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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배에 바늘 자국은 계속 늘어났지만…"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9>

2006년 7월 20일

안녕, 별아. 이제는 정말 엄마에게 찾아올 준비가 되었겠지? 널 기다리는 마음 하나만으로 엄마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주사 바늘과의 씨름을 견뎌내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 와 주렴.

지난번에 인공수정 이야기를 했는데, 의사와의 상의 결과 엄마와 아빠는 인공수정보다는 체외수정을 시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하더구나. 망설임 끝에 결국 우리는 체외수정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어.

인공수정은 정자를 인위적으로 자궁 속으로 넣어준다는 것 외에는 수정과 착상에서는 자연임신과 대동소이한 과정을 거쳐 일어난단다. 하지만 체외수정은 달라. 체외수정이라는 말 그대로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여 몸 밖에서 수정시켜서 일정시간 발생시킨 뒤, 그 배아를 직접 이식하는 방법이거든. 그래서 체외수정의 경우 인공수정에 비해 더 발달된 기술이 필요하고, 그만큼 엄마가 감수해야 할 노력도 크단다.

체외수정도 처음에는 동물에게서 먼저 시도되었어. 포유동물의 경우, 암컷은 태어날 때부터 난소에 수백만 개의 미성숙한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실제 성숙하여 배란되는 경우는 그 중 극히 일부분이지. 또 정자는 개체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수정 능력이 완만하게 하강하는데 비해, 난자의 수정 능력은 개체의 가임 기간 동안 급격히 하강하였다가 결국에는 수정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곤 하지. 따라서 우수한 암컷의 형질을 보존하기 위해서, 아직 충분한 가임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과배란을 통해 젊고 건강한 난자를 확보해 좋은 형질의 개체를 충분히 번식시킬 필요성에 의해 체외 수정이 대두되었어. 포유동물의 경우 암컷이 한 배에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암컷을 이용한 자연 번식은 한계가 있지만, 체외 수정의 경우 원래 모체가 아니라 대리 모체에 이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도 해결해 줄 수 있었거든.

실제로 포유동물의 수정란 이식은 1890년 영국의 히프(Heap)가 토끼의 수정란을 다른 종류의 토끼에게 이식시켜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1951년에는 소와 돼지의 체외 수정이 성공한 바 있어. 게다가 정자의 냉동보존법이 개발된 이후, 연구를 거쳐 수정란 자체를 동결 보존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1973년에 윌머트(Wilmut)와 라우슨(Rowson)에 의해 냉동 수정란에 의한 송아지 생산이 성공하였고, 1997년 현재 유럽과 북미에서는 전체 송아지의 35%가 체외수정에 의한 수정란 이식으로 태어나고 있을 정도로 체외수정도 많이 보편화되었어.

하지만 체외수정 기술이 사람에게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단다. 이는 체외 수정을 위해서는 인간의 수정 과정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과배란, 난자 채취 및 배양, 수정란 배양 및 동결 보존, 이식 등 그에 따르는 다양한 기술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어. 최초의 체외수정 시술로 정상아가 태어난 것은 1978년으로, 이 때 태어난 루이스 브라운은 최초의 시험관 아기로 불리고 있어.
▲체외수정으로 인해 태어난 최초의 아이 루이스 브라운(왼쪽)의 모습. 그녀는 지난 해 자연 임신을 통해 건강한 아들을 낳아,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임신과 출산에 전혀 이상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프레시안

체외수정은 수정 과정이 모두 시험관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난관 폐쇄, 난소 기능 부전, 희소정자증 등의 심각한 불임 원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임신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야. 그래서 처음 성공한 이래 이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고, 요즘은 미국에서만도 200개 이상의 체외수정시술 센터가 가동 중이래. 국내에서도 1985년 체외수정으로 남녀 쌍둥이가 처음 탄생한 이래, 연간 1만 건 이상의 체외수정이 시술되고 있을 정도로 체외수정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게다가 요즘에는 그 성공률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해.

체외수정의 과정은 장기요법이냐 단기요법이냐, 자연 주기법이냐 과배란 유도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이야. 과배란 유도 체외수정의 과정은 크게 과배란 유도→난자 및 정자 채취→시험관 내 수정 및 배양→이식 및 냉동→프로게스테론 투여→피검사 및 초음파로 임신 확인의 과정을 거치게 되지. 엄마는 아직 나이가 젊은 편이고 난소 기능도 좋은 편이어서 장기요법으로 체외수정을 시작하기로 했어.

장기요법과 단기요법은 말 그대로 주사 맞는 기간에 차이가 나. 체외수정을 하게 되면 과배란과 임신 유지를 위해서 체내에 여러 가지 약물을 주입해야 하는데, 이들이 모두 주사를 통해 주입되거든. 그 중 장기요법은 생리 예정일 열흘~일주일 전부터, 단기요법은 생리 시작 후 2~3일째부터 주사를 맞기 시작해. 장기요법의 경우 주사를 맞는 기간이 더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난자의 상태가 더 안정적이고 고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야.

체외수정에서는 많은 경우 과배란을 유도해. 과배란이란 배란을 과하게 하여 난자를 더 많이 배출되게 하는 거야. 보통 여성은 한 생리주기마다 1개의 난자를 배출해. 그런데 체외수정의 경우 난자를 채취하고 수정하고 이식하는 과정에서 난자가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난자를 여러 개 배출시키는 과배란을 통해 충분한 숫자의 난자를 확보한 뒤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또한 요즘에는 냉동보존 기술이 좋아져서 수정한 뒤 이식하고 남은 수정란은 동결해서 몇 년씩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배란이 더욱 많이 시도되고 있는 실정이지. 또한 과배란 유도제는 난소기능이 떨어진 경우에도 난자의 배출을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고.

엄마가 처음 맞기 시작한 주사는 배란 유도 주사로, 초산 부세레린(Buserelin acetate) 성분의 주사였어. 초산 아세테이트는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황체형성호르몬(LH)과 난포자극호르몬(FSH)을 유출시키는 합성 GnRH의 일종이야.
▲ ⓒ프레시안

GnRH(gonadotrophin releasing-hormone, 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는 말 그대로 황체형성호르몬이나 난포자극호르몬 같은 성선자극호르몬을 방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야. 난소를 자극해 난자를 배란되도록 하는 것이 황체형성호르몬과 난포자극호르몬의 역할이라면, 이 두 호르몬이 분비되도록 자극하는 호르몬이 바로 GnRH인 거지. 말하자면 GnRH는 가장 상부에서 지시를 내리는 호르몬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외부에서 초산 부세레린을 주입하면 이것이 체내에서 GnRH와 같은 작용을 하여 난소를 자극시키는 호르몬들을 더욱 많이 분비되도록 하는 거야.

합성 GnRH는 피하주사로 맞게 되어 있어. 하루에 한 번, 일정한 시간에 배나 허벅지 등의 피하에 인슐린 주사를 놓을 때 쓰는 1㎖용 작은 주사기로 주사를 놓는 거지. 그나마 피하주사는 주사 바늘도 가늘고 주사 놓기도 쉬운 편이어서 엄마는 병원에서 한 번 주사 놓는 법을 배운 뒤에는 계속 집에서 혼자 주사를 놓았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엄마 배 여기저기에는 바늘자국이 늘어갔지만, 별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을 수 있었어.

그런데 별이를 기다리는 중간에 슬픈 일이 일어났어. 엄마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야. 향년 90세이시니 천수를 누리신 셈이지만 어릴 적부터 한 집에서 같이 살아서 할머니 손에 컸기에 엄마는 많이 슬펐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슬픈 일이었지만, 엄마는 이미 별이를 만날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주사를 하루도 쉴 수 없었지. 상복을 입고 빈소를 지키면서도 엄마는 정해진 시간마다 배에 주사를 놓아야 했어. 엄마가 세상에 있도록 해주신 분은 돌아가셨는데, 엄마는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지만, 엄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어. 오히려 할머니가 떠나신 자리에 별이가 꼭 찾아와 줄 거라는 믿음마저 생기더구나. 다만 아쉬운 건, 생전에 엄마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던 할머니께 별이를 보여드리지 못했던 거야.

할머니 상을 치루고 삼오제가 지나고 난 뒤, 엄마는 다시 병원을 찾았단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인 과배란을 위한 난포자극호르몬(FSH)과 황체형성호르몬(LH)을 맞기 시작했지. 이 두 가지 호르몬이 난소를 자극해 배란을 일으킨다는 것을 앞에서 이야기했지? 그리고 그 때 여성이 폐경기가 다가올수록 난소의 반응 능력이 떨어져 이 두 호르몬의 농도가 증가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니? 따라서 폐경기 여성의 소변 속에는 젊은 여성들에 비해 이 두 호르몬이 더 많이 검출되기 마련이야. 이로 인해 예전에는 폐경기 여성들의 소변을 받아서 특수처리를 거쳐 이들 호르몬을 추출해내어 과배란에 이용하곤 했어. 하지만 최근에는 이 호르몬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물질들을 인공적으로 합성해내는 기술이 개발되어, 더 이상 사람 소변에서 뽑아낸 호르몬은 이용하지 않는단다. 사람의 몸에서 뽑아낸 물질을 이용해 주사 제제를 만드는 경우,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이 주사용 제제를 통해 심각한 질병이 전파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

엄마는 이제부터 기존에 맞던 주사에 더해 과배란을 위한 호르몬 주사를 두 가지 더 맞기 시작했어. 그런데 과배란 유도제를 맞던 엄마의 모습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갑자기 얼굴이 붓고 복수가 차기 시작한 거야. 엄마에게 과배란 주사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어. 과연 엄마는 이번에는 별이를 만날 수 있는 걸까?
성장호르몬 치료를 통한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 전파

원래 호르몬이란 동물의 몸속 특정한 선(腺) 혹은 기관에서 형성된 뒤, 체액을 타고 표적기관까지 운반되어 그 기관의 활동이나 생리적 과정에 특정한 영향을 미치는 화학 물질을 말한다. 호르몬은 체액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생성되는 곳과 작용하는 곳이 다른 경우가 많다. 성선자극호르몬의 경우, 만들어지는 곳은 뇌하수체이지만 작용하는 곳은 난소인 것처럼 호르몬 분비선과 호르몬 작용 기관의 거리는 별로 상관이 없다.

체내에서는 다양한 호르몬들이 분비되어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호르몬의 부족이나 과잉은 신체적 이상 증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각이 미친 것이 호르몬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이상증세는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르몬 치료가 도입된 초기에는 호르몬의 인공 합성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체나 동물에게서 추출한 호르몬을 치료용으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성장호르몬과 인슐린이었는데, 성장호르몬은 사체의 뇌하수체에서, 인슐린은 사람이나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하여 사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었다. 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이들 중 일부에서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reutzfeldt-Jakob disease)에 걸리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은 흔히 '인간광우병'이라는 별칭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병인데, 프리온(prion)이라는 감염성 당백질에 의해 생기는 질환으로 정상상태에서는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질환(100만부의 1)이어서 이들의 감염 경로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결과 원인은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 덕이었다. 이로 인해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이 직접적으로 전달된 꼴이 되어 질환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신체에서 직접 추출하는 호르몬은 치명적인 감염의 위험으로 인해 현재는 상당수 인공적으로 합성된 호르몬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과배란에 이용되는 호르몬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생성된 것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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