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어떻게 된 거야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그런 폭압적 독재정권은 사라지고 이제 민주주의의 정수를 향해 나아가는 줄 알았건만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했으니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찾아 나서자고 그러더니 이게 웬걸, 모든 게 다 폭삭 무너진 느낌이다.
작년 '민주화 20주년'을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대했다. 많은 이들이 서로 이런 민주주의, 저런 민주주의를 내놓으며 품평했고 '이 민주주의'가 실패했으니 이제 '저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떠들었다. 이제 민주주의도 펼쳐 놓고 고르는 풍요의 시대(?)가 된 줄 알았다. 민주주의가 넘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본 것인가.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민주와 정의 가지고 지겹게 장사(?)해 먹는 노무현 정부를 '등신' 취급했다. 빨리 가버렸으면 했다. 참여정부가 막을 내릴 날만 손꼽았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 그래서 우리는 노무현의 퇴장을 반기며 앞으로 우리를 밥 먹여 줄 지도자를 택했다. 그냥 먹여줄 지도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확실하게 '처'먹여줄 지도자를 택했다.
그런데 그 지도자는 민주주의를 몰랐다. 그런 사람이 지금 우리가 바라마지 않던 바대로 우리를 확실하게 '처'먹이려 하고 있다. 30개월 이상 된 미국소에다가 그 내장까지 '처'먹이려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 대답은 이렇다. 민주주의를 모르는 대통령은 국민을 아무거나 '처'먹인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먹인다. 민주주의는 단순하게 우리가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먹느냐,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다. 우리가 원하는 게 그것 아니었던가.
우리는 1960년 4·19와 1980년의 5·18,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피흘리며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밤만 되면 살 떨린다. 오늘은 또 몇 명이나 다치고 잡혀 갈까. 이 무슨 '낮에는 국군, 밤에는 빨치산' 시추에이션이냐.
MB본색: '재벌은 지키고 국민은 포기한다'
포스트모던 사회 맞나보다. 군사독재도 아니고 부정선거도 아니고 우리가 쇠고기 문제로 이렇게 정권퇴진을 외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먹을거리 때문에 온 국민이 저항에 나설 줄 꿈에나 생각해 봤는가. 지금에 와 다시 민주주의를 갈망하게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며칠 전 뉴스를 보니 몰래 하던 대운하 작업도 이제부턴 내놓고 하겠단다. '정면돌파' 한단다. 어디 정면돌파 할 게 없어 '국민여론'을 정면돌파 하는가. 그런 정부 봤는가. '막가파'정권이다.
그런데 지난 6일 불교계 원로들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마찰 등으로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며 재협상 불가 원칙을 고수했다. 그에게 '엄청난 문제'는 외국과의 마찰이지 국민과의 마찰은 대수롭지 않은 문제다. 또 그는 재협상은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 상품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니 여기서 다시 그의 본색을 확인하게 된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우리 농가를 지켜주고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고,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게 아니라 현대와 삼성을 지켜 주는 것이었다.
'설계도'도 없는 정권
이명박 대통령이 키우기도 했고 망하게도 한 현대건설이 원래 그랬단다. 삽질 먼저 시작하고 설계도 만든다고. 역시 이 '삽질 먼저' 정신은 국정에도 적용된다. 부시 미 대통령이 별장에서 잠도 재워주고 카트도 운전하게 해주니까 국내 사정은 생각도 안 하고 부시가 원하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출을 덥석 집어다 줬다. 그러고는 지금 사방팔방으로 헤매고 다닌다. 대운하도 처음엔 물류를 주장하다가 안 먹히니까 나중엔 관광으로, 그게 또 안 먹히니까 치수로 온 천지를 들쑤시고 다니고 있다. 2MB 정권은 지금 이 순간도 설계도 하나 없이 헤매고 다닌다.
이렇게 청와대도, 행정부도 우왕좌왕 헷갈리니 우리 국민은 도대체 '우째'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잡을 종이 없다. 이 마당에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을 대는 배후를 잡으라 한다. 이제 정부는 있지도 않은 배후 찾아 삼만리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6일 불교계 원로들에겐 친북 주사파가 배후라고 했단다. 북한까지 넘어가 알아봐야 할 판이다. 추부길 비서관은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을 '사탄의 무리'라 했다니 그 사탄의 배후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 찾아 나선 사람들이 생각난다. 모두들 객사했다지 아마.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대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한다"고까지 했다던데 우리에겐 정반대의 이야기만 들린다. 이거 혹시 이영표의 '헛다리' 전법 아닌가? 도무지 정신이 없다. 우리가 광우병에 걸릴 것을 염려할 게 아니라 이 정권 수뇌부가 혹시 이미 광우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닌지 의심해야 할 지경이다. 하여간 지도자 잘 만나야 한다.
경찰 뒤에 꼭꼭 숨은 대통령
듣자 하니 경찰은 '불법'이라 그런 식으로 진압한단다. 폭력으로 말이다. 그럼 불법이면 사람 패나? 여학생 머리끄댕이 잡아 당겨 쓰러뜨리고 군홧발로 내리 찍나? 인도에 서있는 사람도 방패로 찍나? 왜, 신호위반도 차에서 운전자 끄집어 내서 패버리시지. 통행 방해하는 인도 위의 간판들도 보이는 족족 주인 불러내 방패로 찍어버리시지.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 하던데 그 민중의 지팡이가 되레 민중을 팬다. 우리 해병대는 귀신을 잡는다 했는데 대한민국 경찰은 사람을 잡는다. 머슴이 주인을 팬다.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당시 시위 진압의 잔혹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던데 이번에 경찰이 여지없이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그리고 확실하게 교육시켰다. 민주주의는 피 흘리며 지킨다는 것을. 그리고 분노 없이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2MB 정권의 끝이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대통령은 지금 기록 경신 중에 있다. 1960년 4·19혁명은 12년 자유당독재에 항거한 결과였다. 1987년 6월 항쟁은 7년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었고 결국 독재정권의 항복선언인 6·29선언을 이끌어 냈다. 그 해 1월 14일 박종철이 사망하고 닷새 후 이것이 물고문 때문이었다는 것이 폭로된 후에도 5개월 지나 마침내 분노가 폭발했다. 1980년 광주에서의 5·18민주화운동도 전두환이 12·12로 권력을 장악한 지 5개월 만에 저항이 표출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2MB정권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 속에 출범한 지 석달도 안 돼 국민들로 하여금 촛불을 들게 했고 취임 100일째 정권퇴진의 여론에 처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대통령은 경찰 바리케이트 뒤에 꼭꼭 숨어 있다. 국민을 패고 까고 찍는 경찰 뒤에 숨어 있다. 우리 편이 아니었다.
나쁜 대통령의 조건
확실히 이명박은 전두환보다 한 술 더 뜬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은 전두환은 그래도 지식인을 무서워했고 이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집어넣는 식으로 대우(?)하고 존경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아예 들어먹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대답도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린다.
이 대통령은 교수의 이야기도, 전문가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 모여서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는다. 아무리 길게, 자세하게, 그리고 '쉽게'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한다. 결국 시민이 나서서 거들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니 이번에는 참다 못해 청소년들까지 나섰다. 아예 너른 광장에 많이 모여 외쳐대도 듣지를 않는다. 이번엔 팔 걷어붙이고 갓난애들 엄마들이 유모차 앞세우고 나섰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이라고 군인에 회사원에 노인들까지 나서서 일러줘도 이해를 못 한다. 청와대 앞까지 가서 경찰들에게 맞아 가며 일러줘도 못 알아듣는다.
이쯤 되면 이명박 대통령은 전두환과 이승만의 나쁜 점은 다 가졌다고 보면 된다. 도무지 이야길 해도 못 알아 듣고 경찰 뒤에 숨어 귀를 닫아 버렸다는 것 외에도 이명박의 나쁜 점은 결국 학생들을 나서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실 4·19는 경찰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김주열이 상징하듯 대구와 마산 등지의 고등학생이 나서서 이루어낸 혁명이었다. 6월 항쟁은 대학생들이 피흘리며 얻어낸 승리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고등학생은 물론 중학생들까지 나서게 만들었다. 4·19보다 한 술 더 뜬다. 중고등학생들이 나서니 이제는 우리가 포기(?)했던 대학생이 다시 합류하기 시작했다. 정치문제와 사회적 이슈에 등을 돌려 버리고 취직에만 매달리던, 그런데 그러다가도 원더걸스 앞에서 자빠져 버릴만큼 망가져(?) 버린 대학생들까지 또 나서게 만든 것이다.
제일 나쁜 점은 이 땅의 젊은이들끼리 싸우고 피흘리게 만든 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아니면 학교를 다니다가 전경이 된 이들, 전경으로 복무하다 제대하고 촛불을 든 이들, 이들을 동생, 자식으로 둔 이들, 그런 이들이 얽혀 서로 밀어 붙이고 싸우고 때리고 맞고 있다. 뒤로 밀리면 끝장이라며 눈을 부라리는 고참과 지휘관을 등 뒤에 두고, 바로 앞의 수천, 수만 군중을 맞이해야 하는 스무살 전투경찰의 심정은 어떠할까.
지도자 하나 잘못 만나니 국민들이 고생한다. 생업에 바쁜 사람들, 잠 모자라는 회사원들,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 팔다리까지 쑤시는 아기 엄마들이 거리에 나서서 외쳐댄다. 형제같은 젊은이들이 서로 죽일 듯이 치고 받는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우리는 이제 또다시 민주주의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가. 혹시 4·19로 회귀한 것은 아닐까.
대학교 다닐 때 부르지도 않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이 사십 넘어 애창곡이 됐다. 다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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