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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휘슬', '일본의 텃세' 넘어 '팬들의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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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휘슬', '일본의 텃세' 넘어 '팬들의 사랑'으로

핸드볼 남ㆍ녀 대표팀, 29-30일 일본과 운명의 격돌

"차라리 배구나 농구 그런 (인기)종목을 할 걸 그랬어요. 하지만 후회는 안합니다".

몇 년 전 스페인 리그에서 뛰고 있던 남자 핸드볼의 김성헌이 했던 말이다. 어쩌면 그의 말에 한국 핸드볼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1988년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부터 핸드볼이 쏟아진 찬사는 철저하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이겨낸 정신력의 승리"라는 것에 집중됐다.

특히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덴마크와 2차례 연장 접전끝에 아쉽게 패한 뒤 임영철 감독의 "뛸 팀도 마땅치 않고 인기도 없는 상황에서 열심히 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구급차까지 대기시켜 놓고 훈련에 임해왔다"는 눈물 섞인 한 마디는 최근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의 마지막 장면으로 부활해 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한국 핸드볼은 김연아의 우아한 연기와 박태환의 힘찬 스트로크와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핸드볼은 1960년대부터 한국 스포츠를 관통해 왔던 '헝그리 정신'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종목 중 하나다. 29일과 30일 일본에서 펼쳐지는 한국과 일본의 2008 베이징올림픽 핸드볼 예선 재경기에 대한 관심도 바로 이 부분에 놓여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중동의 휘슬'이다. 쿠웨이트 '오일달러'에 잠식된 아시아핸드볼연맹(AHF)이 올림픽 남자 핸드볼 예선에서 사실상 미리 계획된 중동 출신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한국이 아닌 쿠웨이트를 본선에 진출시킨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국제핸드볼연맹(IHF)에 이의를 제기했고, IHF가 이를 받아들여 예선 재경기가 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AHF는 그 뒤에도 한국과 일본을 연맹에서 제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미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한 AHF는 막대한 돈을 들여 영국, 스위스 변호사들을 동원해 승소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 AHF의 아마드 회장은 "아무 이유 없이 카자흐스탄이 올림픽 출전권을 놓치게 됐다"며 한국 여자팀을 대신해 올림픽 티켓을 로비로 따냈던 카자흐스탄을 두둔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핸드볼 연맹자체를 동서로 분리해 중동의 '폭정'에서 벗어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한국 남ㆍ여자 대표팀과 일본과의 재경기에서 '중동의 휘슬'은 힘을 쓸 수 없다. IHF가 파견한 프랑스와 덴마크의 '진짜'심판들이 출장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동시에 일고 있는, 사상 유례 없는 '핸드볼 이상열기'가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경기를 하는 일본 국가대표 축구팀의 오카다 감독마저 "축구장의 팬들이 좀 줄겠군요"라고 말했을 정도로 일본의 핸드볼 열기는 뜨겁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은 일본의 '홈 텃세'다. 일본은 한국팀에 경기가 펼쳐지는 요요기 경기장과 거리가 다소 멀 뿐더러 시설도 좋지 않은 3성급 호텔을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객관적 전력에서 일본에 앞서 있는 한국의 남녀팀 올림픽 동반진출 쪽에 무게가 실린다.

덴마크 등 유럽 핸드볼 강국의 선수들은, 물론 경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승부보다는 경기를 즐긴다. 3년 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의 리턴매치 형식으로 펼쳐진 한국과 덴마크의 친선 경기에서도 덴마크 선수들은 경기 도중 웃으면서 동료끼리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은 올림픽 결승전을 앞두고도 팀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분방하게 지낸다는 게 당시 덴마크 팀을 이끌고 내한했던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반면 평소 국내 경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4천 여명의 팬들 앞에 선 한국 선수들은 두 눈에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고 서로를 격려하기에 바빴다. 아마 일본과의 재경기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이 같은 모습은 재연될 듯 하다. 그들에게 덴마크 선수들과 같은 '여유'를 갖게 하기에는 한국 핸드볼은 아직 척박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포츠의 환경은 팬들의 성원으로 바뀌어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과거 군사정권처럼 시장논리를 무시한 채 인위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특정 종목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동의 휘슬'과 '일본의 텃세'를 넘으려고 준비 중인 한국 핸드볼이 베이징 올림픽 티켓은 물론이고, 모처럼 불붙은 팬들의 사랑까지 계속 받기를 바라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 하다.

* 복귀 신고합니다

지난 1년 여 동안 <프레시안>을 잠시 떠나 영국 레스터 소재의 DMU(De Montfort University)에서 스포츠 역사/저널리즘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처음에 품었던 뜻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꽤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좀더 좋은 기사를 통해 독자님들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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