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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티베트의 잔인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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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티베트의 잔인한 봄

[아시아 생각] "당신에게 그곳은 어떤 의미인가"

히틀러가 꿈꿨던 낙원, 티베트

1933년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에 아름다운 자원을 묘사한 낙원이 소개된다. 샹그릴라(Shangrila)로 부른 그곳은 동양의 신비와 지혜를 찾는 서구인들을 자극하여 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히말라야로 이끌었다. 오리엔탈리즘의 하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티베트 문제가 유독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하여 유럽의 지식인들에게서 지지를 받는 것도 티베트불교가 가진 그 신비로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도 달라이라마는 종교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티베트 또한 고대의 지혜를 배우고 명상하려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았다. 불교와 명상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여러 만화와 소설, 영화를 통해 티베트는 뭔가 신비로움을 간직한 평화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적어도 최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 있기 전에는….

한국 운동에는 낯선 티베트의 비극

3월 14일을 전후하여 외신은 긴급하게 티베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중국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시위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많은 인명이 희생당했다는 뉴스는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상황과 맞물려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마침 티베트출신 이주노동자의 연대요청이 있었고 부랴부랴 한국 단체들도 중국대사관 앞 기자회견과 촛불집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느낀 것은, 한국의 국제연대운동은, 아니 한국사회는 티베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티베트 관련 집회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언론사에 취재를 받으면서 외신 내용만을 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또 지난 버마 민주화지지 촛불집회와 반전집회와 비교해보아도 많은 한국 단체들의 참여는 없었다.

물론 급하게 조직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36개 단체가 연명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분명, 티베트 시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여러 이견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비슷한 인권사안이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지지하는 사안에는 신중한 한국운동의 특수성에 원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국제이슈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서인지 알 수는 없다. 티베트 문제뿐만 아니라 파룬궁을 비롯한 여러 중국내 인권문제에 대해서 보이고 있는 암묵적인 한국 운동의 거리두기는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티베트 지지 운동

상대적으로 저조한 한국 단체들의 참여와 비교해보면 일반(?)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운동은 정말 인상적이다. 티베트를 다녀온 사람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이들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서로를 북돋우며 티베트를 지지하는 한국사회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티베트에서 만난 친구들을 걱정하는 마음하나로 뭉쳐서 움직이는 모습은 소위 '운동권'인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보도자료 만들고, 단체연명 조직하고 대표자 발언 조직하는 것이 나의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의 모습은 국제연대운동을 고민하던 내가 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이 없고, 돈이 없고,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국제연대운동 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내게 단 며칠사이에 90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하고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이들의 모습은 '티베트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궁금하게 만들 정도였다. 고집스럽게 비폭력평화노선을 견지하는 달라이라마와 이들의 열정은 어쩌면 닮아 있는 것도 같다.

하늘나라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

히말라야 산맥 위에 자리 잡은 티베트가 서구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한족에게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각종 무협지만 보더라도 한족의 무림세력들은 티베트불교를 중원을 침공하는 변방의 사악한 종교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심지어는 이들을 막기 위해 같은 한족인 정파와 사파가 힘을 합치기도 한다) 중국정부가 '인민전쟁'이나 '생사를 건 투쟁'이라는 극한 표현을 동원하며 티베트를 탄압하는 것은 티베트가 가진 엄청난 자원 때문이지만 이러한 뿌리 깊은 중화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티베트인과 한족간의 역사적 배경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겠지만 일제지배의 아픔과 광주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에게 티베트인들의 현실은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설령 누군가에게는 봉건적 종교와 사회주의체제간의 다툼이거나, '인권'을 핑계로 내정간섭을 일삼는 서구제국주의의 음모일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국내 거주 티베트 인들에겐 요 며칠의 일들은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일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가 중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 한 홍콩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중국의 무력진압에 가장 비판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일반 국민들의 수준에 못 미치는 '저질외교'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아시아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한 한국의 운동 수준 역시 끌어올려야 한다.

촛불집회 때 어떤 분이 "경제도 어려운데 티베트가 웬 말이야?"라고 역정을 내셨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아무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다. 그래서 총칼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학살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당장 지금 티베트에서 폭력은 멈춰져야 한다.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격주간으로 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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