로 앞장섰던 제인 폰다는 일흔이 넘은 지금도 반 이라크전, 여성에 대한 반폭력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부부인 팀 로빈스와 수잔 서랜던은 보수적이고 유태인의 영향력이 강한 헐리우드의 분위기 탓에 배역이 주어지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반세계화운동의 선두에 서있다. U2는 아프리카의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바쁘게 다니고 있고 리처드 기어는 티베트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 하듯 영화까지 만들었다.

하물며 일상인으로서 자신의 일상을 걱정하고 이에 관해 발언하는 것을 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장관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유 장관 본인부터 신념에 따라 정치의 최전선에서 선봉에 나서지 않았나.

백발이 성성한 선배들에게 모욕과 함께 협박을 일삼은 문화부 장관 유인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후배들을 비하한 연예인 장관 유인촌. 그는 동료들을, 그리고 스스로를 '딴따라'로 만들었다.

그는 양촌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그는 참여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영화감독 이창동과 비교된다. 이창동은 1년 4개월여의 임기 동안 문화부 장관으로서 부여 받은 임무에만 충실했다. 재임 기간, 그리고 퇴임사(라기보다는 편지)에서 그는 '소통'을 강조했다. 장관 퇴임 후엔 학교로 돌아갔고 영화 <밀양>을 만들었다. 역시 평범하고 소박한 인간들의 '소통'에 관한 영화였다.

유인촌 장관의 소통은 이와 다르게 수직적 소통이다. 그것도 공권력을 앞세우고 협박과 비하와 엄포로 버무려진 상명하달식의 일방적인 대국민 명령이다. 나팔수 유인촌의 다음 모습은 어떤 것일까. 목격했듯 다시 놀라운 연기력으로 변신할 것인가. 양촌리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 그는 다시 양촌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한다. 장관 취임 전이다.

"예술가는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술가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결코 맑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만 예술을 하고 속으로는 딴 욕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봤습니다. 삶의 거울 노릇을 못하고 있습니다."

헷갈린다. 도대체 유인촌이 몇 명이야!? 아니, 누가 진짜 유인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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