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건강연대와 민주노총, <매일노동뉴스>는 이날 "한국타이어는 세계 7위의 매출 규모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 수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쳐 현재 한국 기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한국타이어를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노동건강연대 등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산업재해와 관련된 최악의 기업을 선정, 발표해 왔다.
왜 한국타이어인가?
이들은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타이어 본사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며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산업안전 관련 최악의 기업 앞에 '살인기업'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까닭이다.
올해 산재사망자 추모의 날을 맞아 최악의 기업으로 선정된 한국타이어는 실제로 최근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5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기록'을 갖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등은 "15명 모두가 작업과 관련된 사망은 아니더라도 지난 2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등을 보면 이 중 다수가 작업과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 뿐 아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이뤄진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천문학적인 관련 법 위반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총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사례가 드러났고, 183건의 산업재해를 은폐한 것도 밝혀졌다.
이들 단체들은 "이는 한국타이어가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며 "타이어 공장은 노동자 건강에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많은 고위험 사업장이므로 다른 사업장에 비해 더 많은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법조차 준수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산재사망률, 공식통계로만 OECD 국가 중 1등!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를 전세계적으로 함께 기리는 추모의 날이 4월 28일이 된 것은 1996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촛불 집회 때문이다. 이날 뉴욕의 유엔회의장 앞에서 각국의 노조 활동가들이 산재사망 노동자를 기리는 시위를 벌인 이후 국제자유노련(ICFTU)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이 날을 공식적인 추모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 110여 개 나라에서 다양한 추모 행사가 벌어지는 것은 산재가 국경의 차이를 뛰어넘어 그만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ILO 2006년 통계에 따르면 매년 전세계적으로 22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사고나 직업성질환으로 세상을 뜨고 있다. 평균 하루에 5000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2923명이 사망한 2003년을 정점으로 다소 사망자가 줄어 지난해에는 2406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물론 이는 노동부 통계로 산재보험 급여를 받지 못한 산재사망자 수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어서, 노동계는 "은폐된 산재사망 등 실제 산재사망자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자체적인 위험에 노출돼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서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산재보험의 적용도 못 받는 사람들도 공식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운수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운수노동자는 건설노동자보다 4배나 높은 산재사망율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수 없이 길거리에서 죽어가면서도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돼 산재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슬픈 운명"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노동계의 주장을 차치하더라도 ILO가 추정한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사망률은 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경제활동인구 10만 명당 산재사망자가 15.7명으로 2위인 캐나다(6.4명)나 뒤를 이은 미국(5.2명)보다 2배 이상 높고, 영국(0.8명)보다는 무려 20배나 높다. |
"산재사망 1위 국가의 기업은 이미지 광고와 규제완화에만 혈안"
어느 사회에 속해 있든 먹고 살기 위해서는 특정 기업에 소속돼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만큼 산재 예방도 기업의 기본적인 의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재사망 1위인 한국 기업의 이에 대한 인식은 천박하기만 하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사무국장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산재 예방은 사업주의 기본 의무지만 한국의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거론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 제고에만 열을 올릴 뿐 노동자의 삶의 질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건강연대와 민주노총 등은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를 죽음의 자리로 내모는 기업은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금의 액수와 상관없이 결코 윤리적 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며 "기업이 괜한 돈 들여 언론에 광고하며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2중성을 버리고 그 돈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부터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이미지 광고에만 힘을 쏟는다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계는 산업안전 관련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대놓고 요구하고 있다. 경총이 최근 새 정부에 건의한 규제완화 내용 가운데 전체 97건의 과제 중 23건이 노동안전보건과 관련된 것이었다. (☞관련 기사 : '규제완화 정권' 출범에 '날 뛰는' 재계)
현재로서는 이 같은 재계의 요구에 정부도 호응하는 모양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쓸데없는 산업안전 규제가 많다"며 "산업안전 관련법을 정비해 보다 실용적으로 바꾸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산재사망 줄이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강력한 처벌"
노동건강연대 등은 이런 흐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들은 "외국에서 이뤄진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산재사망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의 고위 임원을 강력히 처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산재예방이 기업 내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가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더불어 살인기업 명단을 사회적으로 공표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성명을 통해 "사회적 규제로써 오히려 강화돼야 할 산업안전보건 규제를 후퇴시키려는 경영계와 정부의 행태는 반인륜적이며 반사회적인 행위"라며 재계 비판에 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노총은 "앞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산업안전보건제도개선위원회'에 참석해 산업안전보건 문제를 논의하고 뒤로는 정부를 상대로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경영계의 이중적 태도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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