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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미래를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⑨] 민주화시대의 종착역에서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4월 9일 총선을 맞이해 공동기획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를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결합하는 '아카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이번 총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 아홉 번째로 이번 총선이 갖는 의의에 대해 김호기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총선이 내일로 다가 왔다. 여전히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지역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얼마를 기록할지, 부동층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에 따라 결과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대 선거'로서의 총선

이번 총선은 지난 12월 대선과 더불어 이른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의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첫째, 이번 총선은 민주화 시대를 결산하는 선거다. 내일 저녁 개표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의 흐름이라면 한나라당이 과반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여 무소속 당선자들까지 고려하면 보수 세력은 200석 내외의 의석수를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 ⓒ연합

이 결과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과 함께 민주화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민주화 세력의 일부는 몇몇 지역구에서 국회 진출에 성공할 수 있겠지만,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의 민주화 세력은 대선에 이어 또 한번의 시험대 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둘째, 여당이 과반을 차지한다고 해서 국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1996년 총선과 2004년 총선이 가져온 여대야소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주목할 것은 정당정치 내로 수렴된 정치적 경쟁 구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시민사회의 균열 구조는 정치사회 밖에서 '국가 대(對) 시민사회 또는 국가 대(對) 사회운동의 대결 구도'로 활성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수위원회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일련의 상황은 정치 구도의 변화를 시사한다. 의제 설정 역량과 시민사회의 정치적 대표성이 취약한 야당을 대신하여 사회운동이 다시 강화될 가능성은 대운하 반대 운동,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 등이 이미 예고하고 있다. 물론 이 구도는 20년 전 민주화 초반기 국가 대 시민사회의 대결 구도와는 사뭇 내용이 다르다. 당시에는 권위주의 국가의 해체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신자유주의 반대, 생태주의, 생활정치 등이 새로운 내용을 채우고 있다.

좌파 신자유주의의 딜레마

돌아보면 민주화 시대 이후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은 보수 대 중도가 양강을 이루고, 여기에 진보 세력이 1약을 차지한 구도를 이뤄 왔다. 냉전분단체제 아래 진보 세력의 정치 세력화가 뒤늦게 이뤄진 상황이 반영된 구도였다.

문제는 이 구도가 시민사회의 구도와 부조응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시민사회는 대체적으로 '보수 대(對) 중도 대(對) 진보'가 분점하고 있었던 반면에, 정치사회는 '보수 대(對) 중도'가 일종의 과점을 이룬 것이 한국 정치의 특징을 이뤄 왔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사회의 중도 세력은 중도 일부와 중도진보를 포괄하는 정치적 대표성을 갖고 있었다.

이 한국적 구도가 파열을 보인 것은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였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는 정책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진보주의 사이의 긴장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던 반면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그 긴장이 풀어지면서 중도 및 중도진보 세력의 정치적 이익을 보호하는 데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중도 또는 중도진보에 두고 있던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부와 집권 여당의 '좌파 신자유주의' 기획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 방점이 '좌파'가 아닌 '신자유주의'에 과도하게 놓일 경우 지지 세력들이 이를 거부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것이었다. 지난 대선의 결과는 다름 아닌 '좌파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필연이었다.

두 국민 국가, 두 국민 사회를 넘어서

대선 이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기회는 먼저 밖에서 왔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명박 정부는 국민 다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영어 공교육, 대운하 프로젝트, 그리고 인사정책 등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역량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던 이유는 중도 세력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 보수 세력의 국가 능력(state capacity)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은 현재까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월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의 마가릿 대처가 돼 주길 바랐지만, 아직까지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안에서도 또 하나의 기회가 주어졌다. 중도 세력은 리더십을 교체하고 '새로운 진보'를 내걸었다. 진보 세력은 민족주의 세력과 좌파 세력이 분화하면서 '진보의 재구성'을 모색했다. 특히 중도 세력은, 정당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었으나 하향식 개혁 공천을 통해 지지 그룹의 관심을 다시 불러 모았다.

하지만 이 변화를 지지 확대로 연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영국 노동당 '제3의 길'의 한국적 변형을 새로운 콘텐츠로 내세웠지만, 그 콘텐츠로 중산층과 서민층을 설득하는 데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민생제일주의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좌파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정책 목록은 크게 눈에 띠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정치적 상황은 유권자의 표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데도 야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20% 전후에 머물렀다. 반사이익에 기댄 지지율, 또는 네거티브에 기반한 지지율의 상승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지난 몇 년간 고정된 지지율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입각한 포지티브 정책들을 제시하고, 진정성에 기반해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 점에서 지난 대선에서 창조한국당의 실험은, 비록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더라도 여전히 여러 함의를 던져준다. 당시 창조한국당은 일자리 창출, 교육 개혁, 불공정 하도급 개선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뇌관들을 정공법으로 건드린 '중도적 반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중도진보 노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지지를 확장하는 것, 그것이 중도든 진보든 새롭게 부여된 과제였다.

총선 이후 아마도 우리 사회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의 정치 지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을 모두 장악한 보수 세력은 보수적 신자유주의 정책의 드라이브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1990년 당시의 정치 지형은 민주화 시대가 막 시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래가 그렇게 암울하지 않았다. 정치사회에서는 보수대연합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시민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들이 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형성될 새로운 보수 주도의 정치는 그 때와는 상황이 적잖이 다르다. 세계화가 강제하는 압박은 빠른 속도로 사회 전체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대기업을 포함한 일부 사회조직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증대한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두 국민(two nations) 국가'로 분단되는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다. '두 국민 사회', '두 국민 경제', '두 국민 교육', '두 국민 주거', 그리고 '두 국민 복지' 등이 강화되면서 사회 전체가 더욱 황량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신자유주의를 이분법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효율성, 경쟁력은 형평성, 공공성 못지않은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주요 덕목들이다. 우리 사회가 놓인 현재적 조건을 고려할 때 개방의 문제 역시 이분법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평성과 공공성을 배제한 채 효율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사회적 약자 보호를 도외시한 개방 사회 역시 우리가 갈망해 온 열린사회는 결코 아닐 것이다.

나는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가 과거가 아닌 미래에 표를 던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이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였다면, 이번 선거는 우리 미래를 선택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 효율성과 경쟁력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그런 황량한 사회가 아닌, 인간적인 가치와 공공성을 존중하는 그런 기품 있는 미래를 열어 가기 위해 표를 던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총선에 부여된 역사적 과제는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보수와 진보의 정치 구도를 만드는 데 있다.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에 기반한 생산적인 보수 대 진보의 정치 구도를 형성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 사회는 안고 있다. 그리고 이 미래가 비관적일 것인가 낙관적일 것인가는 결국 우리가 어떤 집합의지를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출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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