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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세요? 지문 찍고 가세요!"

[기고] 국민 인권을 전세계에 내동댕이칠 정부

일본이 지난 11월 20일부터 여행자들의 지문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물론 일본 밖에서도 인권침해 논란이 뜨겁다. 세계 72개 인권단체 및 시민단체는 일본 법무장관 앞으로 항의서한을 발송하고, 인권침해 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한 해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자 810만 명 중 237만 명은 한국인. 약 30%다. 지난 9월 6일 한국의 인권단체들은 일본의 지문 채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대책을 물은 바 있다. 물론, 정부도 국회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지문정보 열람은 '허가국'에 한정"…그런데 '허가국'이 없네?!

아이러니하게도 기자회견 이틀 전인 9월 4일, 정부는 전자여권(생체여권) 도입과 여권에 지문을 수록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여권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여권에 지문을 수록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한국 정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들은 여권에 지문수록해서 내보냅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한국인들은 지문 좀 채취해주세요!"

외교통상부는 지난 5월 11일 발표한 '전자여권 도입계획'에서 "얼굴정보에 비해 본인 인증률이 현저히 향상되는 장점이 있다"고 여권에 지문을 수록할 필요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지문을 통한 본인 인증(verification)이란, 지문인식기를 통해 채취한 지문과 여권에 수록되어 있는 지문을 비교·확인해보는 절차를 의미한다.

지문이 본인 인증에 꼭 필요한 정보일까? 얼굴 사진만으로는 본인 인증이 불가능한 것일까? 국가가 개인정보를 수집·사용하는 것은 그 목적이 정당하고, 정당할 경우에도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시행하도록 헌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따라서 지문이 본인인증에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면, 여권에 지문을 수록하는 것은 위헌이다.

사실 외교통상부 스스로도 꼭 필요한 정보는 아니라고 증명해 보이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여권에 지문을 수록하기는 하지만, 여권에서 지문정보를 열람해보는 것은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특정 국가에서만 가능하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그런데 현재는 허가를 받은 국가도 없고, 앞으로 어떤 국가를 허가해줄 것인지에 대한 별다른 계획도 없다. 한국의 허가를 받지 않는 대대수의 국가에서는 지문이 없는 상태의 여권, 즉 얼굴 사진까지만 담긴 여권이 제기능을 하게 된다. 즉 본인인증에 지문은 꼭 필요한 정보는 아닌 셈이다.

"한국인이세요? 이쪽으로 와서 지문 찍고 가세요!"
▲ 지난 11월 일본에서는 외국인 방문자에 대한 지문 채취가 시작된 뒤 외국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민들의 지문을 여권에 넣고, 또 이를 외국에서도 쓸 수 있게 한다며 '생체여권' 도입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어쨌든, 여권에 지문을 수록하게 되면 최소한의 쓰임새라도 있어야 하니까 누군가는 한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 한국 여권에서 지문을 열람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외교통상부가 "지문은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라고 주장하려면, 점점 더 많은 국가를 허가할 필요가 있다. 그 국가들의 국경을 넘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받을 수 있는 안내는 다음과 같다. "한국인이세요? 이쪽으로 와서 지문 찍고 가세요!"

한국인들만! 미국·일본 등 전자여권을 도입한 대다수의 국가들은 여권에 지문을 수록하고 있지 않고, 유럽연합(EU)도 2009년부터 여권에 지문을 수록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유럽연합 회원국들끼리만 접근해볼 수 있도록 법적·기술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정한 생체여권 표준에서 얼굴 사진을 수록하는 것은 필수지만, 지문은 각 국가의 선택사항(optional)이다. 정부의 '선택' 덕분에 한국 국민들은 차별적 인권침해를 당하게 됐다.

친절하게 '인권침해' 설명했던 정부의 '뇌 구조'가 궁금하다

지문을 채취함으로써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매우 광범위하다. 신체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감시받지 않을 권리 등 그 수집방법부터 사용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인권침해가 존재할 수 있다.

현 정부도 지난 2003년, 1년 이상 체류할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지문채취를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폐지한 바 있다. "그 동안 외국인에 대한 지문찍기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고, 특히 지문찍기의 관행이나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오는 투자자들의 불만을 초래하여 외국인 투자촉진에 장애가 된다"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외국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문채취제도를 폐지한 정부가 정작 국민들의 인권은 침해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 일본이 한국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의 지문을 채취하는 인권침해 국가라면, 한국은 국민들의 인권을 내동댕이 치는 인권포기 국가이다. 외교통상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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