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번 문화부의 인수위 보고는 문화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면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아무리 정치권력의 이동이 맹목적으로 진행되는 시점이라 할지라도 정치와 정책을 전혀 식별하지 못하는, 문화에 대한 주무부처로서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정체성조차 고려하지 않는 '줄서기' 업무보고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퇴행적인 대운하에 찬성한 문화부
문화부의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도 '한반도 대운하'의 위력은 대단했다. 문화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세를 따라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위한 '관광운하'라는 맞춤형 정책을 제시하였다. "한반도 대운하의 문화적 물길을 복원해 세계적 수준의 관광자원으로 육성하는 '관광운하'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정책적 연관성이 높고, 반대 입장이 명확했던 건설교통부조차 '백기 투항'을 했으니 "힘 없고 돈 없는" 문화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는 문화정책의 관점과 경향에서 본다면 너무나 퇴행적인 정책이다. 문화민주주의나 문화 공공성 등의 원칙만이 아니라 토건(하드웨어)정책, 중앙 정부 중심의 대규모 개발은 그 동안 추진해 온 문화생태 관광, 문화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 지역문화, 문화유산 등의 문화 자율성과 다양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규모, 문화정책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다면 구체적인 문제점은 더욱 더 크다. 예를 들어 문화유산정책만을 보더라도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국토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문화재 조사가 불가피한데, '문화재 분포조사', '수중 발굴', '조사 및 발굴 인력', '문화유산 관련 예산' 등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생태 파괴와 동시에 국토를 가로지르는 불법적인 문화 파괴가 물길을 따라 진행될 것이 확실하며, 임기 내는 고사하고 100년을 준비해서 진행해도 피해만 남게 될 것이다.
문화부가 문화적으로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기어이 묻어가고 싶다면, '관광운하'라는 얄팍한 꼼수가 아니라 차라리 '건설교통부로 문화부 흡수' 또는 '문화관광전문개발부로의 개편' 등의 화끈한 줄서기를 했어야 한다.
보수언론과 이명박정부 심중 스스로 헤아리기까지
문화부의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신문·방송 겸영'을 둘러 싼 문제였다. 이미 보수신문 재벌들은 문화부의 이번 인수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노골적으로 밥그릇을 요구해왔으며, 그 동안 문화부와 문화정책에 전혀 관심이 없던 보수언론들이 갑자기 문화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 부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문화부는 매체 융합 등 언론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신문·방송 겸영 규제를 완화하고, 신문지원 기관의 분리로 인한 지원 체계의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신문지원기관을 통합하는 한편, 시장지배적 사업자 추정 조항 등 위헌 결정이 난 규정을 정비하는 내용들이 담길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문화부가 우려대로 이명박 정부와 '명'비어천가를 불러 온 보수신문 재벌의 심중을 스스로 헤아려, 미디어문화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포기하고 보수신문 재벌과 미디어 기업의 독과점 강화를 선택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주장대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면 신문·방송 겸영 허용의 결과는 바로 견적이 나오는 정책이다. 미디어 시장은 물론 사회적 여론 형성에 있어 거대 미디어 자본의 독과점은 훨씬 더 견고해질 것이고, 독과점된 언론시장은 언론 정의가 아니라 이윤을 따라 맹목적으로 움직일 것이며,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는 독과점과 비례하여 축소될 것이다.
인수위가 그 동안 주장해 온 "이명박 정부는 결코 국민의 알 권리가 제한받지 않는 언론의 자유가 꽃피는 정부를 만들겠다"와 신문·방송 겸영 정책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며, 신문·방송 겸영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실용'이 결국 국민이나 사회 정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재벌과 돈 그리고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사이의 유착을 위한 실용이었다는 증거로 남게 될 것이다.
콘텐츠산업, 반성문부터 작성해야 할 판에…
한편 '문화콘텐츠산업 활성화'는 문화부가 이번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강조한 정책인 동시에, 인수위가 문화부에 강력하게 요청한 정책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부는 "온라인상 불법 저작물 삭제 명령, 불법 P2P 서비스업체 과태료 부과 등 행정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특별사법경찰권 도입 및 불법저작물 추적 시스템 구축 등 획기적인 저작권 보호 대책을 추진하겠다"며 전혀 획기적이지 않은 정책을 밝혔다.
다수의 저작권 당사자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규제, 단속, 처벌" 등 행정 편의주의를 위해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사법권 남용 및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만 높은 낡은 정책 기조가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문화콘텐츠산업의 독과점 문제, 저작권 당사자의 실질적인 권리 보호, 저작권 관리 단체의 복수화, 저작권 관련 공정이용 확대 그리고 지속적인 문화콘텐츠 창조력 확보를 위한 인력창출 및 정책기반 마련 등이 없는 보여주기식 문화콘텐츠산업 대처방안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콘텐츠 산업 지원 업무를 문화부로 일원화하고 지원 재원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 콘텐츠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문화부의 요청은, 지난 10년 동안 콘텐츠산업정책 발전과 관련하여 발목을 잡으며 중복 투자와 예산 낭비를 반복해 온 문화부와 정보통신부간의 지난한 밥그릇 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부가 콘텐츠산업 관련 정책이 통합성을 확보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타당할 수 있지만, 현재 정부의 정책 수준을 고려한다면 문화부나 정보통신부나 재원 확대가 아니라 반성문 작성과 재발방지 약속을 먼저 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산 확보해 건설업에 기여하려나
이외에 문화부는 문화정책 현안에 대한 정책대안을 포기한 듯 "5대 문화산업 강국 실현을 위해 최소 문화예산 2% 확보", "당인리 화력 발전소를 '문화창작발전소'로 전환", "31개 박물관 및 현대미술관 등 국립시설 무료 관람", "스포츠 세계화 재단 설립" 등 이명박 정부의 선거 공약을 고려한 맞춤형, 아이디어성 정책을 나열하였다.
문화예산 2% 확보의 경우 이날 제시된 정책기조라면 문화예산이 아무리 확보되어도 국민의 문화권리가 아니라 건설개발 사업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고,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한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정책의 창조성, 전문성 등의 측면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문화공약에 대한 구색 맞추기 정책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현안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나 문화 공공성, 다양성에 대한 정책 내용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개발주의와 시장 독점화를 지지하는 정책기조만이 남발하는 흐름 속에서 국민의 문화권, 문화복지를 둘러 싼 정책이 구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력이 선거를 통해 교체되고, 교체된 정치권력의 지향점이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대통령 개인을 비롯하여 정치권력의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사회적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제왕적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국가 정책을 통해 유지, 지속된다.
정치와 정책은 그 지점에서 다르다. 정치와 정책은 매우 유관하지만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국가정책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제왕적 독재가 아닌 이상 국가 정책은 최소한의 보편성, 공공성, 일관성, 지속성 등을 유지해야 한다.
두려움 이전에 최소한의 상식을 견지하라
문화는 그런 면에서 정책적으로 높은 수준의 공공성, 지속성, 다양성 등을 특성으로 한다. 문화는 국민의 일상과 관련되어 있지만 권력의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오랜 관심과 노력을 요구하며, 다양한 차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을 문화부의 관료들은 정치권력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 이전에 문화정책을 둘러 싼 최소한의 상식과 태도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력은 5년마다 바뀔 수 있지만, 무책임한 문화정책은 10년 또는 100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은 채 국민의 삶을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와 문화부가 '국민을 위한 실용'과 '권력을 위한 줄서기'는 다르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국민의 삶은 덜 괴로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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