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있던 영국이나 유럽의 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설마"라는 반응이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중국 학생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리와 미국의 금메달 격차는 겨우 3개였다. 우리가 그 동안 준비한 게 있는데 이번엔 반드시 이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국인들은 이처럼 베이징 올림픽에 거는 기대가 크다. 21세기판 중화주의가 올해부터 시작될 거라는 기대감이다. 그 중심에는 스포츠 왕국 미국의 콧대를 누르겠다는 야심이 있다. 이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도 반가워 하는 부분이다.
미-소 냉전체제가 끝난 뒤, 그 동안 미국의 견제세력으로 군림해 왔던 동구권 스포츠의 위상이 떨어졌다. '국가주의'를 먹고 사는 올림픽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려면 대안 세력이 필요했고, 중국이 급부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라이벌의 등장은 스포츠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중국의 '스포츠 국가주의'가 폭발 일보 직전에 있다는 점에서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스포츠 중화주의' 와 중국의 운동기계들
18일 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대회 중국과 한국과의 여자 경기에서 중국 여자 대표팀의 주장 리지에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다. 3-2로 앞서고 있던 중국은 후반 인저리 타임에 한국이 얻은 코너킥을 방해했다. 리지에는 신체접촉도 없었는데 그라운드에 드러 누워 부상을 호소하는 '헐리우드 액션'까지 연출했다. 주심은 리지에에게 옐로카드를 줬고, 그녀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다. 리지에의 행동은 지탄의 대상이지만 정작 그녀는 "퇴장당한 게 억울하다"는 말을 했다. 한때 세계 정상급이었지만 최근 다소 침체하고 있는 중국 여자축구의 '승리 지상주의'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승리 지상주의'는 '스포츠 중화주의'의 산물. 73세의 마오쩌뚱이 양쯔강에서 수영을 하며 노익장을 과시할 때 "강력한 국가, 중국"의 이미지는 중국인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실제로 마오쩌뚱은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스포츠 엘리트들을 위한 '스포츠 공장'을 만들었다. 중국 '스포츠 공장'의 핵심은 6~7세부터 합숙훈련을 할 수 있는 스포츠 기숙 학교에 있다.
이 곳에서 작고 탄력있는 엉덩이를 가진 유망주는 다이빙 또는 체조에, 강한 허벅지의 소유자는 역도에, 그리고 섬세한 운동신경을 가진 어린이는 탁구 선수로 조련 받아 중국을 대표하는 '운동기계'가 된다. '움직이는 만리장성' 야오밍이나 '황색탄환' 류시앙도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된 선수들. 류시앙은 원래 높이뛰기 선수였지만 한 코치가 그의 근육 구조를 분석한 결과 허들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해 허들선수로 전향한 케이스다. 야오밍은 일반 중학교를 다니다가 워낙 키가 커서 스포츠 전문 학교로 보내졌다.
중국 스포츠 유망주들의 최종 목표는 기본 연봉 400달러짜리 공무원. 사실상 중국 대표 선수들은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 받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중국 대표 선수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운동한다. 대표적 예가 탁구스타 천치. 그는 2년 전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경기에 패하자 공을 내던지며 의자를 발로 찼다. 중국은 그에게 노동으로 죄값을 치르라는 명령을 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돼지에게 사료를 주고 잡초를 뽑는 일을 해야 했다. 그는 대표팀으로 다시 돌아온 뒤 "나는 다시 중국 탁구 대표팀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베이징 소재 국립체육센터 3층에 위치한 탁구장에 걸려 있는 큰 현수막에 써 있는 글귀가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지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쉼없이 연습하라 그리고 국가를 위해 뭔가 보답하라." 중국의 스포츠 국가주의는 군대식 규율 속에서 더욱 굳건해 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준 경우다.
도핑의 유혹 …'승리 지상주의'의 폐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고민은 도핑 스캔들에 있다. 2006년 랴오닝성에 있는 안샨 체육학교를 급습해 무작위 도핑 테스트를 한 결과 무려 450명의 선수들이 금지약물에 양성반응을 보여 충격을 줬다. 중국 체육총국은 '도핑 스캔들'을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마군단' 시절부터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중국 선수들의 약물 복용을 송두리째 뽑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는 분명 중국 스포츠의 '승리 지상주의'가 가져 온 폐해다.
1990년대 초반 세계 중장거리 육상계를 좌지우지 했던 '마군단'은 영양식으로 동충하초와 자라피를 복용해 화제가 됐다. 물론 그들은 하루에 마라톤보다 더 긴 거리를 뛰고 또 뛰는 스파르타식 훈련의 산물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마군단'을 '약물군단'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직전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마군단' 중 6명의 선수가 적발돼 올림픽 출전 기회를 박탈당했다. '약물군단' 마군단의 실체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마군단'의 핵심선수였던 왕준시아는 최근 '마군단'의 약물복용 문제에 관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네가 뭘 하던, 너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중국 격언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 과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그녀에게 약물은 잊고 싶은 과거라는 점을 넌지시 밝힌 셈이다. 하지만 금메달을 목표로 뛰는 중국 선수들에게 약물 복용은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라는 게 중국 체육계의 골치거리다.
"난 히딩크가 싫어요"
이탈리아와 호주의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전. 중국의 유명 축구해설가 후앙지안시앙은 이탈리아의 수비수 파비오 그로소가 경기 막판 애매한 상황에서 페널티 킥을 얻어내자 목소리를 높여 이탈리아를 찬양했고, 히딩크의 호주를 격하시켜 비판을 받았다. 토티가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는 순간 그는 "경기 끝났습니다. 이탈리아의 승리입니다. 이탈리아는 히딩크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만세. 히딩크 감독으로서는 자업자득입니다". 그는 이 방송이 나간 뒤 사퇴압력을 받았지만 CCTV의 해설위원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월드컵이 끝난 뒤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해 난 히딩크가 싫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는 한국을 이끌고 16강 전에서 이탈리아를 이겼다. 그건 순전히 에쿠아도르 출신의 모레노 심판의 덕이었다.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페널티 킥을 따냈을 때 난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페널티 킥도 토티가 찼으니 말이다. 토티는 4년 전 한국 전에서 퇴장당했던 선수다. 얼마나 통쾌한 복수극인가."
3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중국 축구의 '공한증'을 고려하면 그의 히딩크 혐오증은 한편 수긍이 된다. 또한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에서 '홈 어드밴티지'를 누렸다. 아마 세계 모든 국가들은 자국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행사에서 이런 이점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노력을 한다.
중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들의 스포츠 국가주의가 베이징 올림픽 어떤 종목에서 굴절된 행태로 나타날지 모른다. 미국과의 메달 경쟁이 치열해 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중국 스포츠 학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판홍은 "20세기 질곡의 세월을 견딘 중국인들은 올림픽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전쟁'에서도 모두 승리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운동 선수들은 그 누구보다 이런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 베이징 올림픽은 그들에게 분명 조국에게 뭔가 보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