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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미래'는 노무현의 '가까운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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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미래'는 노무현의 '가까운 과거'

[분석]전초전에 불과한 집권세력 권력갈등

세력이 양분된 갈등은 단조롭지만 제대로 부딪히면 파열음이 크다. 지난해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명박계-박근혜계가 사소한 일로 치고받을 때조차도 한나라당은 분당을 염려했다.

이와 달리 공천 파동, 이재오 파동, 이상득 파동을 거치며 드러난 이명박계의 세분화는 집권세력 내부 갈등의 다각화를 예고했다. 공천 결과 한나라당은 명실공히 '이명박당'이 됐으나, 점령군 실세들은 적절한 협력관계 유지에 실패했다. 어느 한 세력이 나머지 세력을 압도하지 못하는 다각 구조는 분열보다 내부 암투가 위험요소다.

이상득 그룹에 맞서 이재오 그룹과 소장파 그룹이 손을 잡아 맞선 게 '이재오 반란'의 구조적 모양새다. 여기에 영향력이 엄존하는 박근혜계가 이재오 그룹을 겨누면서 삼각 전선으로 확대됐다. 강재섭 대표도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한자락을 걸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얘기도 솔솔 나왔다. 이재오 의원은 청와대에서 이상득 의원과의 동반불출마를 거론한 적 없다고 항변했고, 소장파들의 '이상득 용퇴 촉구' 기자회견은 정두언 의원 등 소장파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재오-소장파 연대에도 일종의 불협화음이 존재했다는 정황이다.

이렇게 모든 세력이 저마다의 셈법을 갖고 복잡하게 충돌할 때, 결론은 오히려 허무하게 끝난다. 당을 뒤집어 삼킬 듯 했던 이재오-이상득 동반불출마 얘기는 두 사람이 출마 의지를 확인함으로써 없던 일이 됐다.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한 소장파들도 한 걸음 물러났다. '거사'라는 표현까지 붙었던 것에 비교하면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난 꼴이다.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승자는 아무도 없이 당은 물론이고 연루된 실세들의 이미지,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까지 만신창이가 된 결과를 낳았다. '공멸형 매커니즘'의 작동이다. 총선에서 각 세력이 얼마나 살아남아 권력지도가 어떻게 재편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이런 다각구조가 한나라당이 굴러가는 생리가 된 건 분명해 보인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정부 한 달 동안 노무현 정부 5년을 봤다

이처럼 복잡한 세력구조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어지간해선 당이 깨지는 일이 없다. 이명박계는 두말 할 것 없고, 박근혜 전 대표가 '당내 투쟁'을 선포한 건 불가피한 선택이다. 최소한 절반은 점한 절대강자가 아닌 이상 탈당은 본령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세력이 다양하다는 건 집권세력 내에서 특정 세력과 개인의 독주가 제어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상 발전적 견제와 균형은 이상에 가깝다. 치명적인 단점은 리더십의 공동화로 나타난다. 특히 여당인 경우 초기엔 실질적 주인이 청와대가 될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이 그랬다. 창당 때는 모두가 친노였다. 당정분리 원칙이 금과옥조로 여겨졌음에도 사실상 청와대 눈치를 봤다. 2004년 총선을 거친 뒤에도 한동안 이런 관계가 유지됐다. 초기엔 그래서 여당의 리더십이 실종됐다.

시간이 지나선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꺾이는 추이에 반비례해 정동영계, 김근태계, 친노직계 등으로의 균열이 강하게 부각됐다. 압도적 다수 세력이 존재하지 않은 탓에 날마다 집안싸움만 벌였다. 당이 문을 닫는 날까지 리더십은 단 한 번도 구축되지 못했다. 3년간 당 의장이 9번이나 바뀌었다는 건 이를 웅변한다.

그 결과 집권여당의 군웅할거형 권력다툼이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과 맞물렸을 때, 말로가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는 얼마 전까지 경험한 바다.

이런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과거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무척 닮아있다. 하지만 훨씬 비극적인 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과 한나라당 내의 권력투쟁이 표면화된 시기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새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지난 정부의 5년을 다시 본 것 같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말들이 넘쳐난다.

권력다툼과 민심이반이 만날 때

내부갈등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이 같은 구조적 악재가 온존하는 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자중지란이 국정운영의 독소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총선 뒤에 바로 이어지는 7월 당권 선거가 그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실세들의 시선은 이미 총선을 건너 당권선거로 넘어가 있다. 이재오의 반란, 이상득의 버티기, 소장파의 이상득 때리기, 박근혜의 분노, 강재섭의 총선불출마 등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모든 행위가 당권 다툼을 키워드로 놓고 보면 한 줄로 꿰어진다.

그러나 어느 한 세력이 대마를 장악하기 힘든 탓에 전략적 연대와 대립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공천 갈등과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 문제 등을 둘러싼 얽히고설킨 권력 갈등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총선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될 당권 다툼은 음모와 야합이 판치는 집권여당의 전무후무한 내분으로 비화될 공산이 적지 않다.

이번 사태로 심각한 수준의 정치적 내상을 입은 이재오 의원은 원내 입성마저 실패할 경우 재기를 위한 '무리수'를 쓸 가능성이 있다. 여론의 눈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상득 부의장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고, 총선 결과에 따라선 책임론에 휘말릴 수도 있다. '당내당'과 '당외당'을 이중 관리하는 박근혜 전 대표도 변함없는 화약고다.

일각에선 세력이 부족한 정몽준 의원이 이상득계와 결합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정 의원은 경쟁자들의 자살골로 이번 사태 최대의 수혜자로 꼽힌다. 서울 동작을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을 꺾고 당당하게 원내에 입성하면 그의 입지도 상당부분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삼각, 사각 충돌이 밥 먹듯이 벌어질 한나라당에서 누가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계파 수장들과 대선주자들이 당 의장을 맡아 너나없이 나가떨어졌던 것도 같은 까닭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력과 청와대의 정무기능에 심각한 하자가 발견됨으로써 향후에도 당과 청와대가 서로 치고받는 모양새가 곳곳에서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자충수로 국정 지지율까지 추가로 곤두박질칠 경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위기는 대단히 빠르고 심각하게 닥쳐올 수도 있다. 집권세력의 권력다툼이 위험천만한 건 그게 곧바로 국정파탄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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