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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자원봉사'라는 생각이라면…

[기자의 눈] 거꾸로 가는 '이명박식 자본주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상공회의장단 신년 인사회에서 태안 자원봉사자들 얘기를 꺼내며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이 자원봉사 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그 기업이 10% 성장하는 게 뭐가 어렵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근로자들이 '우리 한번 생산성을 향상해 보자'며 마음을 바꾼다면, 기업하는 분들이 넓은 마음으로 근로자들을 신뢰해서 기업 환경이 바뀐다면 기업이 목표로 한 수치가 훨씬 올라갈 것"이라고도 말했다.

'노동자들이 먼저 자원봉사 하는 마음으로 일을 열심히 일하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기업가들은 근로자들을 신뢰해 기업 전체가 성장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효율임금가설과 '자원봉사 마인드'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1914년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일당 5달러를 지급했다. 당시 보통 노동자들의 임금은 2~3달러였다. 노동시간도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였다. 파격이었다.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근률은 75%가 감소했고 이직률도 대폭 줄었다. 노동자들의 사기와 헌신도는 높아졌으며 생산성은 향상됐다. 포드 자동차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이에 대해 '효율임금가설'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경제학의 최대 덕목인 '효율성' 실현에 있어서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비용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적절한 임금 보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론이다.

포드에 관해서는 아주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지만, '효율임금가설' 부분에만 한정해 생각해보자면, 이 당선인의 '자원봉사' 언급은 '적정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서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당선인은 이 얘기를 하면서 "태안반도 문제가 생겼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을 들여 가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닭이 먼저라고만 말하는 이명박
▲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전국 상의회장당 신년인사회에 참석, 손경식 상의회장을 비롯한 회장단과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당선인은 또 "비정규직 문제가 참 많지만, 법을 어떻게 만들더라도 기업에 수지가 안 맞으면 (기업은)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면서 "경제가 좋아지면 정규직을 뽑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로 비춰질 수 있는 문제인데, 이 당선인은 '선(先) 성장 후(後) 분배' 마인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그 이면의 같은 말은 노동자들의 '선 희생, 후 보상'이라는 말이다.

얼마 전 자본주의의 최첨단이라 불릴만한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 경제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일본의 급격한 비정규직 증가가 일본 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져 일본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90년대 불황 극복을 위해 고용 유연성과 비용 절감을 위한 비정규직 고용에 적극 나섰고, 1987년 18%에 불과했던 비정규직 비중은 최근 1/3에 달했다고 한다.

덕분에 저축이 전혀 없는 가정의 비율이 23%로 1996년 10%에 비해 크게 늘었고, 내수 부진 때문에 기업들의 수출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수출의 증가는 경제성장의 착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고, 주로 내수를 담당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격차를 벌린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국제통화기금(IMF)이 경고를 내린 적이 있다. IMF는 '2006년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최근 4년 동안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27%→37%로 증가(40만 개의 정규직 감소하고, 180만개의 비정규직 생김)했는데, 최근 한국은 소득불균형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양극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경제는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당선인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더라도 그는 대선 기간에도 줄곧 '기업이 잘 돼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수준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보여줬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발언 또한 그런 인식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들이 수지가 안 맞으면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문제다. 이 당선인은 기업가들만의 대통령이 아니지 않는가.

진화하는 세계 자본주의, 70년대 마인드로 맞설 수 있겠나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자본주의는 역사상 대위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 여전히 지속돼 오고 있다. 모순에 따른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끊임없이 자기 수정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구조도 점점 더 세련돼 지고 있다. 망할 것 같은 나라가 있으면 돈을 빌려줘 망하지 않고 세계경제 체제에 남아 있게 하고, 조금이라도 위기의 징후가 보이는 경제체제에 대해서는 국경 없이 훈수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선인의 '자원봉사' 발언 같은 것을 듣고 있자면 답답해진다. 이 당선인은 "이제 노동단체도 찾아가 만나려고 한다. (노동자들이) 생각을 바꿔 다시 해 보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우리 경제를 70년대 고밀도 착취구조로 몰아가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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