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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이 '리콜'한 '대한민국 주식회사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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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이 '리콜'한 '대한민국 주식회사 CEO'

위기의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이명박 ①

취임 석달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그의 지지율은 20%대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여러 차례 '아마추어'라고 비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3개월이 지났을 때 지지율은 45% 수준이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10% 지지율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추락은 외부 조건 때문이 아니다. 대선 때 530만 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을 뿐 아니라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4월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추락은 외부가 아닌 내부, 이 대통령 자신에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고, 일단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앞만 보고 돌진하며,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될 경우 조정하기보다는 한쪽을 과감히 찍어 눌러 이견을 없애는 의사 결정 과정을 고집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리더십은 대기업 CEO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상당수 유권자들이 대선 당시 그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았던 CEO 경험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출범하자마자 파산 위기에 처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CEO 대통령'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명박 정부가 끝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지지부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어려움에서 교훈을 찾아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키는 이명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 지난 세달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 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지난달 중순 미국 방문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투자환경 설명회'에서 자신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라고 소개한다. 이틀 뒤인 4월18일, 워싱턴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양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쇠고기 협상 타결 소식을 득의양양하게 보고한다.

대차대조표를 머릿속에 그리던 'CEO 이명박'에게 그로부터 한 달을 몰아칠 '대통령 리콜 운동'은 상상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수입업자들이 수입 안하면 되고, 소비자들이 사먹지 않으면 된다"는 장사꾼 논리에 '검역주권' 문제가 고려될 틈도 무척 비좁았을 것이다.

쇠고기 파동을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한 민심은 '경제는 좀 할 것 같아서' 믿고 선택한 'CEO 리더십'을 새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파산 상태로 몰아넣었다. 보수진영에서조차 팔로우십과 파트너십을 결여한 이 대통령의 독선을 경계한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은 일치하지만 뾰족한 답이 없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제왕적 시어머니'?

이명박 대통령은 중앙집중형 국정운영 방식을 채택했다. 대통령이 만사를 챙기는 '만기친람'이다. 굵직한 국정현안에는 여론의 반대에 정면으로 맞서는 '제왕적 리더십'을, 시시콜콜한 현장의 사안에는 현미경을 들이대 관료를 궁지에 몰아넣는 '시어머니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쇠고기 협상 파동과 한반도 대운하, 영어교육 논란에 접근하는 이 대통령의 대결적 태도가 전자로 발현됐다면 정부의 '대불공단 전봇대 뽑기'와 '50개 생필품 색출작전' 해프닝은 후자를 대표한다. 대통령이 매사에 독주하고 정부부처가 도구화되는 이 같은 기업가적 국가운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2월18일, 장관 내정자들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참석한 '합동워크숍' 뒤풀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려면 힘들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1년의 목표를 세우고 월별 단위당 목표를 세워야 한다. (…) 디지털시대에 월초, 주말, 내달 초 이런 용어는 맞지 않다. 하루도 오전이냐, 오후냐의 단위로 세부화해야 한다."
▲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사회에 새벽부터 강행군을 시작하는 정부의 '얼리버드' 시스템이 도입되고 단기적 실적 도출 스트레스가 일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주문이 깔려있는 셈이다. 이것이 대통령이 일머리를 잡고 정부가 군말 없이 따라가는 '실용 정부'의 면모였다.

하지만 조급증이 결부된 성과주의는 여론의 수렴과 장기적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정부 본연의 역할에서 크게 이탈했다. 쇠고기 협상 파동은 궤도를 벗어난 대통령과 정부에게 국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경고 시그널을 보낸 사건이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정치학)는 "이번 사태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다"며 "CEO식 국가 운영에 대한 우려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는데, 쇠고기 파동은 대통령의 통치방식을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철학 없는 실용'은 끝내 여권 내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흔적 지우기'가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브랜드인 '책임총리제'를 국정쇄신안으로 거론한 것 자체가 위기의 반증이다. 책임총리제는 이 대통령의 제왕적 국가운영의 제어장치로 한나라당이 고안한 고육책이지만, 이 대통령이 '분권'을 골자로 하는 이 방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19일 이 대통령을 만난 강재섭 대표는 쇄신의 '쇄'자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쇠고기 홍역을 겪고 난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부족을 자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 시스템 쇄신의 필요성까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정치학)는 "총리의 역할이 굉장히 약화됐다. 모든 것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과부하를 초래하고 있다"며 "정치는 CEO가 임원들을 좌지우지하는 구조가 아니다. 책임과 권한이 적당히 분산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내각과 청와대를 점령한 예스맨

'인적 쇄신'도 당분간은 서랍 속에 넣어 둘 모양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기준을 최저점으로 떨어뜨린 '강부자(강남 땅부자)' 논란, 편협한 인사정책을 상징하는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논란에도 이 대통령은 귀를 닫았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용인술에는 CEO 습관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측근 중용, '예스맨' 포진이다. 부실 진용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청와대에서 나온 "돈 많은 게 죄냐. 일만 잘하면 된다"는 항변도 대범했지만, 청와대 참모와 내각을 일컬어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자랑스레 추켜세운 건 이 대통령이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김백준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실세 참모들은 이 대통령이 권좌에 오르기 전부터 수족처럼 부렸던 측근들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이윤호 지식경제부, 원세훈 행정안전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등도 소망교회 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이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씨가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된 건 그 중 백미다.

조각 파동 당시 이명박계의 핵심 인사마저 "(인재가)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이 대통령이) 몰라서 안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풀이 실제로 극빈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이 등용문이 되다보니 인재풀이 협소해 보이는 것이라는 해명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원칙과 절차, 인사검증의 실종은 물론이고, 국무회의가 '왕회장'의 '오더'를 받는 계열사 사장단 회의처럼 굴러가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현우 교수는 "기업가 마인드에서 능력만 있으면 도덕성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 강부자 내각에 왜 저항이 생기는지, 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는지를 모른다"며 "대통령이 이건 옳다고 예언을 해버리니 참모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를 잡으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가 물가를 직접 통제하려드는 회귀적 발상이 나오거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전(前) 정권 인사 물갈이에 완장을 차거나, 중립성이 필수적인 방통위원장이 공영방송 사장 퇴출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 등은 기업에서도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예스맨' 일색으로 채워지다 보니 대통령의 지시가 대변인의 공식 발표를 통해 나오기까지 역대 최단거리를 자랑한 사례는 이 밖에도 숱하다. 대통령리더십 연구소 최진 소장은 "이 대통령은 현재 바로 지시를 내리고 바로 보고를 받는 '전천후 리베로'"라며 "리더십의 오류를 바로잡을 만한 중간관리자가 없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의도는 좌불안석

이 대통령의 독주에 불안한 건 여당이다. 정상적인 정치경로를 무시하는 이 대통령의 '탈(脫)여의도 정치'의 뒷감당은 차기정권 창출이 지상목표인 한나라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국정운영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여유를 보인다. 실용으로 무장한 CEO 대통령에게 타협과 협상, 소통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여의도 정치는 여전히 고비용-저효율의 구태로 비쳐지고 있다.

이현우 교수는 "탈여의도 방식은 정상적인 절차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당장은 야당보다 여당과의 대화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청와대의 여유와 달리 20%대로 주저앉은 이 대통령 지지율에 정작 발을 구르는 쪽은 한나라당이다. '여여 영수회담'이라고 불린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이 만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낳자 한나라당에선 장탄식이 새어나왔다. 친박 복당 등 당내 현안이 고리였으나 여권 내부의 소통을 계기로 난국 수습의 동력을 마련하자는 당초의 취지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양측의 회동 뒤 7월 전당대회를 통해 '이명박 심부름꾼'을 당 대표로 심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만 만연해졌다.

특히 박 전 대표와의 회동 다음날 이 대통령은 친박-친이 구분법에 불쾌감을 표하며 "국내에는 경쟁상대가 없다. 아직도 경선 때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자에 대한 포용력의 부족을 드러낸 이 대통령의 정치관은 정무기능 쇄신론을 강하게 일깨웠으나 이 대통령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당내 문제만 삐걱거리는 게 아니다. 국정의 주요 현안에서 한나라당의 발언권은 도무지 먹히지 않는다. 대운하를 비롯해 쇠고기 협상 파문, 영어교육 논란에서 당의 비판적 목소리는 거의 일축됐다. 자유선진당마저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야한다고 주문하는 마당에 당정협의에서 이를 건의한 한나라당의 제안은 정부의 기계적인 상호주의 적용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나마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두고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일전을 벌여 시기를 미뤄둔 게 성과라면 성과다.

'여의도 기능'이 이처럼 무력화되면서 국민과 대통령의 정면충돌은 빈번해질 조짐이다. 쇠고기 정국을 통해 벌써 만개한 '거리의 정치'는 의견수렴의 창구를 찾지 못한 대중들을 권력에 맞선 직접행동에 나서도록 한다. 통치에 있어선 최악의 경우다.
▲ ⓒ프레시안

이명박계인 공성진 의원마저 "이 대통령은 CEO 출신으로서 결과를 중요시하는 분인데, 정치라는 건 과정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과정 자체가 생략되어버린다면 국민은 중간에 없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진 소장은 "CEO 리더십은 추진력 등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절차를 소홀히 하거나 국민과 소통의 부족이 단점으로 꼽힌다"며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해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 불신이 고착화되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절차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돌파구는?

석 달 만에 찾아온 '총체적 위기'의 첫 단추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이처럼 원점을 지키고 있는 이 대통령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건설 회장 시절부터 체득해 온 제왕적 CEO 습성과 독선적 리더십에 경솔함을 부각시키는 다변(多辯)이 맞물리면서 내용적 위기와 행태적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출구는 있을까. 대통령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건 위기탈출의 대전제다.

이현우 교수는 "이득과 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과 현실적 이득이 안 돼도 장기적 측면에서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국가운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대통령의 기존 사고방식이 바뀔 수 있느냐, 옆에서 어시스트 할 수 있는 그룹이 있느냐는 문제에서 회의적"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김형준 교수는 "민심은 이반 속도가 빠르지만 회복은 느린 법칙이 있다"며 "방향성 없는 실용은 국민들에게 이 정부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혼돈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도덕적 우월주의에 발목이 잡힌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일 중심의 우월주의가 다른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진 소장은 "지지율이 마지노선인 30% 이하로 떨어졌고, 흔히 혼란기에 나타나는 괴담과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점, 여야 모두 국정에 비판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상당한 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민들이 진짜 바라는 건 경제발전이다. 이 대통령이 CEO형 리더십의 장점을 잘 발휘해 하고 불안한 모습을 최소화하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 섞인 관측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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