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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과정에서 이미 땅에 처박힌 대통령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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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과정에서 이미 땅에 처박힌 대통령직

<고성국의 정치분석ㆍ20> BBK와 2007 대선

대선 D-26일인 23일도 BBK로 시작했다. 김경준 씨의 모친이 이날 새벽 '이면계약서' 원본을 들고 귀국했다고 한다.

전날인 22일도 BBK로 시작해 BBK로 끝났다. 김경준 씨 측의 기자회견을 코미디라 비아냥대는 한나라당의 논평이 나가자마자 이명박 후보를 코미디 중 코미디라 공격하는 통합신당의 논평이 바로 뒤따른다.

누가 코미디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정책도 비전도 다 내팽개쳐 버린 채 세 남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는 2007 대선판이야말로 진짜 코미디라 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선거의 향배를 사법적 문제에 맡기게 된 작금의 선거 국면이 답답하고 짜증스럽지만 어쩌랴, 이 또한 우리가 만들어 온 구태정치의 누적된 결과인 것을.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면, BBK사건은 처음부터 이명박이 8할 이상의 승률을 갖고 하는 게임이었다. 비기기만 해도 방어가 되는 챔피언 타이틀처럼.

만약 검찰이 이명박 후보를 기소한다면 더 이상 정치적으로 따질 상황이 못 된다. 이것이 2할의 가능성에 해당된다.

반면 검찰이 이명박의 혐의 없음을 공표한다면 이명박은 BBK뿐만 아니라 그동안 제기됐던 크고 작은 온갖 혐의와 의혹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이명박 대세론을 더욱 확고하게 굳힐 것이다. 선거는 그 순간 끝이다.

문제는 비기는 경우인데, 예컨대 지난번 도곡동 땅 차명의혹처럼 검찰이 유보적 입장을 밝히거나 시간 내에 공식입장을 발표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당연히 여야간 정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나 결국은 이명박의 정치적 승리로 귀착될 것이다.

검찰이 유보적 입장을 갖는다는 것은 기소할 정도의 혐의를 포착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므로 이명박의 후보자격에 적어도 심각한 법률적 문제는 없음을 반증한다고 이명박 측에 의해 주장될 것인데,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이명박 지지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법률적 소명이자 정치적 해명이 될 것이다. 22일자 <중앙일보> 여론조사는 이 점을 수치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전략적 승부처 역할을 해 온 수도권에서 이명박 지지율은 44.5%인데 이 중 59.9%가 이명박의 BBK 연루의혹이 드러나더라도 계속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가정법이 막상 현실화되면 지금의 조사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만, 어쨌든 이 조사에 의하면 이명박은 BBK 연루 의혹이 드러나는 최악의 경우에도 약 26%의 지지율을 유지하게 된다. 이명박에게서 빠져나가는 표의 53.7%가 이회창에게 간다고 조사됐지만 이를 지지도로 환산하면 역시 26%로 이명박과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일뿐 역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BBK에 모든 걸 걸고 있는 듯 보이는 정동영의 지지율은 12%에서 14%로 약간 증가하나 대세에 관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자못 비장감까지 주었던 "BBK의혹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도 책임지겠다"는 지난 11일의 긴급 기자 회견 발언은 동어반복의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발언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정치 현실이 될 유일한 가능성은 검찰이 이번에는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후 어느 시점에 어떤 계기로 이 사건을 재수사해 현직 대통령의 혐의를 밝혀내는 것인데 '검찰이 두 번 죽게 될' 이런 절묘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역시 '경제살리기'이슈 선점이 컸다. 반면 지리멸렬한 채 어떤 의미 있는 이슈도, 경쟁력 있는 의제설정도 하지 못한 여권은 BBK라는 네거티브 캠페인과 단일화라는 포지티브 이슈파이팅을 동시 추진했으나 유일한 포지티브 이슈였던 단일화 과정 관리를 실패함으로써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앞에서 살펴본 조사는 범여권의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가 어떤 경우에도 주요 변수로 다시 부상하기 어려운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단일화를 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도 하기 어렵다. 단일화 이슈는 벌써 반년 가까이 공론화되어온 이슈였으므로.

이미 최소한의 품격조차 상실한 선거지만 그런 중에도 여전히 일말의 기대는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만이라도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President에 걸맞는 Presidency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자리에 집착하라는 얘기도 아니고 후보 자리에 연연하라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대통령후보 정도 되는 정치지도자라면 자신의 위치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 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는 말이다.

권위와 품격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단일화 무산이나 BBK사건 같은 온갖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해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인품과 덕망을 부단히 갈고 닦음으로써 비로소 갖추어가는 것이다. 선거에서부터 땅에 처박힌 Presidency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 그 출발은 아마도 자신의 위치를 성찰적으로 돌아보고 말 한마디에도 역사의 무게를 담아가는 후보들의 새로운 모습에서부터 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도전하고 있는 대통령의 자리가 도박판에 판돈 걸듯 정략적으로 올인 해도 되는 그런 자리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에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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