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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의문사-민주인사 인정' 논란 확산

보수언론-단체 일제히 반발, 인권단체는 "진일보한 결정"

지난 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가 손윤규씨 등 감옥에서 숨진 3명의 비전향 장기수에 내린 '의문사 인정' 결정에 대해 논란이 거세다. '민주화 운동 일환'으로 인정된 손윤규, 박융서, 최석기씨 등이 남판 간첩 혹은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양심의 자유가 확장되는 계기'라고 크게 환영하는 반면,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들은 '체제와 국기를 흔드는 반국가적 행위'라며 극렬 반발하고 있다.

***손윤구, 박융서, 최석기 그들은 누구인가?**

의문사위의 '의문사' 결정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대상은 손윤구, 박융서, 최석기 3명이다. 이중 최석기, 박융서씨는 1950년대 남파 간첩이고, 손윤구씨는 6.25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근거로 활동한 빨치산 출신이다.

의문사위와 관련 기록을 보면, 1923년 남한에서 태어난 최씨는 48년 월북, 북한의 교육을 받았다. 이후 최씨는 53년 10월30일경 전남 보성군 벌교 방면으로 침투, 북한과 지리산 빨치산을 연결하는 임무를 맡아 활동했으나, 남파 1년 만에 검거돼, 55년 광주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최씨는 20여 년 수감생활을 하다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74년 4월4일 사망했다.

박융서씨는 1921년생으로 57년9월5일 경기 연천군 신탄리로 육상 침투한 남파 간첩으로 인민군 제대후 서울로 잠입하다 검거돼 59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박씨 역시 대전교도소에서 74년 7월20일경 사망했다.

손윤구씨는 1923년생으로 6.25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후퇴할 당시 지리산 빨치산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직 후 1955년5월18일 자수했으나 그해 육군 제2군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60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문제는 손·박·최씨 모두 현재 부당한 행위로 인정되는 사상전향을 거부하다가 부당한 폭력에 의해 사망을 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사망기록에 '심장마비'로 기록돼 있으나 의문사위 조사결과 전향공작을 위해 경찰이 투입한 폭력범 재소자 2명에 의해 폭행을 당해 숨진 것으로 드러났고, 박씨 역시 교도관, 전향공작 전담반 등에 고문당하다 '전향을 강요 말라'는 내용의 혈서를 수감됐던 방 벽에 남기고 유리조각으로 동맥을 그어 자살했다. 또 손씨도 강제전향방식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벌이다 폭행과 함께 고무호스를 통한 강제 음식물 투입 하는 와중에 숨졌다.

간첩 혹은 빨치산이었으나, 그들의 죽음은 부당한 '사상전향공작'과 '강제급식' 등 공권력의 폭력 때문이었다는 게 의문사위가 내린 결론이다.

***의문사위 "일제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 아닌가"**

의문사위가 남파간첩 혹은 빨치산이었던 이들을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의문사위는 "사상전향 거부를 곧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부인으로 환기·등치시키는 것은 사망한 자의 내심의 의사를 일방적인 기준과 잣대로 추단하는 행위'라는 입장이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적극적인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는 대신 '민주주의가 말살된 대한민국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이북에 가족이 있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전향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전향을 거부했다.

의문사위는 이어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결국 손씨 등이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항거해 이를 거부하는 단식투쟁을 벌였던 행위는 의문사법이 규정하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또 의문사위는 "전향공작에 대한 항거가 반민주적·반인권적 사상전향제도, 준법서약제도의 폐지를 가져온 만큼 이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공권력에 의해 강요될 수 없음이 제도적으로 확보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즉 이들이 간첩 또는 빨치산이라고 하더라도 '적극적 사회주의·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을뿐더러 '전향공작 거부' 등 반민주적인 공권력에 대해 항거하다 죽음을 맞은 만큼 우리사회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의문사위의 판단이다.

***보수언론-단체 "간첩이 민주화 인사냐"**

의문사위의 이런 판단에 대해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이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3일자 '간첩도 '민주투사'라니 한국은 어디로 가나'란 제하의 사설을 통해 "(의문사위 결정은)이 나라를 북한 세습 독재체제로 통일시키려고 공작했던 공작원들을 떠받드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가치와 이념 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간첩도 민주인사라는 의문사위'란 제하의 사설에서 "대한민국의 국기와 정체성에 심각한 혼선을 초래했다"며 "인간으로서 기본권리를 침해당했고 그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전향제도나 준법서양서 등 악법이 철폐됐으므로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라는 (의문사위의)논리는 역설적으로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당시의 공권력도 결과적으로 민주화에 기여했고, 박종철군을 고문 치사한 경찰관도 6·10 항쟁을 가져온 민주화 유공자로 볼 수 있단 말인가"라고 주장했다.

보수시민사회단체들도 2일 잇딴 성명을 통해 의문사위를 비난했다. 자유시민연대는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 재소자 3명의 죽음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이곳이 대한민국인가를 의심케 하는 충격적 사건"이라고 주장했고, 대한민국재향군인회도 "사상전향을 거부하다 사망한 간첩을 민주화 인사로 미화·인정한다는 것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반발했다. 신혜식 바른선택국민행동 사무총장은 "반핵반김 국권수호 국민협의회, 대령연합회 등과 함께 이르면 3일 의문사위를 방문, 항의집회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단체,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그 사회가 증오하는 사상마저 관용하는 사회"**

보수세력의 극렬 반발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잇달아 성명을 내어 "의문사위의 이번 결정은 이미 정부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다며 폐지한 사상전향제도의 반민주성에 주목한 것으로, 우리 사회의 양심의 자유 폭을 한층 끌어올린 의미있는 결정"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인권운동사랑방도 3일 '의문사위 결정 정당하다'란 제하의 논평에서 "수구세력들이 걸핏하면 들이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단 하나의 사상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가 증오하는 사상마저 관용하는' 사회"라며 "수구세력이 찬양해 마지 않는 박정희 유신독재가 민주헌정질서를 부정 왜곡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했음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논평은 " 비전향 장기수들의 저항은 민주헌정질서와 국민의 기본권 회복에 기여하는 행위였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그들의 희생은 훗날 사상전향제도의 폐지로 귀결되었고, 우리 사회에 사상·양심의 자유가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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