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은 북부와 남부로 철저히 나뉜다. 구미와 포항, 경주 등이 산업화 세례를 받고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안동을 기점으로 영양, 상주, 예천 등 경북 북부 지방 도시는 그동안 발전에서 소외됐다. 그 탓인지, 이 지역 뉴스에서도 '경북'이라는 표현보다는 '북부'라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띄었다. 안동 이남 지방은 지역 날씨 예보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신 이곳에는 소백산맥을 낀 자연을 터전으로 농민이 모여들었다. 누구는 밭일을, 다른 이는 가축 사육을 하며 집안 살림을 꾸리고 자식 교육을 시켰다.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키운 이 지방 소는 한우 중에서도 높은 품질을 인정받아 왔다.
특히 문경시는 '약돌 한우'의 브랜드화에 성공해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약돌 한우는 거세 한우에 약돌(거정석) 분말을 첨가한 사료를 먹여 생산한다. 돼지 역시 마찬가지다. 약돌 고기는 비릿한 냄새가 없고 육질이 좋아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약돌한우와 약돌돼지에 대한 문경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이 지방 농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궁금했다. 23일 아침, 문경 우시장을 찾았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등록우 경매시장이 이날 열릴 참이었다. 문경과 예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산양면 경매시장에는 한 달에 두 번, 인근 지방의 고품질 송아지들이 몰려든다. 여기 모이는 소는 모두 축협에서 인증한 등록우다. 수소는 7개월, 암소는 10개월령 가량이 경매시장에 들어온다.
파는 사람도 알아서 낮은 가격에…210만 원 하던 암송아지가 146만 원에
시장은 예상보다 더 한산했다. 미국 쇠고기가 수입된다는 소식이 '품질'로 승부한다는 이곳 사람들의 심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듯했다. 한산한 경매 시장에 마이크를 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매가 시작됐다.
"11번. 210㎏짜리 암놈입니다. 145만 원에 거래 시작합니다. 경매 참가하실 분 안 계십니까?"
옆에서 한숨이 들려왔다. 서무배 씨는 막상 싼 가격에 내놓긴 했지만, 전광판에 찍힌 가격을 보고는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다. 이 송아지는 146만 원에 낙찰됐다.
"전보다 7, 80만 원 깎은 거라요. 저 정도 크기 암소면 전에 210(만 원)에 내놓던 거라요.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 대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나마 150만 원으로 시작한 건 158만 원에 나갔으니 괜찮은 거지요."
이날 경매에는 송아지 50두가 들어왔다. 전에는 보통 70여 두 가량이었다. 소 값이 하락한다는 소식에 많은 축산업자가 참가하지 않았다.
202㎏ 나가는 수송아지 중 가장 비쌌던 놈은 187만 원에 낙찰됐다. 예전 같으면 200만 원을 거뜬히 넘겨받았다. 경매 자체에 경쟁이 붙질 않았다. 파는 사람은 알아서 낮은 가격에 송아지를 내놓고, 사는 사람은 당연히 낮은 가격에 입찰했다. 시작가에서 10만 원 이상 가격이 추가되는 송아지를 찾기 어려웠다.
농민들은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침부터 막걸리를 사 와서 마셔대는 농민도 있었다. 그나마 사육을 적게 하는 사람은 나은 편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소에 운명을 건 사람의 피해는 더 심각해 보였다. 250두를 사육한다는 전복수(48) 씨는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5일 만에 송아지 값이 마리당 50만 원 떨어졌어. 내가 한 달 새에 1000만 원 손해 봤어. 죽을 지경이라. 여기 자살할 사람 천지라. 내가 데모라는 걸 모르고 산 사람인데, 내일 정부청사 앞에 갈 거라. 이제 농촌 촌놈들도 가만 안 있다는 것 (정부에서) 알아야 한다고."
"이명박은 노무현보다 더 해…정부 대책은 농민 빚 늘리기"
전 씨의 분노는 곧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정부와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한번 말문을 트자, 그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이어갔다. 주변 농민들이 '아무리 세상 좋아져도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며 그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작심한 듯 말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사료 값 때문에 미칠 지경인데, 이제 미국 소까지 들어온다니 우린 다 죽은 목숨이라. 대통령이 죽일 놈이라.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보다 더한 놈이라. 눈앞에 이명박이 보이면 달려들 사람이 천지라."
정부에서는 농가의 반발을 고려해 지난 21일 다양한 농촌 지원 대책을 내놨다. 이명박 대통령도 "농가를 달랠 대책을 강구하라"며 공무원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농촌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문경축협의 정승렬 과장은 정부 대책에 대해 "다 지난 정권 때 내놨던 정책"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사료값 안정과 판매가격 보전이 시급한데, 농가가 피해보기 이전 대책만 나열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 과장은 '현실성 있는 대책'을 주문했다 .
"백날 현금 지원만 해봐야 뭐합니까? 안 그래도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빚 갚을 능력이 어디 있다고 또 융자해주는 겁니까? 정부 대책이 다 농민 빚만 늘리는 겁니다. 지금 정치인들이 농촌에 와서 농가 실상을 봐야 합니다. 상주시장은 '폭락(그는 이 단어를 강조했다)' 했습니다."
경매는 한 시간이 안 돼 끝났다. 문경시 한우협회 지부장인 송명선(56)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말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매가격을 보니 마음이 찢어집니다. 축산인 여러분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내일 우리 모두 정부청사 앞에 가서 우리 마음을 보여줍시다."
1년새 두배로 오른 사료값…끝이 안 보일 지경
경매에 참여한 농민들은 하나같이 '앞으로가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저 불안감에 가격이 움직이는 거지만,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시장에 풀리면 문제가 심각해질 거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사료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문제는 더했다. '키울 엄두가 안 난다'는 농민이 상당수였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25㎏짜리 사료는 한 포대에 7500원에 거래됐다. 작년에는 5600원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1만 원에 팔린다. 다음 달에도 또 오를 예정이다.
볏짚이라고 안전한 게 아니다. 사료 값이 올라 값이 싼 볏짚을 찾는 농민이 많아지면서 볏짚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 한 단에 2000원 하던 게 3500원까지 올랐다. 소 키우는 사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볏짚이라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 키우는 농민은 답이 없다. 돼지는 사료로만 키운다.
전복수 씨는 "송아지 한 마리를 사 2년을 넘게 먹인다. 30개월이 되면 내다 판다. 그 동안 사료 값만 250만 원 이상 들어간다. 그나마 예전에는 마리당 170만 원 정도 수익을 남겼는데, 지금은 마리당 100만 원 정도 손해를 볼 지경이다"라고 언급했다. 이 정도면 빚을 떠안은 농민으로서는 더 이상의 사육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말이 많았다. 생산원가가 자꾸 높아지면서, 사료 값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는 미국 쇠고기와 정면 대결을 해야 한다. 주머니 사정이 얇은 서민들은 당연히 값싼 미국 쇠고기를 사먹을 것이다. 많은 농민이 "왜 항상 농민만 피해를 봐야 하느나"고 물어왔다.
소 32두를 사육한다는 서영석(63) 씨는 그나마 문경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등록우 시장이 잘 형성돼 있어서 농민들이 아직은 버틸만하다는 얘기다. 품질이 소문나서 찾아주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른 동네 사는사람들은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여기는 등록우 시장이라 그나마 나은 편이라. 일반시장 가보면 여기보다 값이 20만 원씩 더 떨어져. 상주에는 유찰이 줄을 잇는다 하더라고. 빚만 잔뜩 남긴 놈이 어찌하겠어? 앞으로 더 떨어진다 하니 내 아는 놈은 간 밤에 도망가버렸어."
그래도 믿을 사람은 역시 정책을 담당하는 정치인밖에 없는 듯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에게 희망을 거는 목소리가 컸다.
"박근혜가 막아줘야 해. 친박연대가 한나라당 들어가면 파산할 사람 여기 널렸어."
일부 농민의 문제? 농촌 붕괴로 이어질 것
미국산 쇠고기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소비자 사이에서도 높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는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쇠고기 값이 싸진다며 기대를 거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우가 비싼 건 사실이다. 현장에서 농민들에게 한우 값을 낮추기 위한 대책은 없는지를 물어봤다. 답은 없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도 쇠고기를 사는 '소비자'였다. "왜 그렇게 비싼지 나도 모르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유통과정에서 값이 지나치게 뛰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협 관계자는 "상인들이 농촌의 현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며 "상인들이 이윤 챙길 생각만 하니 소비자들은 농민 탓만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우시장 개방은 아직 농촌에 터 잡은 모든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를 키우는 '농민'의 문제일 뿐이었다. 농촌 경제에 의존하는 유통 상인과 소매상에게는 먼 미래의 얘기일 뿐인 듯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들 사이에서만 맴돌았다.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소 값을 잡으려면 이 문제가 단순히 농민 일부의 문제가 아닌, 우리 농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해 보였다. 우시장으로 가는 길에 얘기를 나눈 택시 기사의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대통령이 우리 값싼 쇠고기 먹이려고 그런 거 아이라? 쇠고기 값 떨어진다니 불고기 맛 좀 보겠구먼. 다 좋은 거 아이라?"
사료값 폭등 막을 대책 세워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이제 현실이 됐다. 한우는 이미 가격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장기 대책 마련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무너지는 축산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현실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현장의 농민들은 한결같이 '사료 값 안정'을 요구했다. 사료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산 옥수수 가격(선물 기준)은 톤당 305달러까지 올랐다. 가격 인상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2006년 9월에 비해 86%가 넘게 상승했다. 옥수수는 사료 원료의 40%를 차지한다. 옥수수와 함께 사료의 주원료로 쓰이는 대두박 역시 2006년 9월에 비해 두 배가 넘게 올랐다. 이런 상승 추세는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이정민 연구원은 22일 "에탄올 생산이 늘어나면서 사료용 옥수수 값은 계속 뛸 수밖에 없다"며 "한동안은 상승세를 막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소식에 한우 값 폭락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연구원은 "<축산물 소득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한우를 통한 농가 순수익은 마리당 60만 원 가량이었지만 거래가격 하락에 사료 값 인상이 겹쳐 현재는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말했다. 원재료 상승 추세는 양돈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는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가격이 비슷한 돼지 농가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한양돈협회 문경시 지부장인 박종수(57) 씨는 "소는 볏짚이라도 먹일 수 있지, 돼지는 사료밖에 못 먹인다"며 "안 그래도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은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밝혔다. 그는 문경에서만 이미 돼지를 키우는 가구 중, 세 가구가 도산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사료 값 안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 대책은 여전히 과거에도 계속되던 현금 지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은 한결같이 불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문경시 한우협회 지부장인 송명선(56) 씨는 "올해만 사료 값이 두 번 더 오를 예정"이라며 "정부가 당장에라도 나서지 않는다면 더는 농촌이 버틸 힘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문경축협의 정승렬 과장 역시 "정부 지원책이 단순히 피해보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실질적으로 농민의 피부에 와 닿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농가가 바라는 대책이 현실화 되기 어려움을 짐작하는 듯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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