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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명박 찍겠다'는 이유, 정말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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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명박 찍겠다'는 이유, 정말 몰라?

<고성국의 정치분석ㆍ21>개혁세력의 오만과 정치양극화

양극화가 심각해진 지는 한참 됐지만 정치까지 양극화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명박 캠프로의 쏠림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반면 정동영 캠프는 후보가 직접 "제발 열심히 좀 뛰어 달라"고 할 만큼 한산한 모습이니 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이길 쪽에 붙는 줄서기가 본격화되는 외에도 불과 4개월 후에 총선이 치러진다는 정치 일정도 한 몫하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 의원들로서는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시되는' 이명박이 4개월 후의 공천권 행사에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 분명한 만큼, 이명박 선거를 열심히 뛰는 것을 자신의 공천권 확보와 동일시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사실 이런 정황은 이명박이 후보로 확정되자마자 현역의원들을 지역에 전진배치하고 대선 성적표를 총선 공천과 연계시키겠다고 공언하면서 이명박 캠프가 노린 정치적 효과이기도 하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에게 정동영은 '떨어질 것이 뻔한' 대통령 후보이고 따라서 대선후 적어도 한동안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후보이기 때문에, 4개월 밖에 안남은 자기 선거를 제쳐놓고 정동영을 따라다닐 "정신나간 사람"은 죽으나 사나 정동영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10여 명의 측근의원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는 이명박을 위해 뛰어야 할 이유가 100가지도 넘는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에게는 정동영을 위해 뛰지 않아도 될 이유가 100가지도 넘을 것이다. 이것이 정치양극화의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민주당과의 단일화와 합당 무산은 두고두고 뼈아픈 패착으로 작동될 듯하다. 당장의 대선뿐만 아니라 대선 직후 시작될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은 전열도 정비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한나라당의 대대적인 세몰이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 현재 개혁세력이 보수세력에 비해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진은 이명박 후보의 거리 유세 장면. ⓒ뉴시스

사정이 이러하므로, 범여권은 일종의 공황상태라 할 만큼 어수선하다. 오죽 힘들고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김근태의 실언과 사과를 보는 심정이 더없이 착잡한 이유다.

김근태의 사과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이번의 말실수를 '적절치 못한 단어선택' 정도로 생각한다면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국민의 60%가 김경준의 말을 더 믿지만 그래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모르는 걸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 중 60%가량이 이명박의 BBK연루 의혹이 밝혀져도 이명박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이유를 정말 모르는 걸까?

말이 그렇지 아무런들 원인을 모르기야 하겠는가 싶지만, 개혁진영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와 정황을 곱씹어 보면 정말로 원인을 모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민주당과의 합당과 단일화를 어찌 그리도 쉽게 포기했겠으며 문국현과의 단일화에는 또 어찌 그리 소극적이었겠는가 말이다.

비록 일방적이긴 하나 현 국면은 어쨌든 개혁진영과 보수진영간 헤게모니쟁탈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선거가 1987년과 같은 수준의 정초선거는 아니지만, 개혁헤게모니의 위기와 보수헤게모니의 복원이라는 상반된 두 흐름이 전면적으로 맞부딪치고 있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결정점에 해당되는 비중있는 선거임은 분명하다.

개혁헤게모니의 위기는 개혁세력이 지난 10년간의 집권기 동안 개혁진지를 튼튼하게 구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정운영의 미숙함과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무능세력으로 전락했고 여기에 보수세력보다 별반 더 나을것도 없는 고만고만한 정도의 도덕성 밖에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능한데다 도덕적 우위마저도 흔들린다면 '우리는 역사의 정방향에 서있다'는 주관적 주장말고 개혁세력이 보수세력에 비해 비교우위를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국민의 60%가 김경준의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해도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은 노망이 들어서가 아니라 "경제라도 살리겠다"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비록 그 선택이 개혁세력의 정치적 무능에 편승한 함량미달의 보수세력에 대한 선택이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혹 개혁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은 '우리도 하느라고 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우리가 이런 국민을 믿고 계속 정치를 해야 하느냐'는 심정을 토로할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세력적으로 보면, 이런 집단정서야 말로 오만한 독선으로 비쳐질 것이 분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을 대상화하는 이런 발상과 정서야 말로 또 다른 권위주의, 또 다른 동원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결과를 열어놓을 때 비로소 제대로 작동된다'는 쉐보르스키의 지적은 이 점에서 한국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자 성찰적 반성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시야를 20일 후나 4개월 후로 가두지 않고 10년 후 100년 후로 넓힌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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