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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축구 때문에 '아오모리 악몽' 되살아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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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北 축구 때문에 '아오모리 악몽' 되살아 나요"

<인터뷰> 황보영이 말하는 빙상 호케이와 아이스하키

오는 3월 26일 펼쳐질 예정인 한국과 북한의 월드컵 최종예선 때문에 시끄럽다. 북한이 FIFA 규정을 받아 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평양에서 펼쳐지는 경기에 한국의 국가와 태극기 사용 문제를 허락하지 않아 결국 이 문제는 FIFA(국제축구연맹)로 넘어가게 됐다. 현재로서는 제3국 경기 가능성이 꽤 높은 편. 왜 그들은 이런 결정을 한 것일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태극기와 애국가가 연주된다는 것을 수용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어찌됐건 '코리언 더비'라는 별칭을 붙어 있는 이 역사적 경기가 평양에서 펼쳐지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게 분명하다.

아오모리의 악몽…"살아 나와줘서 고맙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주장 황보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아니 그녀는 누구보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일 것이다. 북한과 한국의 빙판에서 격렬한 스포츠 아이스하키에 땀을 흘려왔던 황보영은 "친선경기도 아니고 국가와 국가 간의 경기인데 왜 북한이 억지를 부리는지 이해가 안가요"라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한국이 지금까지 북한과 스포츠 교류를 할 때 양보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경우는 양보한다고 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너무 아쉽네요. 하지만 그쪽에서도 어쩔 수 없을 거에요.위에서 시키는 일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북한의 남북 축구대결에 관한 고집스런 결정 때문에 '아오모리의 악몽'이 연상된다고 했다. 2003년 일본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 황보영은 이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1999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던 황보영은 이 대회에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일원으로 예전의 동료들인 북한 팀과 격돌해야 했다. 그녀는 대회 직전 북한 종성신흥 중고등학교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친구 신정란의 생일 선물까지 준비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큰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옛 동료들의 반응을 싸늘했다. 경기장에서 그녀는 "웬수", "나라를 배신한 넌 인간도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호텔에서 만난 북한 팀 소속 후배에게 반갑게 말을 건네도 돌아오는 얘기는 "좋아하기는 이를 텐데"와 같은 가시돋힌 말 뿐이었단다. 북한과의 경기에서 그녀는 집중 타겟이 됐다. 그녀에게 강한 보디체크를 해 마이너 페널티로 퇴장당했던 북한의 한 선수는 빙판에 돌아올 때 드리블하는 그녀를 정면으로 받아 또 페널티로 벤치에 나가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두 팀이 인사를 할 때 그녀는 제일 뒤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과 악수를 교환하던 북한 선수들은 그녀와는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들어가 버렸다. 황보영은 당시를 떠올리며 "분한 마음에 욕이 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았다"고 했다. 한국 팀의 감독은 이 광경을 보고 황보영에게 "살아 나와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그녀는 주저 앉아서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녀는 "사실 북한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한국 팀은 이 경기에 나의 출장여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응급차도 밖에다 대기시켜 놓았을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아이스하키가 남북 스포츠 교류의 견인차가 되기를 희망하는 황보영.ⓒ프레시안

그녀는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너희들은 다 속고 사는거다"라는 말을 북한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었단다.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했다해도 그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라고 씩 웃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보고 싶던 옛 동료들과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나눴지만 그녀는 이 대회를 통해 얻은 소득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원래 내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나 봐요. 근데 이 대회를 통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내가 학교를 다녔던 함경북도 종성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네요".

2006년 춘천에서 남북한이 맞붙은 친선대회가 있을 때 그녀는 경기장을 찾았다. "북한에서 알고 지내던 오빠 2명이 왔는 데 얘기는 못했죠. 취재진들이 저에게 다 몰려서 경기도 잘 못 봤어요. 전광판에서 그 오빠들의 모습을 사진기로 담았어요. 한 오빠는 저를 계속 뚫어지게 봐서 저도 같이 보기만 했어요"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스피드 광 김정일은 빙상 호케이 팬…남북 스포츠 교류의 좋은 카드

그녀는 남북한 스포츠 교류에 아이스하키가 큰 몫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쪽 높으신 분이 워낙 스피드광이고 격렬한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빙상 호케이(북에서는 아이스하키를 빙상 호케이라고 한다)도 좋아 한다네요. 평양에 빙상장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경기 한 번 하려면 평양 몇 구역을 정전 시켜야 해요. 그래도 1년에 3~4차례는 꼭 경기를 하니까요. 위원장이 경기장에 오는지 안 오는지 선수들은 잘 모르지만 아마 자주 들른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북한에서는 2월, 4월, 11월, 12월에 빙상 호케이 경기가 평양 빙상장에서 펼쳐진다. 2월은 김정일 생일에 맞춰서 '백두산상 경기대회'를 4월은 김일성 생일에 '만경대상 경기대회'를 한다.

북한에서 빙상 호케이 선수로 활약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묻자 그녀는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쪽에 있을 때 그냥 남여 선수들이 같이 평양 유이장 같은 곳에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놀아요. '북한 아이스하키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남자 선수가 있었는데 몇 번 그냥 순수하게 만났는데 연애하는 것 아니냐고 소문이 나서 벌도 받은 적 있어요. 또 북한에서는 빙상 호케이가 체력을 많이 필요하는 경기라서 합숙할 때면 다른 종목 선수들보다 밥도 많이 나오고 육류도 많이 먹는 편이죠".

북한과 한국의 여자 아이스하키의 서로 다른 특징에 대해 물었다. 어릴 적엔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12살 때부터 빙상 호케이에 매력에 빠져 들었다는 그녀는 "북한이 아직 수준이 높죠. 한국은 대표팀도 대회를 앞두고 모여서 훈련하는 반면에 북한은 4개 팀이 있는데 정말 열심히 훈련해요. 하루에 7~8시간은 꼬박 훈련을 하고, 특히 지상훈련도 많이 합니다. 덕분에 허벅지가 두꺼워지긴 합니다. (웃음) 결정적으로 다른 건 하겠다는 의지에요. 북한 선수들은 근성과 정신력 면에서 매우 뛰어나요. 그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아마추어죠. 하지만 가능성은 많아요"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가운데도 여자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17명의 엔트리를 27일까지 제출해야 하는데 선수가 16명 밖에 안돼서다. 그녀는 "애가 백일 쯤 됐나? 그런 아줌마 선수가 한 명이 있는데 시간을 내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스포츠청소년지도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의 꿈은 여자 아이스하키 감독이나 심판이 되는 것. 하지만 이것 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지난 1월부터 방학을 이용해 네일아트 학원에도 다닌다. 동료 선수들의 손톱을 예쁘게 만들어 주며 실습을 해 이제 꽤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학원, 학교, 아이스하키 연습 등 항상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남쪽으로 오신 분들 중에 사실 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어요. 그때 나는 늦었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착실히 밟아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스타킹도 꿰매고 고쳐서 계속 신었어요"라며 함경도 '또순이' 다운 말도 했다.

"내가 아이스하키 아니 스포츠 남북교류에 장애물이 될까봐 걱정이에요. 기회가 주어지면 그 친구들하고 밤새 수다 떨면서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젠 정말 옛 동료들을 만나면 떨지도 않고 경기장에서 멋지게 시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997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기 위해 두만강에 몸을 던졌던 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의 소박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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