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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배란, 호르몬의 아름다운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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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배란, 호르몬의 아름다운 협주곡"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5>

2004년 9월 23일

오늘은 엄마가 병원에 갔었어. 지난주에 했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말이야. 엄마는 별이가 조금 늦게 찾아오는 것 같아서 혹시나 엄마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거든. 그래서 산부인과를 찾아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했단다. 초음파 검사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혈액 검사는 1주일 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다시 병원을 찾은 거야. 막상 검사 결과를 들으려니 조금 긴장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구나.

이상이 없다니 병원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지.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대체 내 피로 무슨 검사를 했기에 이상이 없다고 하는지 궁금해졌어. 그냥 '정상'이라는 말만 했을 뿐, 무엇이 정상인지 의사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엄마도 묻지 않았거든. 뒤늦게 '의사에게 물어볼 걸'이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래서 엄마는 검사 결과 용지를 살펴보았어. 무슨 검사를 했고 그 결과는 어떤가 싶어서 말이야. 검사 항목을 보니 혈액형, 적혈구·백혈구·혈소판 수치, 간 수치, 혈당 등 기본적인 혈액 검사와 함께, 호르몬 검사(TSH, FSH, LH, 에스트로겐, 프로락틴 등), 항체 검사(B형 간염, 풍진 등), 병원균 검사(매독, 클라미디아 등)를 한 결과들이 기록되어 있었어. 그런데 이 검사의 내용이 과연 무얼 의미하는 걸까?

우선 기본 검사는 엄마의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를 체크하는 거야. 물론 임신과 출산은 병리적 상황이 아니라 생리적 상황이긴 하지만, 모체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거든. 게다가 태아는 모체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엄마가 건강하지 못하면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이상이 생길 수 있어서 가능하면 최상의 상태에서 임신하는 것이 좋지. 그래서 적혈구 수치를 봐서 빈혈은 없는지 보고, 백혈구 수치를 통해 감염 여부를 조사하고, 간 수치를 통해 간에 이상이 없는지 살피고, 혈당을 체크해 당뇨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거지. 가능하면 임신 전에 미리 검사를 받아, 이런 질병이 없는지 확인한 후 임신하는 것이 건강한 아기와 건강한 엄마로 만나는데 도움을 줄 거야.

두 번째 호르몬 검사는 난임 여부를 살피기 위해 한단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엄마는 사람들이 '임신을 못한다'는 '불임(不姙)'이라는 말 대신 '임신이 어렵다'는 뜻의 '난임(難妊)'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줬으면 좋겠어. 예전에는 치료하기 힘든 질병을 불치병(不治病)이라고 불렀는데,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지금은 난치병(難治病)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야.

'불(不)'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가능'이라는 어감은 그 자체로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부정적 파장이 크거든. 엄마도 별이를 기다리는 몇 년의 세월 동안 혹시나 별이랑 영영 못 만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가슴 답답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불임이라는 단어에 참 마음이 아팠단다. 그리고 요즘은 여러 가지 생식의학 기술이 발달하여, 과거 같으면 아기를 가지기 불가능했던 사람들도 아기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불임이라는 단어는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비록 남들보다 좀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엄마와 별이가 이렇게 무사히 만났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자, 다시 호르몬 얘기로 돌아가 보자. 저번 편지에도 썼듯이, 여성의 난자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호르몬들이 아주 정교한 협주곡을 연주해야만 가능해. 엄마의 검사지에는 갑상선자극호르몬(TSH), 난포자극호르몬(FSH), 황체화호르몬(LH), 여성호르몬(E2), 유즙분비호르몬(prolactin) 등 5가지 호르몬 검사를 했다고 하는데, 이 다섯 가지 호르몬은 그 양에 따라서 임신의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 여성의 생리 주기에 따른 호르몬과 난포, 자궁 내막의 변화 과정. ⓒihopebaby.com

위의 그래프처럼 배란에 관여하는 호르몬은 월경 주기에 따라 극적인 증감을 나타내지. 이들 호르몬들이 가장 안정적인 수치를 보일 때는 월경 기간이기 때문에, 임신과 관련된 호르몬 검사를 하기 위해 채혈을 할 때는 월경 시작 후 2-4일 사이에서 하는 것이 좋아. 그럼 각 호르몬들의 기능을 살펴볼까?

지난 번 편지에도 말했듯이, 배란 과정에는 FSH(난포자극호르몬)와 LH(황체형성호르몬)가 기능하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FSH는 난포를 자극하는 호르몬으로, 정상적인 가임기 여성의 경우 배란 전에는 FSH 농도가 2~13mIU/㎖ 정도였다가, 배란 때 가장 높아져서 6~43.5mIU/㎖를 기록하고, 황체가 형성되고 나면 다시 떨어져 0.8~13.9mIU/㎖ 정도로 측정된단다. 그런데 이 FSH는 50대 이후 월경이 끝나는 폐경기에 들어서면, 오히려 수치가 높게 나와서 18.7~161mIU/㎖의 농도로 측정되지.

이는 난소의 기능이 떨어져 있어서 높은 농도의 FSH에도 반응하기 않기 때문이야. 따라서 FSH의 혈중 수치를 검사해서 수치가 정상보다 높게 나오면 가임기 여성이라도 임신이 어려울 수 있어. 고농도의 FSH는 조기 폐경 같은 난소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으니까 말이야. 반대로 이 수치가 낮다면 뇌하수체 기능저하증이 있을 수 있지.

뇌하수체 전엽에는 젖분비호르몬인 프로락틴을 분비하는 세포(lactotroph), 키를 자라게 하는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세포(somatotroph), 성호르몬인 난포자극호르몬(FSH)과 황체형성호르몬(LH)을 분비하는 세포(gonadotroph), 갑상선자극호르몬(TSH)을 분비하는 세포(thyrotroph), 부신피질호르몬 등의 다양한 호르몬 분비세포들이 자리 잡고 있는 호르몬의 밀집 지역이야. 따라서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이 많은 호르몬들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른 문제들이 나타나게 되지.
다낭성난소증후군(polycystic ovarian syndrome)이란?

다낭성난소증후군이란 가임기 여성에게 가장 흔한 호르몬이상질환으로, 서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적어도 6~8%의 가임기 여성에게서 이 질환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 질환은 다양한 임상 증상을 보이는데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남성호르몬의 과다이며, 이로 인해 털이 많이 나고 남성처럼 턱이나 가슴 등에도 털이 자라는 다모증이 나타날 수 있다.

환자의 80~100%에서 배란 장애가 나타나고, 70~95%에서는 난소에서 작은 낭종들이 관찰되거나 많은 난포들이 나타나며, 50% 정도는 월경이 사라지는 무월경이나 월경 주기가 길어지는 희발월경 등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들로 인해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들은 임신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번째로 LH(황체형성호르몬) 역시 FSH와 비슷한 주기적 특성을 보이는데, 배란 준비기에는 0.8~13.0mIU/㎖ 정도로 측정되다가 배란 때 가장 높아져 9.9~90.0mIU/㎖까지 올라가고, 다시 배란이 끝나면 0.7~12.0mIU/㎖으로 떨어지지. LH의 농도가 정상치에 비해 높다면, 난소의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혹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을 수 있어. 특히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는 여성의 경우, FSH의 농도에 비해 LH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게 측정되는 경우가 많아.

세 번째는 E2, 즉 에스트로겐의 혈중 농도도 임신과 연관이 있어. 에스트로겐은 여성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데, 여성을 여성답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 에스트로겐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에스트론(estron), 에스트라디올(estradiol), 에스트리올(estriol) 3자매야. 그래서 이들 셋을 각각 E1(에스트론), E2(에스트라디올), E3(에스트리올)이라고 부르기도 해. 에스트로겐 집안의 첫째, 둘째, 셋째인 셈이지. 에스트로겐 세 자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둘째인 에스트라디올이기 때문에, 임신과 관련된 호르몬 검사 때 이 에스트라디올의 수치를 보고 임신이 쉬울지 어려울지를 판단한단다.

위에서 말한 호르몬들처럼 약간의 시간차는 있지만, E2도 배란 준비기에는 30-120pg/㎖의 비교적 낮은 농도를 보이다가, 배란 직전에는 90-330pg/㎖까지 올라갔다가 배란 이후 다시 65-180pg/㎖까지 떨어지지. 에스트로겐은 주로 난소와 태반에서 분비되는데, 난소 중에서도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난포와 결합조직 내에 있는 간세포에서 생성돼. 따라서 에스트로겐의 농도가 낮다는 것은 난소 기능이 저하되어서 난포 발달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 이는 결국 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로 이어지지.

이 세 호르몬은 배란 주기와 같이 작용하는데, FSH와 LH가 정상치보다 높거나 E2가 정상치보다 낮다면 어떤 이유로든 난소의 기능이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임신이 힘들 수 있지. 그래서 임신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이 호르몬들의 수치를 검사하는 거란다.

이외에도 임신과 관련된 호르몬은 몇 가지가 더 있어. 엄마의 검사지에도 두 가지 호르몬, 즉 갑상선 자극호르몬과 프로락틴이 더 체크되어 있더구나.

갑상선자극호르몬(TSH)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갑상선호르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해. 갑상선자극호르몬이란 말 그대로 갑상선호르몬을 분비시키는 기능을 하는 호르몬이거든. 갑상선이란 목의 앞쪽의 아래편에 위치한 내분비 조직인데, 후두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비 모양으로 뻗어 있는 기관이야.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갑상선호르몬은 세포의 대사 속도를 조절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기능을 하는 중요한 호르몬이야.

갑상선호르몬은 어린아이들에게서는 특히 더 중요해서 선천적으로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한 선천성 갑상선 기능저하증(Congenital hypothyroidism)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성장이 일어나지 않아 왜소증이나 정신박약 등의 심각한 이상증세를 일으킬 수 있어. 다행히도 요즘에는 효과가 좋은 인공 갑상선호르몬 제제가 나와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해서 꾸준히 복용하기만 하면 증상을 거의 완전히 완화시킬 수 있어. 그래서 요즘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5일 뒤 피검사를 통해 선천성 갑상선 기능저하증 여부를 검사한단다. 물론 이 때 수십 가지 대사성 질환들을 같이 검사하곤 하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해줄게.

어쨌든 갑상선호르몬은 신체의 균형적인 대사를 조절하기 때문에, 그 양이 많거나 부족하면 신체적 이상이 나타나. 갑상선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경우, 세포들이 늘어난 갑상선호르몬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게 돼. 그래서 몸에서 열이 많이 나게 되고 맥박도 빨라지지. 평소보다 세포들이 일을 많이 하니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자꾸 마르기만 하고, 신경세포도 흥분된 탓인지 안절부절 못하고 신경질적이 되지. 여성의 경우 월경량도 줄어들고 월경 주기도 길어져 희발월경이나 무월경 등이 나타날 수 있어.

갑상선의 기능이 떨어진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경우에는 위와 반대의 증상이 나타나. 즉, 세포의 대사 활동이 느려지기 때문에 쉽게 추위를 타게 되고 땀도 잘 나지 않아. 몸은 무기력해서 축 늘어지고 식욕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살은 더 찌는 증상을 보이지. 여성의 경우,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무배란이 나타날 수 있어 임신이 힘들어지곤 해.

이처럼 갑상선호르몬은 많아도 적어도 임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이 갑상선호르몬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갑상선자극호르몬(TSH, thyroid stimulation hormone)에 의해서 자극받아 나오게 돼. 혈중 TSH는 0.35-5.50 μIU/㎖ 정도면 정상인데, 만약 TSH가 이보다 많이 증가되어 있다면 이는 갑상선 기능이 저하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해.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면 배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갑상선자극호르몬의 수치가 높으면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자, 마지막 프로락틴(prolactin)의 차례까지 왔네. 프로락틴 역시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데, 평소에는 낮은 농도로 존재하다가 출산 후에 다량으로 분비되어 유선 조직에서 젖을 분비시키도록 명령하는 호르몬이야. 보통 여성의 프로락틴 혈중 농도는 10~25g/ℓ 정도야.

그런데 프로락틴이 정상치보다 높은 고프로락틴혈증이 있으면 아기를 낳지 않았는데도 젖이 분비되며 월경이 없어지고, 몸에 털이 많아지는 다모증 등이 생길 수 있어. 아기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게 되면 월경과 배란이 없는 시기가 늘어나거든. 그것도 프로락틴의 영향이지. 혈중 프로락틴이 높아지는 건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겼거나 프로락틴을 분비시킬 수 있는 약물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심한 스트레스나 간절하게 임신을 원할 때도 높아지기도 해. 어쨌든 프로락틴 수치가 높으면 임신이 힘들어지니 수술적 요법이나 브로모크립틴 등의 약물을 사용해 정상 수치로 조절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임신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배란은 단순히 난자가 생겨서 방출되는 과정이 아냐. 다양한 호르몬들이 아주 정교하게 맞물리는 과정이 필요하지. 그런데 이런 호르몬의 균형은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혈액 검사를 해보는 것이 정확하지. 검사를 받고 난 뒤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야 그 다음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아직 때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고 좀 더 기다려볼 수도 있고, 다른 검사를 받아볼 수도 있고 말이야. 엄마는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어. 어느덧 엄마 아빠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네. 우리 별이, 내년에는 엄마 아빠를 찾아와 줄 거지?

참고 문헌

대한생식의학회(☞바로 가기)

이재성 박사의 불임 가이드(☞바로 가기)

불임센터(☞바로 가기)

유한기·유경자, '폐경전기 여성의 월경주기 중 혈중 뇌하수체홀몬(LH, FSH)과 난소홀몬의 변화에 관한 연구', <대한산과회지>, 제28권 11호, 1985.

노정현, '다낭성난소증후군의 진단과 치료', 제23회 대한내분비학회 연수 강좌.

정인경, '고프로락틴혈증의 임상적 접근 및 치료', <대한내과학회지> 제72권, 제6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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