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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아기', 꿈도 꾸지 마세요"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13>

2007년 1월 8일

안녕, 별아. 그동안 잘 지냈니? 오늘은 드디어 엄마가 별이를 만나는 날이로구나. 별이가 드디어 엄마 품에 이식되는 날이니까. 우리 별이, 이젠 정말 엄마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지난 여름, 과배란 부작용으로 엄마는 이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별이는 차갑고 어두운 질소 탱크 속에서 다섯 달을 잠자고 있어야 했지.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 없이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막상 이식을 포기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더구나. 그 중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별이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별이와 함께 하는 순간부터 엄마의 몸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데, 엄마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엄마도 별이도 건강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어.

그래서 엄마는 좀 더 건강해지고 난 뒤에 별이를 다시 만나려고 마음먹었어. 그래서 다섯 달을 기다렸지. 복수가 완전히 빠지고, 부었던 난소가 정상 크기로 돌아가고, 흔들렸던 호르몬 수치가 정상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 거야. 그리고 엄마는 얼마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어. 엄마는 천식을 앓고 있어서 수영을 하는 것이 좋다는 권유를 받았거든.

그리고 드디어 지난 12월부터 엄마는 다시 별이를 만날 준비를 시작했단다. 다행히 별이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과배란을 위해 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었어. 엄마의 몸이 가지는 생리주기에 맞춰 자연임신의 진행 상황에 맞게 배아를 이식하면 되니까. 즉, 별이는 수정된 지 5일 후에 냉동되었으니 배란 후 5~6일쯤에 이식하기로 했지.

이 방법은 별다른 호르몬 제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기는 하지만, 배란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병원에 자주 와야 했고 주기 취소율이 약 6%에 이르기 때문에, 주기가 맞지 않아 이식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 그래서 의사선생님은 엄마에게 확실하게 이번에 이식을 하기 위해서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을 권했어.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자궁내막이 여성호르몬에 의해 착상에 걸맞도록 두텁고 부드러워지면 바로 이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배란 주기와는 상관없이 이식이 가능하다고 했어. 엄마는 또다시 호르몬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이번에야말로 별이를 꼭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의사선생님의 말을 따르기로 했지. 그래서 엄마는 지금 거의 한달 가까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호르몬 제제를 먹고 있었어. 그리고 그 결과 자궁 내막이 착상에 알맞게 준비되어 이제 이식을 앞두고 있었지.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떨리는 가슴으로 이식용 침대에 누웠지. 벽에 걸린 모니터를 통해 엄마의 몸속으로 들어갈 세 개의 배아를 볼 수 있었어. 보통 냉동 배아를 해동시키는 경우, 해동 생존율이 70~80% 정도인데 다행히도 별이는 모두 무사했어. 아직 세포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세 명의 별이가 모니터를 통해 보았지. 엄마는 지금 별이의 가장 초기 모습을 보고 있는 거야. 남들은 태어나서야 할 수 있는 만남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한 셈이네. 다행히 배아들은 아주 잘 자라 있었고, 두 개는 부화가 시작되는 중이었어. 그리고 성질 급한 하나는 이미 부화마저 끝내고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벗어버린 채 금방이라도 엄마 몸속으로 파고 들 듯 건강해보였어.
▲투명대를 벗어버리고 부화된 포배기 배아의 모습. ⓒivf-infertility.com

엄마가 '부화'라는 말을 써서 이상하게 생각되었니? 별이는 개구리나 참새처럼 알에서 깨어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보통 부화는 보통 알 껍질을 뚫고 새끼가 태어나는 과정을 말하지만, 사람의 배아에게서도 부화와 비슷한 과정이 일어난단다.

앞서 말했듯이 난자는 두껍고 질긴 투명대(zona pellucida)에 둘러싸여 있지. 처음에는 투명대에 둘러싸여서 난할을 거듭하던 배아는 더욱 자라기 위해서 투명대를 뚫고 나올 필요가 있어. 투명대는 난자와 수정란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수정란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거든. 그래서 보통 수정 5-7일 후, 배아가 포배기에 들어서면 투명대를 찢고 나와 자궁벽에 착상하게 된단다. 이 때 배아가 투명대를 찢고 나오는 것을 '부화'라고 하는데, 부화는 배아의 착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부화가 되어야만 투명대 안에 갇혀 있던 배아가 자궁벽에 착상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때로는 이 투명대가 너무 질기고 두꺼워서 배아가 뚫고 나올 수 없어.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보조 부화술(assisted hatching)이라는 방법을 써서 인위적으로 투명대를 찢거나 약하게 만들어 부화를 도와주는 방법을 사용해. 연구결과, 보조 부화술의 적용은 수정과 발생에는 이상이 없으나 착상에 실패하여 임신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임신율을 유의하게 높여주는 것이 관찰되었단다. 그런데 모니터 속에 보이는 세 명의 별이 중 하나는 이미 부화가 끝나서 껍질을 벗어버린 뒤였어. 성공적으로 부화가 일어난 것을 보니 배아는 착상할 준비가 다 끝난 것 같았어.

보통의 경우, 배아가 자궁에 착상할 시기가 되면 자궁 내벽은 이 작은 생명이 달라붙어 자라기에 적당할 만큼 두껍게 부풀고 부드러워져 있어. 마치 새로운 씨앗을 뿌리기 전에 땅을 일구고 거름을 쳐서 농사가 잘 되기를 준비하듯이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이라는 호르몬이야. 원래 프로게스테론은 난자가 빠져나간 뒤 난포가 변한 황체에서 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라서 황체호르몬이라고도 부르지.

프로게스테론은 임신을 위한 호르몬이야. 배란 직후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은 자궁벽에 혈액 공급량을 늘리고, 수분 함량을 높이지. 그리고 배아가 영양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글리코겐의 분비량도 늘려 태아가 자라기에 완벽한 조건을 만들지. 만약 배아가 성공적으로 수정되어서 자궁에 내려왔다고 하더라도 프로게스테론이 자궁벽을 이렇게 준비시켜 놓지 않으면 착상되기가 힘들어. 딱딱하게 굳어 있는 황무지에서는 씨앗이 자랄 수 없듯이 말이야. 프로게스테론은 또한 자궁벽의 근육 수축을 막는 작용도 해. 혹시나 자궁벽에 배아가 착상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수축되어 착상을 방해할까봐. 이래저래 프로게스테론은 임신을 위한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어.

프로게스테론은 임신 이후에도 임신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해. 그래서 임신 초기에 출혈이 있다거나 임신 상태가 불안정하면 병원에서 놓아주는 '유산방지주사'의 성분이 바로 프로게스테론이야. 임신을 도와주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외부에서 보충시켜줌으로써 임신을 좀 더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들이 생리를 오랫동안 하지 않을 때, 병원에서 놓아주는 '생리하게 만드는 주사'의 성분도 역시 프로게스테론이라는 거야. 배란기 이후 황체는 프로게스테론을 방출해 자궁을 임신에 적합한 상태로 변모시켜 줘. 그러다가 배아가 착상할 시기를 넘기고도 자궁 내막에 달라붙은 작은 손님이 없으면 이번에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몸은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량을 줄이고, 이로 인해 두텁게 부풀어 올랐던 자궁 내막은 허물어져 몸 밖으로 배출되지. 그게 바로 월경이야. 따라서 호르몬 불균형 등으로 생리를 오랫동안 하지 않은 경우,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통해 이를 체내에 유입시켜주면 갑자기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높아졌다가 떨어지는 과정을 정상적인 생리 주기의 변화로 착각하고 생리가 시작될 수 있어.

어떤 여성들은 생리가 늦어져서 '생리하게 만드는 주사'를 맞은 뒤, 뒤늦게 임신인 것을 알고 혹시나 아기에게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가 있어. 그러나 이 경우는 안심해도 돼. '생리하게 만드는 주사'의 성분은 '유산방지 주사'의 성분과 동일한 프로게스테론이니까. 그리고 엄마처럼 인공으로 임신을 유도하는 경우 프로게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배란기부터 그러니까 이식하기 전부터 임신 10주까지 매일매일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맞아야 하거든. 요즘에는 질정이나 먹는 약으로도 프로게스테론을 보충하는 제품들이 나와 있기도 한데, 경험상 가장 확실한 건 주사였던 것 같애. 어쨌든 이렇게 꽤 긴 기간 동안 프로게스테론을 보충했음에도 별이는 별다른 이상이 없거든. 그리고 기존의 연구에서도 체외수정에서 프로게스테론의 보충 요법이 임신의 유지와 유산 방지에 도움을 주고, 태아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음이 보고되었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드디어 엄마 몸속으로 세 명의 별이가 모두 들어갔어. 셋 다 자리를 잡을지, 하나 둘만 그럴 수 있을지, 아니면 모두 이별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 착상은 정말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거든. 부디 무사히 엄마와 만날 수 있길.
▲보조부화술을 이용해 투명대에 구멍을 뚫는 장면(왼쪽)과 배아의 확대 모습(오른쪽). ⓒcnyfertility.com

별이를 기다리면서 엄마는 우연히 TV에서 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어. '사랑'이라는 주제로 5편의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취재한 것인데, 그 중 한 편이 '엄지공주'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윤선아 씨를 주제로 한 것이었어. 윤선아 씨는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서 가벼운 충격에도 골절상을 입는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어서 120cm 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엄지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렸지. 키가 자라지 못한 그녀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어. 그녀는 사실 체구가 작은 것 외에 임신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체외수정을 선택했지. 굳이 그녀가 힘들고 어려운 체외수정에 도전한 건, 자신의 질병이 아이에게 유전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였지. 그녀의 질병은 유전성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자신의 불행한 운명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고 싶어서였어.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체외수정을 통해 수정란을 만든 뒤, 이 수정란의 세포를 검사하여 유전적 질환이 없는 건강한 배아를 찾아내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 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을 통해 아이를 갖는 방법이었어. 착상 전 유전자 진단, 즉 PGD란 수정된 배아를 자궁 내로 이식하기 전에 특정 유전질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세포를 1~2개 정도 떼어내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 방법을 말해. 보통 수정된 지 3일째, 세포의 개수가 8개 정도 되었을 때 실시하는데 이때는 1~2개의 세포를 떼어낸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발달 과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지.

겨우 1~2의 세포만을 가지고 유전자 검사가 가능해진 것은 1985년, Saiki에 의해 PCR 기기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세포 1~2개에서 얻을 수 있는 DNA의 양은 극히 작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검사를 할 수가 없어. 그런데 이렇게 작은 양의 DNA라도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반응을 통해 DNA의 양을 증폭시킬 수 있어. PCR 반응을 하게 되면 수 시간 내에 DNA의 양을 수십만 배 이상 늘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험에 필요한 DNA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지. 이렇게 확보한 DNA를 통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면 건강한 배아와 안타깝게도 유전질환을 물려받은 배아를 구별할 수 있지.

(참고로 윤선아씨의 경우, 이 방법을 통해 체외수정 시술을 받았는데 1차는 아쉽게도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두 번째 시도를 통해 지난 3월 건강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대.)
▲착상전 유전자 진단을 위해 8세포기의 배아에서 세포를 떼어내는 모습. 가느다란 유리관을 이용해 1-2개의 세포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familyfertility.com


PGD는 유전질환으로 고통 받았던 부모들에게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했어. 그런데 최근에는 이 PGD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PGD의 범위를 확대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야. 엄마도 체외수정을 시술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체질적으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이왕이면 PGD를 통해 건강한 아기를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을 들었거든. PGD는 분명 유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써는 검사할 수 있는 유전적 질환이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정말 심각한 질환이 아니라면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검사야.

자신의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하고 아름답게 자라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니? 그런데 이런 부모의 욕심과 PGD의 검사 적용 확대가 잘못 결합되는 경우, 부모가 아이의 유전인자를 하나하나 골라서 낳는 '맞춤 아기'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유전자 차별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지. 영화 <가타카>에서 묘사한 것과 동일한 그런 세상 말이야. 유전자는 인간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유전자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거든. 특히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뇌'는 출생 이후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발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전자가 갖는 우열을 상쇄할 수 있는 힘이 있거든.

그리고 현재 기술로는 PGD를 통해 모든 유전질환을 구별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아래의 표를 참고해 보면 알겠지만, 대개의 경우 일반인들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질병들의 이름만 쭉 나올 거야. 현재 PGD는 유전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알려진 심각한 유전질환들만을 대상으로 검사가 가능하고, 의학적인 목적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둬야 하지.

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엄마의 몸 속으로 세 명의 별이가 들어왔어. 이제 정말 내 몸에 생명이 들어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졌어. 우리 별이가 정말 무사히 엄마 몸 속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제발 우리 별이, 이젠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참고 자료

박혜은 외, '포배기 배아의 동결보존 후 이식시 자궁내막 준비를 위한 자연주기법과 외인성 호르몬 투여법의 비교 연구', <대한산부회지>, 제50권 4호, 2007.

성효숙 외, '배아의 자궁내 이식시 보조부화술의 임상적 유용성', <대한산부회지>, 제47권 1호, 2004.

이숙환 외, '유전질환의 착상 전 진단', <대한산부회지>, 제42권 12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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