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언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아일보>가 촛불시위를 '반미반이'라 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미'는 아닌 것 같다. 시위 현장에서 반미 구호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반이'는 맞는 것 같다.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온 구호의 대부분은 '반 이명박'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왜 반이를 외치는가? 그 자리에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탄핵 서명을 받기 위한 문안에도 나와 있듯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탄핵의 사유로 거론된 것 중의 하나일 뿐. 시민의 분노는 정부여당이 인수위 시절부터 해왔던 실정, 종종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대통령 자신의 몰상식한 언행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위는 '반이'다. 그런데 반이(反李) 좀 하면 안 되나?
대중은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사학적 표현이지, 정말로 대중이 탄핵을 위한 절차를 밟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탄핵'이라는 말은 이명박 정권의 통치에 대한 대중의 거부를 담은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대중은 마치 미국소를 먹으면 다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기술이 아니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정서적 표출일 뿐이다. 뜨거운 분노 속에서도 이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하는 냉정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우병의 위험을 불필요하게 과장할 때, 조ㆍ중ㆍ동과 같은 보수언론에게 쓸 데 없이 빌미만 주게 된다. 수사적 과장을 사용하는 구호를, 현실에 대한 기술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확실한 것은 광우병이 지극히 위험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병을 막기 위해서 수입되는 쇠고기에 대해 정부는 최대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미국 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의 조건에 관한 한나라당의 입장도 불과 몇 달 사이에 180도로 바뀌었다.
나아가 7년 전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정부에 철저한 대비를 요구했던 <조선일보>의 태도도 180도로 달라졌다. 하지만 그 사이에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학계의 견해가 달라졌던가?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은 '정권'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전면 개방이 과학에 근거한 게 아니라, 정치에 근거한 조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현 정권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안전성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어떤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서 지난해까지 유지되어 왔던 자신의 입장을 180도로 뒤집고, 미국 측에 전면 개방에 동의해주었다. 대중의 분노는 여기서 비롯된다. 즉 당연히 자신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정부가 외려 자신들을 더 많은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데에 분노하는 것이다.
광우병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가능한 한 그 발생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다른 이유(그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 타결이든, 한미동맹을 과시해야 하는 이명박 정권의 처지든)에서 작년까지도 유지해 왔던 자신의 원칙을 희생시켰다. 이것은 충분히 분노할 이유가 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이제 수입 조건을 더 엄격하게 하기 위한 재협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권이 이미 일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에, 재협상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야 정치권에서 재협상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대중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의 제스처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날림 정권에서 날림으로 체결한 협정이니, 그 안에 빈틈은 없는지 꼼꼼히 검토하여, 하자가 발견되면 그것을 보완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중은 제 몫을 했고, 이제 각계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찬반양론의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면서 이 분노의 물결이 합리적인 통로로 흐르도록 채널화해 줘야 한다.
아마도 대미 수출의 극대화라는 시장주의 이념(그리고 한미동맹의 과시라는 정치적 이념) 때문에 이 정권은 국민의 생명권이 걸린 문제마저도 매우 신속하게, 그러다 보니 매우 안이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현 정권의 두뇌에 걸린 질병의 실체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현 정권은 돈을 위해서는 다른 가치들은 모두 희생되어도 좋다는, 거의 시장주의 탈레반의 의식을 갖고 있다.
쇠고기 협상이 날림으로 이루어진 것도, 바로 그 보편적 날림 공사의 특수한 예일 뿐이다. 대중이 탄핵의 사유로 쇠고기 문제와 영어몰입교육, 대운하건설 등을 든 것은 대중들 스스로 이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분노는 쇠고기 문제를 넘어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병증을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합리적 논의와 민주적 토론으로 발전해야 한다.
대중은 쇠고기 앞에서만 불안을 느끼는 게 아니다. 정권을 잡은 시장주의 탈레반들이 국민의 생명권, 교육의 공공성, 생태와 환경 등,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을 가차 없이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데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날림으로 지은 국가라는 건물이 IMF 때처럼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 도대체 저들이 만들어낼 나라에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공포감. 이것이 그들을 촛불집회로 데려온 것이다.
'반이'는 그저 이명박이라는 개인에 대한 반감이 아니다. '반이'는 파란 쫄티에 붉은 색으로 S자 써 붙이고 나타나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는 개그 영웅에 대한 반감도 아니다. '반이'는 이명박이라는 개인이 그 화신의 역할을 하는 과격한 시장주의 이념, 거기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부패한 권력 집단에 대한 거부다.
정권에서는 이번 시위의 배후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우스운 얘기다. 시위 현장의 분위기를 얘기하자면, 민주당 얘기는 꺼냈다가는 차가운 눈총의 세례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또 진보신당에 몸을 담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큰 시위를 일으킬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불행히도 우리도 대중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리하여 나도 진보신당 게시판에 "이번에는 조용히 대중의 지도를 따르자. 그것이 민주주의다"라는 글을 남기고 시위 현장에 나왔다. 누리꾼이 주도한 어제 시위 현장에는 태극기 이외에는 정당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건 깃발은 단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그저, 학교 괴담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처럼 쇠고기 괴담이나 유포하는 대중들의 유치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파악한다면, 그 역시 큰 오산이다. 이번에 대중들은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켰다. 애국의 광기에 빠져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이견을 가진 자에게 린치를 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우 성숙하게 행동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탄핵서명은 82만을 넘었다. 물론 이 현실에 눈을 감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상한 색칠을 해서 제 편할 대로 이해하고 싶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움직임 밑에 깔려 있는 대중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제대로 정부 노릇 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집권 두 달 만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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