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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리수'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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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리수'를 아는가?"

[화제의 책]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한국 사회에서 성전환자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하리수의 등장과 함께, '닿을 수 없는 세계'에 있던 성전환자는 겨우 이 땅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인다.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라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실제로 성전환자라는 입장에 처해보지 않은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성전환자는 모두 하리수처럼 호르몬 투여와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일까? 그들 모두는 하리수처럼 예쁠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를 바꾸는 것이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그들은 동성애자일까? 도대체 우리가 성전환자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여전히 성전환자는 '우리'에게 낯선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논의나 연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은 그저 TV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연예인' 하리수를 봐왔을 뿐이다. '보통' 여자보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약간의 '연민'마저 느끼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낯설지만 분명 존재해온' 성전환자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뒤늦게 시작됐다. 사회학, 여성학, 법학 전공자와 성전환자 인권 활동가들이 함께 나섰다. 이들이 지난 2006년 초부터 준비해 같은 해 9월에 나온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 자료집>은 한국에서 성전환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사한 최초의 연구 보고서였다.

한번 시작된 연구는 새로운 고민을 낳았다. 새로운 연구 모임이 생겨났다. 연구 모임의 이름은 'Wander In Gender(WIG·위그)'로 정해졌다. 엄격한 양성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쟁점을 문제제기하고, 이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는 의미다. 최근에 나온 새 책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사람생각 펴냄)는 위그의 첫 작품이다.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는 사람들

성전환자는 소수자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는 약자다. 특히 성전환자는 애초에 '잘못된' 육체를 가졌다는 점 때문에 누구보다 더 폭력에 노출된다.
▲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위그 공저. 사람생각 펴냄). ⓒ프레시안

그들은 쉽게 '통제'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효율적인 국민 통제 수단인 주민등록번호로 그들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형과 다른 성별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탓에 이들은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많은 것을 포기하길 강요받는다.

입사 원서를 제출하는 것은 '나를 뽑지 마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얼굴을 마주보며 주민등록증을 내밀어야 하는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신청도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된다. 국가가 제약하는 모든 통제 수단이 이들에게는 피부로 와 닿는 유무형의 폭력으로 돌아온다.

일상에서 쉽게 사유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면서, 성전환자에게는 생존 자체가 고민이 된다. 사회와 어떻게 타협할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등을 고민하며 이들은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러나 정체성을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성전환자는 "동성애인데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따위의 고민을 계속해서 끌어안고 살아간다.

'ftm(female to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바꾸려는 이)'인 루인은 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목소리가 때로 지나치게 저음이거나 행동이 '남성스러울' 때 적지 않게 당황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가까이서 얘기할 상황이 생기면 '천상 여자네' 란 식의 관습적인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고 밝혔다.

세상은 둘로만 나눠지지 않는다

저자들이 맡은 연구 분야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책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은 일관된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인식은 잘못'이라는 것. 이들은 이런 구분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성별이분법이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고 이 때문에 성전환자에 대한 오인과 오해가 끊임없이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책은 성전환자와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성전환자의 정체성에 나름의 정리를 시도한다. 성전환자들이 의료 체계와 어떤 식으로 관계 맺기를 하는지,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분화돼 가는지, 성별 변경 기준 대법원의 판례는 어떠한지 등이 다양한 소재를 갖고 소개된다.

저자들은 결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성전환자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소개하고, 저자 나름의 정리를 하지만 '성전환자를 이렇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성 이분법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성전환자를 '괴이한' 존재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만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둘로 나눌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 그로 인해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얻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 책은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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