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늘 또 병원에 갔었어. 피검사와 자궁 검사를 통해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별이는 엄마에게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이젠 엄마도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어. 사전적으로 '난임'이란 피임을 하지 않는 부부에게 1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를 말하거든. 임신 시도를 한 지 1년이 넘었으니 이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 이번에 의사 선생님은 그렇다면 자궁난관조영술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어.
자궁난관조영술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면, 아기가 생기는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해야 해. 별이도 알고 있듯이 별이는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만나서 생겨났지. 엄마의 몸에서는 한 번의 생리주기마다 하나의 난자가 성숙해서 봉선화 씨앗처럼 난포를 뚫고 배출된단다.
난자가 만들어지는 난소와 별이가 자리를 잡고 자랄 자궁은 따로 떨어져 있어. 자궁과 난소를 잇는 통로가 바로 난관인데, 다른 말로 나팔관, 혹은 수란관이라고도 불러. 나팔관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가느다란 난관의 한쪽 끝, 그러니까 난소와 접하는 쪽이 마치 깔때기나 나팔의 끝부분처럼 크게 열려 있기 때문이고, 수란관이라고 불리는 것은 수정이 바로 난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야. 난관은 난소와 자궁을 이어주는 관인데, 난소에서 난자가 배란되면 난소를 감싸고 있는-직접 붙어 있지는 않아-난관의 넓은 끝부분이 난자를 쏘옥 빨아들여 자궁 쪽으로 보낸단다.
난자는 정자처럼 꼬리가 없어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난관이 난자를 옮겨 준단다. 난관의 수축과 난관 안쪽에 난 작은 털들이 난자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거지. 난관에 의해 떠밀려 움직이는 난자는 움직이는 속도가 참 느려. 그래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수정은 자궁이 아니라, 난관 안에서 일어나. 정자는 질을 거슬러 올라와 자궁을 통과해 난관에서야 비로소 난자와 만나는 거지.
이렇게 난관은 단순히 난자의 이동통로일 뿐 아니라, 난자와 정자가 랑데부를 하는 만남의 공간이야. 그래서 난관 안쪽의 점막에서는 분비물을 계속 분비하여 정자와 난자가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이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
난관 분비물에는 난자와 정자 뿐 아니라 수정란이 건강하게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들이 들어 있어. 비유하자면 난관은 난자와 정자, 즉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로맨틱한 밤을 지내는데 필요한 모든 장비를 갖췄을 뿐 아니라, 맛있는 식당까지 갖춘 최고급 호텔이라고나 할까?
난관은 이처럼 수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야. 그런데 이 난관은 머리카락만큼 좁고 가는 관이어서 쉽게 막힐 수 있어. 난관이 막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난관이 막히게 되면 난자와 정자는 만날 길이 없어져. 마치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처럼 말이야. 그래도 견우와 직녀에게는 오작교라도 있지만, 여긴 그런 것도 없거든. 그래서 양쪽 난관이 모두 막혀 있다면 자연 임신은 불가능하게 돼.
난관은 다양한 이유로 손상될 수 있는데, 일단 한 번 손상된 난관은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참 힘들단다. 난관은 난관염이나 골반염 등 염증으로 인해 막힐 수도 있고, 복막염 등 개복 수술의 후유증으로 주변 장기 조직에 들러붙어 버리는 난관 유착 때문에 손상될 수도 있어. 또한 결핵균에 의해서도 난관이 손상 받을 수 있어.
결핵균은 폐 뿐 아니라, 장·척추·눈·피부·부신·신장·자궁 등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서 결핵을 일으키거든. 결핵이 난임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소설에도 등장하지. 엄마가 대학생 때 유행하던 로빈 쿡의 의학 소설 중 하나인 <바이탈 사인>처럼 말이야. 부도덕한 인공수정 클리닉에서 아이를 낳기 전 검진을 받으러 온 여성들의 자궁에 결핵균을 이식해 난관을 상하게 한 뒤,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게 하여 엄청난 이윤을 취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줄거리였거든.
이처럼 난관은 임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야. 그러니 역으로 난관을 막는 것은 가장 확실한 피임법이 될 수 있지. 그래서 여성들은 영구적으로 임신을 원하지 않을 경우 난관을 묶거나 잘라서 난자와 정자가 만날 길을 없애는 난관결찰술을 받곤 한단다. 그래서 난관결찰술은 영구피임법이라고 해서, 가장 확실한 피임법으로 꼽히고 있지.
자궁난관 조영술(hysterosalpingogram)? 자궁난관 조영술은 1902년 조영제 리피오돌(lipiodol)이 개발된 뒤, 1914년 콜라골(collargol)을 사용해 자궁강과 난관을 검사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다양한 조영제들이 개발돼 자궁난관 조영술에 이용되고 있다. 이 조영제들은 크게 수용성 조영제와 유성 조정제로 나누어진다. 수용성 조영제는 난관과 자궁을 빨리 통과하고 복막자극 증상이 거의 없으며 흡수도 30분 이내로 빠른 편이다. 유성 조영제는 주입 후 길게는 몇 달 동안이나 난관 및 복강 내에 남아 있을 수 있고 복막 자극 등의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유성 조영제는 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고, 조영술에 의한 임신 보조 효과(난관 청소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자궁난관 조영술은 월경이 끝나고 2~7일 사이에 실시해야 하는데, 이는 조영술의 특성상 X선으로 촬영하여야 하므로, 배란 이전에 검사를 해야 X선 조사에 의한 수정란의 손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에스트로겐의 영향으로 난관 내부가 확장되고 난관의 운동력이 증가하여 조영제의 주입이 좀더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기에 이 시기에 하는 것이 좋다. |
그런데 난관은 매우 가늘고 좁아서 보통의 엑스레이나 초음파 검사로는 막혀있는지 뚫려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자궁난관 조영술이라는 것을 하는데, 질을 통해 일종의 방사선 염료를 자궁과 난관으로 주입한 뒤, 엑스레이로 찍어서 난관이 제대로 뚫려 있는지, 자궁 내부에 수정란의 착상을 방해하는 혹이나 유착된 부분이 있는지, 자궁강의 모양이 정상적인지 등을 살펴보는 검사야. 난관이 제대로 뚫려 있다면 질로 유입된 조영제는 자궁을 거쳐 열린 난관 끝을 통해 복강으로 밀려 나가겠지만, 만약 난관이 어디선가 막혀 있다면 중간에 끊기게 되겠지.
별이를 기다려오긴 했지만, 막상 검사를 받으려고 하니 조금 망설여졌어. 처음 해보는 검사라 조금 두렵기도 했고, 산부인과의 검사가 그렇듯 누군가에게 내 몸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마냥 별이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어서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지.
또 의사 선생님은 자궁난관 조영술을 하면 오히려 임신이 잘 된다고 말해주셨거든. 조영제가 주입되어 난관을 통과하게 되면, 그 여파로 난관 내부에 혹시 붙어 있을지 모를 작은 이물질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난관 청소 효과가 있다는 거야. 마치 진흙덩이가 달라붙어 물이 졸졸 흐르는 수도관에 갑자기 센 물줄기를 흘려보내면 진흙이 모두 씻겨나가 그 다음부터는 물이 콸콸 잘 흐르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나자 검사 한 번쯤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더구나.
옷을 갈아입고 엑스레이 기계 아래 놓인 차갑고 딱딱한 검사대에 누워서 기다리자, 얼마 후 방사선과 선생님이 들어와 조영제를 주입했어. 이런 세상에! 갑자기 몸속이 타는 듯이 뜨거운 느낌이 들면서 너무 아팠어. 검사대 옆에 손잡이가 붙어 있는 것이 혹시 너무 아파서 무언가라도 쥐어뜯고 싶을 때 붙잡으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검사 전 약간의 통증과 출혈 같은 부작용이 있을 거란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아플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 약이 몸속에 주입되고 통과되는 그 몇 분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어.
몸속에 조영제를 넣는 시술은 처음 해본 건 아니었어. 오래 전에 엄마는 신장이 좋지 않아서 신장 조영 촬영을 해 본 적이 있거든. 그 때는 혈관 주사로 조영제를 주입하고는 그 조영제가 혈액을 타고 신장으로 들어갈 때까지 엑스레이 기계에 30분을 묶여 있어야 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왜 자궁난관 조영술은 아플까, 자궁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기관이라고 하던데 왜 아플까, 그런 생각만 자꾸 들었어.
그런데 자궁난관 조영술이 꼭 아픈 것만은 아닌가봐. 엄마처럼 아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니, 아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람도 많았거든. 아무리 통증은 개인차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같은 검사나 같은 처치를 받는데 왜 어떤 사람은 통증을 더 많이 느끼고, 어떤 사람은 덜 느끼거나 못 느끼는 걸까.
그런데 엄마가 찾아본 논문들에서는 자궁난관 조영술의 원리나 이 방법으로 인해 진단받은 사람들 중 난관이 손상된 사람들의 비율, 그리고 난관이 손상된 원인과 부작용까지 나와 있었지만, 이 검사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것, 즉 통증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통증을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하는 내용은 찾지 못했어.
논문에 나와 있지 않다면 의사나 간호사들의 교육 교재에는 나와 있을까? 그건 찾아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학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어떤 검사나 처치를 받는 환자들이 그 과정에서 겪을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을 찾는데 좀더 적극적이었으면 해. 그렇잖아도 아픈데, 몸도 마음도 모두 아픈데,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받는 검사나 치료조차도 아프다면 너무 힘들잖아.
검사 결과는 엑스레이 필름만 처리하면 되니까 금방 나왔어. 그런데 결과는 썩 좋지 않았어. 엑스레이 필름 상 한쪽 난관이 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왔거든. 엄마가 보기에도 한 쪽은 선명한데, 다른 쪽은 희미하게 보였어. 의사선생님은 난관은 양쪽 두 개가 있으니 한 쪽에 좀 문제가 있더라도 임신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어.
하지만 엑스레이 사진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정확히 알고 싶다면 복강경을 통해 직접 뱃속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하더구나.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내내 희미한 엑스레이 사진이 마음에 걸렸어. 그것 때문에 정말 별이가 엄마를 찾아오는데 힘이 드는 걸까?
참고 문헌
불임센터 IVF(☞바로 가기).
박노준 외, '불임환자에서 자궁난관 조영검사의 방사선학적 소견', <대한산부회지> 30권 8호, 1987.
안중걸 외, '임신 성공에 있어서 불임의 원인별 치료 내용의 검토', <대한산부회지> 35권 2호, 1992.
류정옥 외, '불임여성의 자궁난관 조영술에 관한 임상적 고찰', <대한산부회지> 35권 11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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