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제 세상 만났다. MB가 대통령이 됐다고 팔에 완장을 찼다. 우스운 것은 이 완장질의 근거. '동아일보 = 고려대학교 = 이명박.' 이런 같잖은 인연의 실 자락을 붙들고 정권과 벌이는 <동아일보>의 낯 뜨거운 애정행각. 저널리즘과 포르노그래피의 결합으로 <동아>는 언론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조선일보>가 옆에서 질투를 할 정도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 가끔 지면에 <조선일보> 것이라 믿기 힘든 기사나 논설을 올린다. 살다 보니, 별 꼴을 다 본다.
듣자 하니, 영화계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선언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동아일보>, 그게 영 못 마땅했나 보다. 익명의 영화인을 내세워 "영화계에 정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둥, 이상한 기사를 올리며 슬며시 시비를 걸고 나선다. 남이야 어떤 당을 지지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영화인들이 자기 개인의 이름을 걸고 지지를 선언하겠다는데, 자기들이 기분 나쁠 일이 뭐 있을까?
명색이 진보신당의 홍보대사, 이 만행을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자, 다음 기사를 보자. 문제의 기사를 쓴 <동아일보>의 채지영 기자와 꼭 함께 읽고 싶다.
"예능단체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단 150여 명도 지지 성명을 내고 이(명박) 후보를 전폭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총은 건축가협회 국악협회 무용협회 문인협회 미술협회 사진작가협회 연극협회 영화인협회 음악협회 등 회원만 수십 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단체의 이름을 걸고 지지선언에 나섰다. 상식적으로 소속 회원 수십 만 명이 일제히 이명박을 지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들은 버젓이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까지 무더기로 대변하고 나선 바 있다. 회원 수십 만 명을 거느린 단체에서 회장단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 '정치 바람'이라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런데 그때 <동아일보> 채지영 기자는 어디서 뭐하고 계셨을까?
예총은 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을까? 유인촌씨가 장관이 되자마자 완장질부터 하고 나선 것을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밥그릇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과거 정권 아래서는 예총이 혼자 다 해 먹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예총과 나눠먹어야 하고, 심지어 민예총보다도 덜 먹어야 했다는 불만. 아마 자기들도 부정하지 않을 게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얼마나 순수한 걸까?
반면, 영화인들이 진보신당을 지지하면 뭐가 생길까? 진보신당이 지지선언 해 준 감독들에게 장관 자리를 줄 수 있나, 아니면 공공기관의 장으로 앉힐 수가 있나, 하다못해 그 흔한 각종 위원회의 위원 자리라도 마련해 줄 수 있나? 진보신당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떡고물은 '하나도' 없다. 외려, 지지를 선언한 죄로 진보신당에 선거 치룰 비용이나 내줘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우려"할 일인가?
이 기사는 또 어떤가?
"가수 김건* ▲ 영화배우 김민* ▲ 영화배우 김보* ▲ 영화배우 김선* ▲ 탤런트 김원* ▲ 탤런트 김유* ▲ 탤런트 김응* ▲ 탤런트 김재* ▲ 가수 박상* ▲ 탤런트 박선* ▲ 성우 배한* ▲ 탤런트 변우* ▲ 영화배우 성현* ▲ 탤런트 소유* ▲ 개그맨 겸 MC 신동* ▲ 탤런트 겸 가수 안재* ▲ 성우 안지* ▲ 가수 겸 탤런트 에* ▲ 가수 겸 탤런트 유* ▲ 탤런트 윤다* ▲ 개그맨 겸 MC 이경* ▲ 영화배우 이덕* ▲ 탤런트 이순* ▲ 탤런트 겸 가수 이지* ▲ 탤런트 이창* ▲ 탤런트 이* ▲ 개그맨 겸 MC 이휘* ▲ 가수 겸 탤런트 전혜* ▲ 탤런트 정선* ▲ 영화배우 정준* ▲ 탤런트 차태* ▲ 탤런트 최불* ▲ 탤런트 최수* ▲ 탤런트 한재* 등 (사)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소속 연예인 35명)"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연예인들의 명단이다. (지금쯤 쪽팔려하고 있을 것 같아 한 자는 지웠다.) 명단의 끝에서 "(사)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라는 단체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그 단체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지지선언을 한 것은 아닐 게다. 그런데도 성명에는 버젓이 단체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그때 원하지 않는 사람 이름까지 집어넣었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채지영 기자는 뭐하고 계셨을까?
영화인이 개인 이름 걸고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선언에 참여하는 것조차 "우려"하는 그 섬세한 감성이, 저 무지막지한 정치바람들 앞에서는 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다 저려온다. 남에게 얻어먹어도 떳떳한 삶이 있는가 하면, 멀쩡히 직업 갖고도 빌어먹는 구차한 삶이 있는 법. 저런 기사로 밥 먹는 것은 좋은데, 밥 먹는 자태가 그것보다는 좀 더 우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충고 한 마디. 지금 <동아일보>가 한가하게 진보신당 신경 쓸 때인가? <동아일보>에서 지금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청와대 대변인질 해야지, 한나라당 기관지질 해야지, 고려대학 동창회보질 해야지. 1인 3역을 해야 할 때다. 또 지금이 어디 한가하게 정권이랑 밀월이나 즐길 때던가. 각하 지지율 뚝뚝 떨어져 정권의 숨이 넘어가는 상황. 바야흐로 구강 대 항문 키스를 애정표현에서 인공호흡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동아>여, 폐활량을 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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