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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오만'으로 첫 단추 끼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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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오만'으로 첫 단추 끼울 건가

<고성국의 정치분석ㆍ23> 득표율 55% 목표의 함정

조선후기 거상 임상옥이 곁에 두어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렸다는 이야기로 유명해진 계영배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欹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제나라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했고 공자도 이를 보고 본받아 항상 곁에 두어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하니 욕심이 화의 근원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듯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명박 후보가 55%득표로 목표치를 상향조정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문구를 떠올렸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말은 인생사 고비고비마다 과욕을 경계하고 성찰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생활의 지혜이지만 실은 정치, 그것도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민주주의 정치를 운용함에 있어 핵심원리가 되는 관용의 정치 철학의 동양적 표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권력관계 중 가장 덜 나쁜 정치 체제로 경험칙상 정립된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핵심 원리를 '결론을 열어 놓은 대화'와 '관용에 기반한 타협'이라 한다면 이야말로 조금 모자란듯한 상태, 즉 차선에 동의하고 만족하는 과유불급의 정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 지난 13일 대구를 찾은 이명박 후보. 이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나 안 찍을 사람은 투표장 안 가도 된다"고 농담을 던지는 등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뉴시스

이명박 측은 55% 득표 목표에 대해 "대통령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안정적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국민 통합을 기반으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55% 득표 공언이 갖는 정치적 의미, 그러니까 대세가 결정됨으로써 자칫 이완될 수도 있는 캠프에 경각심을 불어 넣기 위한 정치적 수사라거나 55% 득표를 통해 이회창 측을 압박해 번거로울 것이 뻔한 총선 변수를 차제에 사전정비하고 가기 위한 총력전이라는 등의 정치적 해석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다.

일부 그런 측면이 없지 않고 또 그런 계산과 엄포가 통하는 것이 선거이기는 하나 여기서 검토하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정치적 의미와 해석이 아니라 위의 설명이 표방하고 있는 대선 후 정국 운영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선거야 이제 5일이면 끝나지만 국정 운영은 향후 5년간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니 중요도로 따지더라도 이쪽이 월등 비중이 크지 않은가 말이다.

55% 득표목표를 설명하는 위의 논리는

① 강력한 국민통합을 기반으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려면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②그러려면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보내 안정적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권의 강력한 추진력이 선거에서의 득표율이 아니라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 주장대로 전국에서 골고루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고 하더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그걸 믿고 국민의 뜻과 달리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부친다면 국정지지도는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정 운영 리더십에 있어 문제는 선거 득표율이 아니라 국정 수행 지지도인 것이다.

현대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다들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처칠을 꼽을 것이다. 이 두사람이 대공황과 전쟁을 헤쳐나오는 과정에서 발휘한 참으로 강력한 리더십이 그들의 선거 득표율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루즈벨트의 노변정담을 통한 '국민과 함께하기'와 전쟁 한복판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처칠의 담대함과 용기에 보낸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어떻게 공황을 극복하고 세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네거티브와 정략적 공방으로 얼룩진 답답한 선거전의 와중에서도 2007년, 국민의 선택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함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있는 정책을 펴나가는 유능한 정권 수립으로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기대에 적확하게 부응하는 맞춤형 후보가 없는 중에도 이명박 후보에게 민심이 쏠렸던 것은 그가 국민의 기대와 여망에 가장 가까이 와 있다고 다수의 국민이 생각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므로 '국민과 함께 하는 유능한 정부'라는 국민의 기대와 선택에 과반수 득표에 근거한 안정적 기반을 가진 강한 정부로 응답하는 것은 또 한번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결과가 될 위험성이 크다. 개발 독재 시대처럼 강한 정부를 앞세워 밀어부친다고 살려질 경제도 아니고, 지역에서 골고루 과반의 표를 받는다고 수십년 쌓여온 지역 분열과 계층 분열의 상처와 흔적들이 하루아침에 물에 씻은 듯 없어지고 국민통합이 될 리도 없지 않겠는가.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주요 정치 리더들은 지금이야말로 계영배를 곁에 두고 과유불급의 정치 철학을 내면화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첫 단추를 오만의 단추로 잘못 끼우는 실패를 또 한번 되풀이하기에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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