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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함께 부를 노래가 없는 시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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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함께 부를 노래가 없는 시대의 역설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민중가요에서 시민음악으로 (下)

얼마 전 재불 여성작가의 자전적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페르세폴리스>가 조용히 개봉했다. 한국에선 '재불'이란 말이 어딘지 그럴 듯한 포장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란 출신으로 저항과 혁명, 그리고 억압을 경험한 그의 삶은 꽤나 팍팍했다. 하지만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테헤란 뒷골목에서 마약밀매 하듯 아바(ABBA)와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음반을 사고파는 모습도 그러하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만큼 나라마다 역사와 배경은 다를지라도 문화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에는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우리가 아시아에 무심한데다 경제규모, '한류'와 같은 잣대 때문인지 간과하고 있지만, 이웃에는 한국보다 더 큰 음반시장과 긴 음악역사를 가진 나라들이 있다. 한국보다 10년 정도 앞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발전하기 시작한 필리핀은 1960년대에 그룹사운드의 흥기를 맞고, 1980년대에 인디음악이 성장하여 1990년대 초에 폭발했다. 장발과 퇴폐문화 단속은 대만인들도 거친 성장통이다. 민중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현지 비평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민중음악과 유사한 지향과 존재방식을 지녔던 태국과 필리핀의 저항음악은 우리보다 10년 정도 앞서 행적을 남겼다. 그 이후에도 유사점은 발견된다.

수용층의 축소는 우리 민중음악의 고민이다. 지역적 활동들이 있으나 권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음반사전심의제 폐지로 인하여 법에 의한 거부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대중에 의한 거부로 합리화되면서 무력감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더 이상 희생자로서의 지위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입지를 강화하는 위협론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이용되지만, 정작 민중은 적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공포가 만든 편견과 달리 실제 악의 얼굴은 평범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더구나 평범한 이도 어떤 영역에선 추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세상은 낯설어졌다. 하지만 삶은 어차피 실수를 안고 가는 것이고, 노래는 다시 태어나며 삶은 죽음을 죽인다.

민중음악의 주된 어법으로 자리잡아온 포크
▲ 문진오의 <오래 꾸는 꿈> ⓒ프레시안

포크가 주된 어법이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창작과 수용이 원초적이기도 하거니와 언어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유용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이 통기타를 연주할 줄 알던 시대도 있었다. 물론 다양한 스타일과 넓은 폭을 품은 포크가 한국에서는 일면적으로 인식된 경향이 없지 않다. 여전히 포크의 대표자로 호명되는 김광석은 심지어 생전에 함께 노래한 적도 없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섞어 음반을 내야했다. 포크에서 중요한 전통의 기억은 우리에게 없었고, 정서적 접근이 그 자리를 대신해왔다. 그럼에도 포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음악적 포용과 일상성을 중시한 작품들을 낳기 시작했다.

'노래마을' 출신으로 동요와 시에 집중한 백창우는 시선집이자 음반인 <시를 노래하다>(2005)와 같은 노작을 발표했다. 이지상의 <기억과 상상>(2006)에는 삶 속의 이야기가 담겼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거친 문진오의 <길 위의 하루>(2005)와 <오래 꾸는 꿈>(2007) 역시 그윽한 파장을 그리는 포크음반이다. 안으로 삭이는 그들의 노래는 따스한 바람에 상처를 감쌌던 옷이 나부끼듯 처연하다. 침 넘기는 소리마저 크게 들려 수줍어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 할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어떤 사건과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덜어냄'으로 노래한다.

보다 밝은 표정도 볼 수 있다. 세상이 우울하긴 해도 일상이 늘 우울하진 않다. '바위처럼'의 작곡자이자 '꽃다지'에서 활동한 유인혁은 김가영과 손현숙의 앨범에 손길을 보탰다. 호소력 짙다는 표현이 흔해져 이젠 그다지 호소력이 없어졌지만, 손현숙의 목소리를 말할 때엔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 힘들다. 유인혁과 문건식의 조력이 있었던 손현숙의 <노래이야기1: 문답무용>(2007)에 비약적인 발전이나 새로운 감흥의 성취는 없을지라도 뭍에 사는 물고기와 같은 절박함이 깃든다. 낙천적이고 유연한 이수진의 <이수진1>(2008)에서 재즈의 기운이 스민 <화를 내>, <다시 오는 봄>는 최경숙의 곡이고, 잔잔한 감동을 남긴 <나는 영등포 공원을 걸었어>와 유머러스한 <대운하-피리와 꼬리> 등은 유인혁의 곡이다.

우리는 어느덧 다름을 인정하는 단계로 훌쩍 넘어와 있다

앞서 대뜸 CCM을 언급했던 이유가 있다. 과거 민중가요들 중에는 가사만 바꾸면 어색하지 않은 CCM이 될 정도로 악곡과 창법, 무드가 유사한 곡들이 많았다. 심지어 민족음악을 재창조하려 한 움직임보다 대중음악인들의 성취가 더 뛰어났다. 왜일까? 어떤 이의 음악을 들으며 그가 현재의 음악을 얼마나 듣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챌 수 있는 이들이 많다. 문인이 현재의 글을 읽지 않고 영화인이 현재의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치명적이다. 물론 그들 다수가 고생이란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에 몸을 담근 사람들이라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했다. 기능적 음악이 가질 수 없는 긍정성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운동의 경험을 공유한 이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 즉 편안한 어법과 직설적인 주제의 결합, 그리고 정석적인 가창은 장점이자 한계이다. 여전히 공존과 혼재의 샛길에 서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 거리에서 함께 부를만한 노래가 없다는 아쉬움의 이면에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희망이 있다. 5일 새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공연하고 있는 시민악대. ⓒ프레시안

대중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자본과 시스템에 의한 거부라 해야 맞지만, 말하는 방법에도 괴리는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명작임은 인정하면서 설교적인 뉘앙스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일상의 민주화는 외면하는 세대는 거부감의 대상이 되고, 학습된 트라우마가 강하게 작동될 때 설득력을 사라진다. 그 와중에 팝아트가 실제로는 비대중예술인 것처럼 민중음악의 이름과 내용 사이에 간격이 발생한다. 경직된 표현은 그래서 나온다. '비참하다'가 쓰인 문장을 읽다보면 정말 비참해지듯이 '강한' 말들이 있다. 마지막 술잔이 아쉬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버거운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결국 노래의 주인공이 '너'인가와 '나'인가의 차이, 그리고 말하는 방식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인가와 "이렇게 산다"인가의 차이다.

거리에서 함께 부를만한 노래가 없다는 아쉬움의 이면에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희망이 있다. 어느새 같음을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단계로 훌쩍 넘어와 있다. 작곡과 연주의 개념은 빠르게 변했고, 음악을 즐기는 방식도 달라졌다. 연주력이나 음악인의 시시콜콜한 개인사에 관심을 갖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촌스러운 유희가 되었다. 음악 자체만으로 호불호를 정하고, 뮤지션을 더 이상 우상이 아닌 소탈한 이웃으로 바라본다. 더구나 이제 음악은 누구든 할 수 있다. 행선지 정하지 못한 여행의 위태로움을 벗어나려는 장르화는 이러한 변화를 우회하는 시도들 중 하나였다.

희망은 오히려 걸어온 길이 다른 음악인들에게서 발견된다
▲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삶으로서의 음악을 강조하는 '윈디시티'는 반전·평화·자유를 노래하며 세상을 직시하고 있음을 알렸다. 윈디시티의 김반장. ⓒ권준경

노래운동과 가극 활동을 하다 재즈에 심취하여 유학을 다녀온 강은영은 외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강은영쿼텟을 결성하고 재즈 앨범 <Someday>(2007)을 발표했다. '明天 대추리에서', '오월의 노래', 'Someday-임을 위한 행진곡을 위하여'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민중가요의 뉘앙스를 재즈에 얹고, '극'적인 창법을 더한 이채로운 시도이다. 1980년대까지 러시아와 남미의 영향을 받아들인 민중음악에게 서구의 대중음악 장르들은 기피 대상이었지만, 이제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와 같은 목적성마저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문화제국주의의 평면성은 극복되었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든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나, 변화를 꾀했다고 해서 자신의 이미지에 손해를 끼칠 정도로 성공한 경우도 없다. 그런 점에서 오랫동안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어온 전경옥은 좋은 사례이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한 권진원도 <나무>(2006)와 같은 괜찮은 작품을 내놓았다.

진보적·민중적 음악이라기보다는 사회의식을 지닌 음악인들의 독특한 시도에 가까우나 여전히 노래의 힘을 믿는 이들이 반갑고, 실제로 믿음이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문제는 누구에게 수용될 수 있는가이다. 특정한 물리적·정서적 경험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세대성'에 의하여 한편에는 향수를, 다른 편에는 거부감을 주는 노래들이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애정을 가진 일정 연령 이상의 바깥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요강 앞에 무릎꿇어본 세대와 그게 뭔지 모르는 세대 사이에는 틈이 있다. 물론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에게 모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새로운 창작세대와의 단절이다. 그런데 희망은 오히려 걸어온 길이 다른 음악인들에게서 발견된다. 분명 무겁게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서류 견본 위에 쓰인 '홍길동' 찾기로는 다음 장을 채우기 힘들다.

대중음악인에게는 침묵이 미덕처럼 강요되어왔다. 또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해관계에 대하여 절실히 원하고 있음을 알려야함에도 좀처럼 발언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령 실망스러운 경우가 있더라도 모든 삶을 하나의 결점으로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화와 미술, 국내와 해외, 현재와 과거로 확대해보면 얼마든지 너그러워질 수 있다. 물론 견해에는 일관성이 있어야하고, 일관성은 원칙에서 나오며, 원칙은 의식에서 나온다. 채식주의는 웰빙 따위가 아닌 생명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의식과 창작의 음악적인 만남이며, 출신성분에 따르는 호의가 아니다. 정태춘·박은옥도 대중가수였고, 지금은 그와 같은 이들이 주류 시스템에 예속되어 있지 않은 인디음악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삶의 노래는, 이렇게 다시 태어난다
▲ '허클베리 핀'의 이기용은 "뇌가 있는 사회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샤

"다른 세계들의 만남과 접점"이 화두라는 '허클베리 핀'은 '사막'을 비롯한 여러 곡들에 진중한 의식을 숨겨왔다. 그리고 <환상... 나의 환멸>(2007)의 '낯선 두 형제'에서 이라크전쟁을, '휘파람'에선 북녘사람들을 노래한다. 시사저널 파업 시에 지지공연에 나서기도 한 '허클베리 핀'의 이기용은 "뇌가 있는 사회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말하고, "진보는 상식이다. 상식적인 세상이 되는 것이 진보이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사혼'과 '마하트마', 그리고 '썩스터프'처럼 음악으로 발언해온 헤비메틀/펑크 장르의 인디밴드는 그 수가 적지 않다. 수면 아래에 있지만 '폐허'는 빨치산과 혁명을 블랙메틀과 다크앰비언트라는 마니아 장르로 표현하고, 스무 살 청년의 감성을 지닌 '회기동단편선'은 진보적인 학생이자 음악애호가로서 바라보는 자신과 세상을 기록한다.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삶으로서의 음악을 강조하는 '윈디시티' 역시 <Countryman's Vibration>(2007)에 실은 'Freedom Blues'와 '우리시대'를 통하여 반전·평화·자유를 노래하며 세상을 직시하고 있음을 알렸다. 스스로를 "단순한 음악엔터테이너가 아닌 생각하고 활동하는 예술가집단"이라 규정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레게를 "민중의 억압적인 역사를 담고 있으며,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존중을 지니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들 역시 "이 사회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방관해선 안 된다"며 여러 집회 현장에 서왔다. 최근 촛불문화제에서도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달 프로젝트 바드'도 오래전부터 버스킹(거리공연)을 계속해왔다. 여리게 보이는 이 청년들은 2005 한국대중음악상의 대상격인 '올해의 앨범' 수상자이자 드라마 <궁> 등의 OST로도 알려진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장소성과 의도'에 의해 의미 지어지는 공연예술을 벗어나 '현장과 사람'으로 구체화된 걸음을 성큼 내딛고 있다.

지난해, '허클베리 핀'의 작업실에 여러 사람이 모여 밤이 늦도록 술잔을 기울인 날이 있었다. 그 자리를 찾게 된 손병휘는 기타를 들고 자신의 새 노래를 불렀고, 기타를 이어받은 연영석이 노래했으며, 마지막으로 고명원이 유쾌한 연주로 화답했다. 이후 악기를 독점한 연영석의 끊이지 않는 노래들을 흘려들으며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나누고 건배도 하면서 떠들었다. 저마다 자리가 다르고 서로 멀리 있는 듯하지만, 그 날처럼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만나고 있다. 우리가 요즘 배우고 있는 것처럼, 출발선과 목적지는 다를지라도 같은 길에서 만나 함께 걸을 수 있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무수한 것들을 육체의 언어로 불러내는 삶의 노래는, 이렇게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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