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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신종 '성차별'…여성은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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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신종 '성차별'…여성은 '노예'?

[토론회] 남녀 '직무 분리'로 교묘한 '성차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고용 형태가 양극화하고 있는 가운데 신종 성차별이 나타났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5일 '유통업 여성 비정규직 차별 및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유통업 현장에서 직무 분리를 통한 신종 성차별이 이뤄지고 있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결과를 보면, 똑같은 비정규직인데도, 남성과 여성을 서로 다른 직무에 배치해 차별을 두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인권위원회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의뢰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백화점, 할인점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차별 사례를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는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이랜드홈에버, 로레알코리아, 샤넬 등 22개 업체가 포함됐다.

"나는 차별 받고 있는 것일까?"…차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차별에 노출돼 왔다. ⓒ프레시안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인권위 발표와 함께 열린 토론회에서 "할인점 노동자 심층 면접 조사 과정에서 현장의 노동자들이 '성별 격차'를 대단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자신이 받는 차별을 자연스럽게 생각한 것은 직무 자체가 성별에 따라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유통 서비스업 내 20여 개 업무 중에서 남녀 비중이 40~60%로 비교적 균등한 '중립' 직무는 단 3개에 불과하다. 여성 지배직무의 대부분에서 여성 노동자의 비중은 85~95%에 이르렀다. 반면 남성 지배직무에서 여성 비중은 5~20% 정도였다.

여성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직무 대부분은 '여성만' 일하는 직군인 셈이다. 할인점 계산대, 식당, 안내방송 직무 등에서 남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성 지배직무의 경우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있었. 기간제 근로자의 비중이 대체로 높았고, 시간제나 파견·용역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일례로 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93%가 넘는 계산직무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었다. 기간제 고용형태는 20.7%, 시간제 형태는 29.3%였다.

이 교수는 "이런 사정 탓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신이 정규직 뿐 아니라, 심지어는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보다도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남성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차별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중 백화점은 48%, 할인점은 90%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유통업의 직무 분리가 실제 업무가 달라서가 아니라 고용 형태를 나누기 위한 시스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형옥 여성학 강사도 "사용자들은 성별에 따라 직무를 분리한 다음 여성에게 열악한 근로조건을 제시하면서 '성별'이 아닌 '직무'의 문제라고 주장한다"며 "이는 성차별의 문제를 보이지 않게 하는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장하는 유통서비스 산업, 근로 조건은 점점 더 추락
▲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 ⓒ프레시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유통서비스 산업은 최근 대형화 추세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유통서비스 산업의 성장에 따른 경쟁 강화가 오히려 노동자의 근로 조건은 더 열악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기업들이 '손님은 왕'이라는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는 동안 많은 여성 비정규직이 손님의 성희롱이나 폭언에 시달리고 있었다. '재계약을 위해 성희롱을 참는다'는 여성 비정규직이 20%나 됐다. 특히 할인점의 경우 39%가 일을 계속하기 위해 손님의 성희롱을 스스로 감추고 있었다.

건강 상태도 남성보다 열악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해 방광염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가 많았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앉아서 쉴 곳이 없어 하지정맥류를 호소하는 여성 노동자 비율은 47%에 달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집중 근무 시간'인 오후 3~5시 사이에는 아예 노동자들이 쉴 수 없도록 옥상 문을 잠가버리는 업체도 있었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것이다.

같은 비정규직이지만, 임금도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유통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남성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120만 원, 반면 여성 비정규직은 93만 원에 불과했다. 여성 비정규직의 25.8%는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파서 쉰다고? 그냥 퇴사해!"

이번 조사 결과, 유통업체들의 각종 노조법 및 근로기준법 위반 실태는 심각했다.

에스티로더, 바비브라운, 아베다 등 유명 브랜드를 거느린 미국계 유통사 엘카코리아는 법적으로 보장된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 연구원은 "지난해 9월 노조가 만들어졌으나 회사 측이 인정하지 않아 노사협의회조차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김종진 연구원에 따르면, 엘카코리아는 허리 통증으로 3주 휴가를 진단받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20일 쉬려면 퇴사하라"며 압박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90일의 산전후휴가도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신세계백화점 죽전점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연차휴가를 주말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메트로시티는 매장 전화요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 몰래 수년간 급여에서 공제했다.

김종진 연구원은 "롯데백화점 일산점의 경우 1층에만 존재하는 휴게실 관리를 각 층 판매대 노동자에게 휴게실 관리를 순번제로 맡겨왔으며 '청소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4일간 휴게실을 폐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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