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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재보험 가지고 '개그'하지 마라"

[인권오름] 산재보험 개정 방향,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 5월 노사정위원회 아래 '산재보험발전 특별위원회'가 발족됐다. 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1964년 제정 이후 40년 넘게 유지돼 오던 산재보험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간 산재보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부가 모두 공감해 온 만큼 '올해 안 개정'을 목표로 출발한 특별위원회의 논의 방향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가 참여하고 있는 이 특별위원회는 그간 열두 차례의 회의를 거치며 산재보험 개선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보건 단체들은 "정부가 산재보험 제도의 개악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개선 방안의 차이는 바로 현재 산재보험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재정 불안'의 원인을 어디로 짚었느냐는 것이다.

노동부는 지난 한 해 산재보험에 대한 연구 활동을 벌였다. 지난 2월 발표된 이 연구 보고서는 "보험의 무리한 적용과 선심성 보상행정, 장기요양 환자의 증가 등으로 인해 산재보험의 재정이 불안해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보고서의 문제점 지적에 맞장구라도 치듯 현재 특별위원회는 산재보험 재정 불안의 가장 큰 요인으로 '휴업급여 지출'을 꼽으며 '휴업급여의 지급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장해연금을 감액할 것' 등을 개선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민주노총을 비롯한 단체들은 "기업이 산재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산재 노동자에 대한 재활 서비스가 충실히 제공된다면, 산업 재해율과 휴업 급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산재보험의 재정 적자는 재활이나 직업 복귀가 막혀 있는 상황을 초래하는 정부와 사업주, 의료기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인데, 보험 급여를 줄여 일방적으로 노동자가 부담을 전담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인 공유정옥 씨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의 최근호에서 특별위원회에 들고 나온 경총의 '산재보험 개선안'을 분석했다. 그는 한마디로 "산재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가지고 장난 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즉 산재보험은 일하다가 병들고 다친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복귀하기 위해 운영하는 기초적인 사회보장 중 하나인데, 보험 적자 해소를 위해 보험 수급을 제한하고 더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산재보험이 가지고 있는 본래 목적과 맞지 않는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공유정옥 씨의 '분석'은 현재 진행 중인 산재보험의 개정 논의의 촛점이 어디에 맞춰져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다음은 <인권오름>에 실린 글의 전문이다. <편집자>

'노마진'식 산재보험 개혁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산재보험을 손 좀 봐야겠다는 얘기는 꽤 오래 전부터 나왔다고 한다. 그 얘기가 눈에 보이는 토론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해부터였다. 지난 해 민주노총은 공청회를 열어 산재보험의 문제점과 개혁방향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해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은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노동부에서도 올해 초에 제2차 산재보험발전위원회를 꾸렸다. 경총도 기업안전보건위원회 이름으로 산재보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밝혔다. 이른바 노사정 세 주체의 입장이 윤곽을 드러냈다고나 할까.

그 와중에 지난 5월 노사정위원회 밑에 산재보험특별위원회가 생겼다. 이게 뭐냐 하면, 올해 안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하겠노라며 노(한국노총), 사(경총), 정(노동부)이 한 데 모인 위원회란다. 그동안 산재보험 개혁, 산재보험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준비해온 민주노총이 '산재보험 개혁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나선 한국노총에게 '뒷통수'를 맞은 셈이라고도 볼 수 있는 모양새다.(아, '뒷통수'라는 표현 때문에 항의 받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내 느낌은 그렇다.)

지금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경총이다. 짧은 이름은 경총, 긴 이름은 한국경영자총협회, 1970년부터 한국의 내로라하는 자본가들이 모인 연합체. 그들이 몇 년 전부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 앞장서서 고민하고, 주장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데 드는 돈을 줄이고, 그 권리를 위한 노동자의 투쟁을 틀어막기 위해서 말이다.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투쟁의 불씨가 번져가던 2003년 5월, 경총 회원 중에서도 근골격계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자동차,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한 열두 개 기업이 모여 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만들었다. "골병들어 못살겠다, 노동강도 완화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자본의 '단결투쟁'을 위해 나름대로 공동대책기구를 만든 것이다.

경총 산재보험 개혁안의 실체
▲ 우리 사회의 산업재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산재의 심각성을 알리는 이들은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한다. ⓒ 레이버투데이

2004년 5월 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설립 1주년 총회를 열고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 결의문은 △산재 추가 보상금의 합리적 조정 △산재인정 기준의 합리적 개선 촉구 △산재예방 및 산재근로자의 체계적인 지원방안 강구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합리적, 체계적, 조정, 개선…말들은 다 좋아보인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노사정위원회에 들고 나온 경총의 산재보험 청사진에서 우리는 그 끔찍한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산재인정기준의 합리적 개선'이라는 경총의 속내는 이랬다. 산재승인을 너무 쉽게 내주어서 보험지출이 늘어나고, 사업주의 보험료 부담도 커지며, 게다가 노동자들이 '집단요양투쟁'같은 걸 할 수 있으니, 인정기준을 더 까다롭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총은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포괄적인 인정 기준을 구체적인 기준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과로에 의한 뇌심혈관계 질환을 인정하려면 '과로'가 무엇인지 보다 까다롭게 규정해야 하며, 전부터 앓던 질환이 일 때문에 악화된 경우에는 작업요인이 51% 이상 작용했다고 입증될 때만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재근로자에 대한 체계적 지원'의 속내는 더욱 황당하다. 우선 요양기관과 재해노동자에 대한 정기 실사와 제재를 강화하고 재해노동자의 급여와 요양에 관한 모든 자료를 사업주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라는 것이 그들의 속내였다. 산재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위해 필요한 온갖 정보들을 합법적으로 수집하겠다는 것이다.

경총은 요양이 길어지는 노동자를 빨리 현장으로 복귀시켜서 보험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묘책'도 내놓았다. 주치의로 하여금 재해노동자가 일할 수 없는 이유와 업무 복귀가 가능한 시점, 그리고 어떻게 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인지를 명시한 지침서를 작성하여 근로복지공단은 물론 사업주에게까지 제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떤 의사가 한가하게 이걸 작성하고 앉아있을까?

게다가 석 달 이상 요양이 필요한 노동자에게는 근로복지공단이 의료기관을 지정해주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자본과 근로복지공단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의료기관들을 지정해 재해노동자가 충분한 치료와 재활을 마치기 전에 현장으로 복귀시키도록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요양이 1년 반에 이르면 물불 가릴 것 없이 공단에서 직권으로 요양을 종결할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하자고까지 하니, 이렇게 되면 산재승인을 받아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게 된다.

"산재보험 개혁, 하지만! 아예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거"

여기에 경총은 결정타 한 방까지 꺼내들고 있다. 사업주가 산재승인에 대해 이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산재승인을 받지 못한 노동자가 이에 대해 심사청구, 재심사청구, 행정소송 등의 절차를 통해 이의를 신청할 수 있었는데 그걸 사업주에게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KBS2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지하철 2호선의 외로운 벤처 사업가 노마진' 역. ⓒ 인권운동사랑방

산재보험은 일하다가 병들고 다친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복귀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기초적인 사회보장의 하나인데 그걸 사업주가 줘라 말아라 간섭하게 해달라는 말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어렵게 산재승인을 받더라도 시시콜콜 사업주가 이의를 제기해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승인 절차가 늘어진다면 누가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 있을까? 그 시간동안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치료비와 생계비는 어디에서 마련할 수 있을까? 기껏 급여를 받아 치료했다가 나중에 사업주가 건 소송에서 결과가 뒤집히면, 그동안 쓴 돈을 다 토해놓아야 하나? 걱정이 해일처럼 밀려든다. 사회보장으로서의 산재보험을 뿌리째 뒤흔드는 주장이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 자칭 '지하철 2호선의 외로운 벤처 사업가, 노마진'이라는 이가 나온다. 그이는 매주 한 가지씩 상품을 소개하는데, 그 기발한 뒤틀기가 우습다. 가령 휴대용 라디오를 팔 때는 "지하에서 잘 안 들려 짜증나셨죠? 내려갈수록 잘 들리는 라디옵니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안 들린다는 거~"라는 식이다. 경총의 최근 행보를 보면 노마진이 떠오른다. "산재보험을 개혁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산재보험을 이용할 수 없다는 거~"

아, 제발, 산재보험 가지고 개그하지 마라. 산재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가지고 장난 좀 치지 마라.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18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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