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새벽 2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신촌 로터리 연세대 방면 피자헛 도로 앞에서 한 청년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다.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으며, 외국인으로 보이는 장정 6명도 함께 보인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들과 적대적인 눈빛을 교환하고 있다. 이윽고 경찰 순찰차 4대가 달려오고, 외국인들과 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청년들이 순찰차에 탑승한다. 피를 흘리던 청년은 긴급히 인근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된다.
이것이 전 국민을 분노케한 15일 새벽 주한 미군의 새벽 난동사건의 일면이다. 피상적인 이 스케치는 사건의 전말을, 진실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많다.
프레시안은 미군 병사에 의해 직접적 상해를 입은 박흥식씨(27)와 박씨의 동료 이준원씨(27, H통신 은평구 고객센터)를 만나, 사건의 정확한 내용을 취재했다. 이와 함께 이번 미군 난동 사건을 가장 먼저 조사한 시민사회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관계자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박흥식씨, 긴급수술 후 안정 되찾아, 아직 말은 못하는 상태**
사건당일 미군 존 이병으로부터 25㎝에 달하는 군용칼로 목에 상해를 입고 현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인 박흥식씨는 17일 현재 상당히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박씨는 사건 직후 병원으로 후송돼, 응급처치 및 긴급수술을 받아 천만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심각한 후유증이 없을지는 자신하지 못하는 단계다.
병실에 함께 있는 어머니 김정애씨와 박씨의 친구가 각종 시민단체와 언론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와중에도 틈틈이 박씨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앞으로 말을 할 수 있을지, 상태가 더 호전될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루빨리 흥식이가 완쾌하길 바랄뿐입니다."
박흥식씨의 어머니 말이다. 박씨는 사고 직후 신속한 응급처치와 긴급수술로 생명에는 지장에 없다. 하지만 박씨 어머니 말대로 목에 난 상처가 너무 깊은 나머지, 앞으로 말을 할 수 있을지, 완쾌가 될 수 있을지 등은 말그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씨는 밀려오는 언론사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아픈 몸이지만, 억울함과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박씨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필담'을 통해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새벽 2시, 미군6명 신촌 대로변에서 난동, 제지하던 50대 폭행**
박씨는 먼저 기억하기도 싫은 당시 상황을 담담히 글로 써 보였다.
"새벽 2시쯤 직장 동료와 함께 신촌로터리로 나왔습니다. 피자헛 앞에 50대로 보이는 아저씨와 미군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내 한 미군이 그 아저씨를 밀쳤고, 그 아저씨는 옆에 있던 꽃더미로 쓰려졌습니다. 이에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고, 그 때부터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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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말하는 '아저씨'는 피자헛 앞 노점에서 꽃장사를 하던 공진모씨(50)다. 이번 사고를 조사했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에 따르면, 공씨는 대로변에서 드러눕고 지나가는 택시를 멈춰 본네트와 범퍼를 발로 차는 미군들을 제지하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미군이 나이드신 어른에게 막 대하는 걸 보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그 사이에 끼어 (공씨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의사소통은 잘 되지 않았고, 곧 저희들과 미군사이에 실랑이를 벌이게 됐습니다."
***"현장에 있던 카투사, 그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이처럼 사건이 격화된 데에는 미군과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가 크다. 박씨는 "한국인 카투사 한 명이 현장에 있었지만, 제대로 통역을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마침 미군과 함께 있던 카투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저씨에게 사과하라'고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단지 웃기만 할 뿐 저희들의 말을 통역하지 않은 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카투사에 대한 증언은 박씨의 직장동료이자 현장에 함께 있던 이준원씨에게 좀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카투사 보고) '너네 친구들이 여기서 난동을 부리는데 왜 막지를 않냐. 빨리 아저씨에게 사과하라고 말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전혀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미군에게 뭐라고 말은 했는데, 상황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자극하는 말을 하는 듯 했습니다."
"하도 그 카투사가 하는 행동이 너무 미군 편향적이어서, 그가 한국계 미국인인 것으로 착각 할 정도였습니다."
박씨와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함께 있던 카투사가 적절하게 의사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고 미군들의 난동을 제지했다면, 그날 새벽의 참혹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개연성이 매우 높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점 때문에 박씨는 "미군도 미군이지만, 그 카투사의 행동이 더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미군들과 박씨를 비롯한 거리 시민일행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갑자기 존 이병이 군용칼을 빼들고, 박씨의 목에 갖다 댔다고 한다.
"목에 들이댄 칼은 20㎝는 족히 넘어보이는 군용칼이었습니다. 한쪽에는 톱니가 난 매우 위험스런 물건입니다. 존 이병은 사람들이 제지하는 와중에 제 목을 긋고 도망가고, 전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박씨)
"존 이병이 칼을 쓰는 장면은 보지 못했습니다.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 미군이 저 옆을 빠르게 뛰어가고, 사람들이 뒤에서 '저 놈 잡아라'하는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능적으로 그를 뒤쫒았고, 그는 이내 쓰레기 더미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흥식이는 목에서 흐른 피로 윗옷이 흥건히 젖은 상황이었습니다."(이씨)
***미군들 경찰서에서도 농담-욕설 일삼아, 한국경찰은 제지 안해**
사건 직후 박씨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됐고, 이씨는 미군들과 함께 경찰서로 조사받으러 갔다. 이씨는 경찰서 조사 와중에 미군들의 안하무인의 태도와 경찰의 무성의한 조사태도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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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은 경찰서에서도 안하무인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서로 농담을 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습니다. 이런데도 한국 경찰은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한국땅인지, 미국땅인지 순간 헷갈렸습니다."
존 이병 등은 파출소에서 서대문경찰서로 이송된 후 채 2시간도 안되게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간단한 인적사항 파악과, 상황 개요만을 조사한 후 미군당국으로 신병을 인도했다.
***경찰, 섣부른 사건 규정, 초동 수사 미흡이 진실규명-피의자 처벌 어렵게 해**
평통사의 미국팀 김판태씨는 이같은 한국경찰의 부실한 초등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군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은 초동수사가 매우 부실하게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증거인멸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24시간 초동수사가 가능하도록 SOFA협정에서 허용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어 빠른 신병인도에 대해서도 문제점를 지적했다.
"SOFA협정에 따르면 살인미수, 마약거래, 음주교통사고, 강간미수 등 12개 중대범죄에 관한 경우 기소즉시 한국이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측이 단순상해 치상죄로 범죄의 성격을 규정해버려 신병인도는 재판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군이 피의자를 데리고 가면, 실질적인 조사와 수사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사건을 축소 은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병인도 여부는 사건 진실 규명과 처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김씨의 지적처럼, 한국 경찰당국이 이번 사건을 단순상해사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신병인도는 현재로선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한국 수사당국이 신병인도 받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SOFA 합의의사록에는 '한국 수사당국이 미군당국에 특별구금요청을 하면 미군측은 '호의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을 들어 시민사회단체들은 검찰과 경찰당국에게 미군 구금요청을 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제대로된 진상규명과 피의자 처벌을 위해서는 피의자 신병인도가 선결조건인데 한국 경찰은 성급하게 사건을 '단순상해사건'으로 규정했고, 현재까지 어떠한 구금요청까지 하지 않은 것은 군사법주권을 성실하게 행사하지 않은 것이 된다.
***미군, 달러 내밀며 사건 무마 시도**
미군들의 안하무인적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군들이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일행이던 한 미군이 달러를 내밀면서 풀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 목격자에게서 들었습니다. 사람을 찔러 놓고 돈으로 해결하려하다니, 이게 어디 말이 됩니까. 한국인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그들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습니다."(이준원씨)
이씨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이씨도 그날 난투극으로 오른손이 상당히 부어있었다.
현재 이씨를 비롯해 현장에 함께 있던 나머지 동료 2명은 평소와 같이 직장에 나가고 있다. 은평구 홍은동에 위치한 박씨를 비롯한 이들의 일터(H통신 고객센터)는 15일의 참혹한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위기다. 박씨의 자리가 말끔히 정리된 채 박씨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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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어가고 있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지만, 이와 무관하게 반세기 동안 박씨나 이씨처럼 어이없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한국인이 한 두 명은 아닐 테다.
이씨는 다음의 말로 인터뷰를 갈음했다.
"미군들이 말도 안되는 난동을 부리고, 거기다가 전혀 반성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과연 이들이 우리를 동맹국으로 보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남의 나라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미군의 의식이 어쩌면 이런 사태를 불러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만큼은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확실한 처벌과, 재발방지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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