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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이동' 발 빠르게 대응한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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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이동' 발 빠르게 대응한 삼성

[왜 삼성은 프레시안을 겨냥했나 ③] '떡값'과 삼성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이 5일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인사를 추가로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이 명단에 포함된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 등 '새 정부 사정부서 인사' 2명 모두 김용철 변호사의 대학(고려대) 동기 법조인들이다.

이들은 금품 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것은 뇌물 제공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동안 제기돼 온 삼성의 금품 로비 실태를 읽으면, 우리 사회의 권력 이동 현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06년 현대차그룹에 대한 수사가 한창일 때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기업이건 털면 안 털리는 기업이 없습니다. 지금이야 회계감사 등을 통해 장부나 문서 정리가 잘 돼 있지만, 구멍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횡령이나 배임으로 엮을 수 있는 혐의가 반드시 나옵니다. 관건은 규모입니다. 문제가 많은 기업에 대해서는 이런 혐의를 통해 검찰이 유리한 입장에서 수사를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삼성 사건에서 '분식회계'나 '비자금 조성' 의혹은 핵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핵심은 '비자금을 조성해 어디에 사용했느냐'이다. 그런 면에서 검찰이나 특검의 '삼성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는 삼성그룹 비리의 본질을 파헤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의 수사이다.


삼성그룹의 전방위 로비 의혹의 전개 과정과 이 의혹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재조명해봤다.<편집자>

X파일 사건

'떡값 검사'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 2005년 7월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 과거 안기부 비밀 도청팀인 미림의 1997년 대선 직전 이학수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를 도청 녹취록을 MBC 이상호 기자가 입수해 보도한 사건이었다.

당시 대선 주자들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과 공분을 사게 한 것은 이른바 '떡값 검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미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와 실태가 낱낱이 밝혀진 뒤라 국민들에게 '뉴스'는 검사들에 대한 로비 의혹이었던 것이다.

당사자들은 부인했지만 대화록에는 분명 검찰 간부들에게 명절이나 휴가철에 떡값 명목으로 500~1000만 원의 금품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불법 도청된 내용은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에 수사할 수 없다"며 금품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녹취록에 실명이 거론된 전·현직 검찰 간부의 실명을 폭로한 노회찬 의원을 기소했다.

그렇게 사건은 잊혀지는 듯 했다. 보통 증거를 찾기 힘든 뇌물 수수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뇌물 공여'로 공범 처벌이라는 불이익을 당할 줄 알면서도 진술을 하는 뇌물 공여자의 증언이다. 보통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진술이 엇갈릴 때는 준 사람의 진술을 신뢰한다. 그러나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는 준 사람도 안 줬다고 하고 받은 사람도 안 받았다고 하기 때문에 불법 도청에 의한 증거만으로는 법적 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용철의 등장

하지만 2007년 11월 '줬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나도 공범이다"며 '자수'하겠다는 사람이다. 바로 김용철 변호사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나중에 짜 맞춘 것일지도 모르지만, 김 변호사의 '증언'은 마치 그동안 모자랐던 퍼즐 조각을 연결하는 느낌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재벌들이 정치권에 불법 자금을 전달하는 수법 중 트럭에 한 가득 돈 박스를 실어 트럭째 전달하는 '차떼기'가 유명했지만, 삼성의 '책떼기'도 있었다. 수십억 원 어치의 무기명 채권을 책 모양으로 포장해서 간소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김 변호사는 "여직원이 현찰을 책처럼 포장해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책떼기' 퍼즐 조각 중 하나이다.

이어 퍼즐을 완성한 사람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이용철 변호사였다. 이 변호사는 청와대 재직시 삼성으로부터 받은 '책 포장' 모양의 돈다발(500만 원)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떡값 검사'들에 대한 수사는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고, 삼성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변변한 소환조사 한 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증거 위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의 특성상 증거가 부족한 금품거래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치인 금품 수수 사건에서는 '진술'만으로도 고강도의 수사가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삼성의 사법권력 포섭
▲ 정치권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따라 검찰이 '내 편'이었다 '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지난 8월 검찰을 비난하던 한나라당 의원들. ⓒ뉴시스

로스쿨 취재를 할 때 신림동에서 한 고시생을 만났다. 8년 째 사법시험에 낙방한 30대 초반의 지방 출신 남성이었다. 그에게 "이렇게 청춘을 다 보낼 정도로 매달릴 가치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법률가를 과거처럼 판사, 검사, 변호사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법률가들의 시대가 옵니다. 이미 판사 출신의 정치인 두 명이 대선에서 맞붙는 걸 보지 않았습니까.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재계에도 법조인 CEO가 나올 것입니다. 이미 경제계에는 법정에 서지 않는 변호사들이 많습니다. 삼성을 보십쇼"라고 말했다.

삼성의 법조계나 관가 전방위 로비 의혹은 이런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만약 삼성이 'X파일'에 나타나듯이 1997년부터 법조계에 로비를 펼쳐왔다면 '인재 삼성'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대의 흐름을 내다봤다고 볼 수도 있다.

'법과 원칙'의 시대. 사법의 권력화 현상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급속도로 진전됐다.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여야의 굵직한 정치인들이 사법처리를 받은 뒤 칩거하게 돼 '물갈이'가 일어났고, '정치 다툼'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고소고발이 이뤄진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권력이 사법부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법조인들의 사회진출도 눈에 띈다.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299명의 국회의원 중 52명(17.4%)이 법조인이었다. 직업군 중 가장 많은 비율이다. 18대 총선에서도 법조인들의 여의도행이 이어지고 있고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장도 모두 법조인들이다. 여의도에서는 권력이 '직업: 정당인' 중심에서 '직업: 변조인'으로 넘어가고 있다. 법조인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삼성이 상당 수의 법조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를 위한 효율적 투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제단이 제기한 금품 수수 의혹 대상자들은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 국정원장 등이다.

관료 사회

삼성의 '관료 사회'에 대한 관심 또한 유별나다. 심상정 의원실에 따르면 삼성에 취업한 행정부 출신 공무원은 1995년 이후 101명에 달한다. 그 중 재경부와 금융감독기구 출신이 38명으로 가장 많았다. 행정부 고위 관료의 '전관예우'와 '정보력'을 그대로 자신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에 대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다. 그리고 재산권이 보장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번 돈을 어떻게 쓴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비난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기업이 돈을 버는 방식이 사회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힐 때는 그 기업에 대해 사회적 단죄가 내려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또 제도화는 사회 선진화의 필연이다. 그런데 이 법과 원칙, 제도가 어느 특정 집단에 의해 독점될 때 생기는 폐해는 '대통령을 잘 못 뽑는 것 이상이다. 대통령의 잘못은 그대로 언론에 노출되고 여론의 심판 구조가 형성돼 있지만, 아직 기업의 영역은 민주 시민사회의 감시 영역에서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삼성의 로비 실태를 전부 들은 김인국 신부는 "국가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또 "'삼성이 그런 거 몰랐나'라는 부패에 둔감한 태도가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번 삼성그룹의 전방위 로비 의혹은 반드시 밝혀내고 가야 할 지점이고, 이러한 로비 의혹이 의미하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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