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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손석희 시선집중>이 '사과'하라고?"

[기고] "그럼 심의위원들은 공정하셨는가"

방송위원회가 선거법에 의해 설치, 운영하고 있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위원장 박영상)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주의' 결정을 내린데 대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MBC라디오본부는 6일 회의를 열어 선거방송심의위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앞서 MBC노조 뿐 아니라 한국방송인총연합회, 민언련 등 언론단체들도 앞다퉈 선거방송심의위 결정에 대해 "정치권 눈치보기"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시선집중>의 에리카 김 인터뷰 이후 MBC를 "정동영 방송"이라고 비난하면서 항의방문을 하고,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다른 토론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에 2차례 출연을 거부하는 등 MBC에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특정 언론의 특정 후보 '감싸기'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언론의 '중립성'과 '공정성'과 연관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선거방송위 결정이 검찰 발표 직후 내려졌으며, 심의위원들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결국 표결(징계조치에 찬성 4, 반대3)을 통해 이뤄져 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001년 <손석희의 시선집중> 담당 PD였던 한재희 MBC PD가 선거방송심의위 결정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제작진 입장에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참 만들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매일 새벽에 나오는 것도 고역이지만 무엇보다 '인터뷰 섭외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프로그램 인터뷰는 응하면서 <시선집중>을 피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유는 하나, '까칠하기' 때문이다. 진행자 손석희 교수의 물어뜯을 듯한 공격적 질문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한 사람은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시민단체 간사들까지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 '까칠함'은 사실 생존 노하우이다. 시사 프로그램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은 알파요 오메가다. 부드러운 인터뷰를 하면서도 공정성을 갖출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첨예한 사안들 앞에서 온정적 태도는 균형감각을 마비시키기 십상이다. 반대편의 입장이 되어 공격적으로 질문하는 인터뷰 기법은 그래서 나왔고, 그 까칠한 말투는 성대모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시선집중>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렇게 욕을 먹어가며 지켜온 객관성과 공정성이 이제 7년 만에 무너지게 되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시선집중>의 11월 22일 에리카 김 인터뷰 방송이 "선거에 관한 사항을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다"며 주의 조치를 내렸다. 청취자에게 강제로 '사과하라'는 판결이다.

그 단순한 과정을 다시 밝혀보겠다
▲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넷 홈페이지 ⓒ프레시안

이미 여러 번 밝혀진 바 있지만, 에리카 김 인터뷰가 방송되기까지의 사실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다. 에리카 김의 인터뷰 섭외가 성사된 시점은 11월 20일 저녁이다. 그에게 MBC 만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경 담당 PD와 첫 통화가 됐고, 수 시간 후에 (아마 그 사이에 <시선집중>에 대한 조사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통화가 이루어졌다. 단순한 과정이다.

그 다음 제작진은 한나라당의 섭외 창구인 나경원 대변인에게 전화를 했다. 에리카 김 인터뷰가 잡혔으니 똑같은 분량의 인터뷰 시간을 배정해 다음 날 한나라당 반론을 들으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나경원 대변인은 깨끗이 동의했고 다음날 홍준표 의원이 인터뷰에 나가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렇게 해서 22일 오전 그 '방송법을 어긴' 인터뷰가 방송됐고, 몇시간 후 "범죄자의 인터뷰를 방송했으니 <100분토론>및 BBK 관련 TV토론을 거부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선언이 나왔으며,

그 다음 날 한나라당 의원들은 MBC 사장실로 몰려 왔다.

심의위가 말한 '편파성'은 대체 무엇일까?

그럼 나경원 대변인과 미리 약속한 반론 인터뷰는? MBC를 그렇게 비난한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은 바로 다음날 <시선집중>에 출연했고 BBK를 주제로 40분간 구체적인 반론을 다 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남긴 "고맙습니다"란 인사말은 지금 다시 들어봐도 흔쾌하기 그지없다.

한나라당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이 과정이 편파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방송의 내용은 어땠나. 이것은 누구나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시선집중>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인터뷰 전문이 공개돼 있다. 그 인터뷰에서 손석희 씨는 '이 주장은 에리카 김 일방의 주장이다' 라는 의미의 말을 4번 했고 '한나라당의 반론을 내일 듣겠다' 는 말을 5번 했다.

누구의 눈으로 보더라도 에리카 김의 말에 동조했거나 우호적인 표현이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다음날 홍준표 의원과의 통화중에는 재반론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이 없었는데, 혹시 이 부분이 편파적이라는 걸까?

모르셨나, 언론의 의무는 '기록'이란걸

심의위가 또 하나의 위반 근거로 제시한 조항은 이렇다. "방송은 피고인, 피의자, 범죄혐의자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에는 범죄행위가 과장되거나 정당화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이는 곧 "범죄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방송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과 일치한다.

그러나 일단 에리카김은 방송 시점, 한국에서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아니었다. 그의 수배령은 12월 5일에 나왔다. 물론 11월 22일 시점에 '범죄혐의자' 라는 말은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범죄혐의자의 범위는 무얼 기준으로 해야 할까? 양심고백을 한 윤석양, 이지문은 법적으로 모두 군법을 어긴 중대 범죄행위자다. 그럼 이들의 주장을 전한 언론은 무슨 짓을 한 건가?

양심고백이라는 특수사항을 예외로 치자면, 몇 해 전 모 신문이 해외에 나가 '특종'을 한 김우중 전 회장 인터뷰는 어떤가. 신정아는? 당장 현재 대선후보 중에도 고발당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니, 공영방송사를 일개 정치인 한 명의 개인방송인양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방송사와 시청취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범죄혐의자 아닌가?

검찰의 발표를 존중한다면, 에리카김은 그 인터뷰에서 분명 거짓말을 했다. 방송 만드는 입장에서, 인터뷰에 나온 사람의 말에 거짓이 없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방송 인터뷰는 한편으로 기록의 역할을 한다. 거짓을 옹호하거나 동조하면 안된다.

그러나 그 거짓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다. 거짓을 말했다는 '진실'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으로 공개된 거짓 증언은 진실이 밝혀질 때 오히려 더 객관적인 근거로 작용한다. 당장 1999년에 한국에 들어 온 적이 없다던 이명박 후보의 말은 이 에리카 김 인터뷰를 통해 거짓인 것으로 판명나지 않았던가.

판정은 왜 검찰발표 4시간 후, 대선후보의 주장과 똑같이 하셨나?

'MBC 민영화' 운운하며 80년대식 언론관을 과감하게 선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해선 구태여 말을 보태지 않겠다. 미안하지만 우리에겐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 말에 눈썹 꿈틀거릴만한 여유가 없다. 하지만 공중파에 대고 '잘못했다'며 사죄하라는 심의위원 분들께는 질문드려야 할 게 있다.

인터뷰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 공정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구체적 근거가 무엇인가. 수많은 '범죄혐의자들'의 주장이 언론에 우글거리고 있는 어제 그리고 오늘 심의위원들은 무얼 하고 계신건가. 판정의 시점은 왜 하필 검찰 발표 4시간 후로 잡으셨는가. 판결의 논거는 왜 압도적으로 유력한 대선후보 측의 주장과 똑같은가. <시선집중>이 어겼다는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5조 1항 문구대로, "심의위원님들은 선거에 관한 사항을 공정하게 다루셨는가?"

현재 MBC 라디오는 심의위의 결정에 대해 집행정지를 신청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듣기로는 심의위 결정에 대해 집행정지를 신청한 예는 <시선집중>이 처음일 거라고 한다. 물론 MBC 라디오는 11일 방송위 전체회의에서 현명한 결정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즉각 재심청구 절차를 밟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물론 PD들은 늘 해오던 대로 매일 매일 방송을 해 나갈 것이다. 늘 해 오던 대로. 까칠하게.

* 필자는 2001년 <시선집중>의 제작을 담당했으며 PD연합회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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