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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오만한 초보'의 모습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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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오만한 초보'의 모습 버려라"

<고성국의 정치분석ㆍ19>박근혜와 문국현의 '선택'

장량은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후 "고(苦)는 같이 할 수 있어도 낙(樂)은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나 은거해 천수를 누렸다.

반면 고를 같이 했으므로 낙도 같이 할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나, 고를 같이 했으므로 낙도 같이 해야 한다고 무모하게 주장했던 사람들은 모두 고초를 겪었다. 토사구팽(兎死拘烹)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은 한신이 대표적 인물이다.

박근혜는 낙을 같이한다는 확실한 약속 (그는 이를 진정성이라는 비정치적인 말로 표현하고 있다)을 먼저 해 달라 했고, 이명박은 낙을 같이 할테니 염려말고 고를 같이 해 달라 했다.두 사람의 셈법을 보면서 장량과 한신이 뭐라 할 지 자못 궁금하다.

고만 같이 할지, 고와 낙을 같이 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낙을 함께 하자는 정치적 약속 또는 협약이 과연 국가 경영에 대한 사려 깊은 숙고의 결과 제안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 이명박 후보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12일 자택에서 밝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뉴시스

1997년 DJP연합은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으나 국가 경영측면에서는 크나큰 부담이 되었고 그 부담이 가중되어 결국 2년여 만에 '정치연합의 붕괴-> 국정의 일대 혼선'이라는 부메랑을 가져왔다. '낙을 담보로 고를 같이하는 정치 연합'의 이런 문제점을 생각한다면 2002년 정몽준-노무현 단일화 후 정몽준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노무현측이 오히려 잘됐다고 홀가분해 했던 정황도 십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회창의 출마로 최고조에 달했던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의 이른바 "내분"을 봉합하는데 박근혜와 낙을 함께 하겠다는 이명박의 약속이 정치적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명박이 승리할 경우 이명박과 박근혜가 낙을 함께 하면서 꾸려갈 국정운영이 과연 국민을 성공으로 이끌 것인지는 앞으로도 꼼꼼히 따지고 짚어봐야 할 문제라 하겠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동서고금을 통해 별로 성공했던 적이 없는 '낙을 같이 할 약속'으로 내분을 수습하는 동안 범여권은 미뤄뒀던 단일화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이제 때가 됐다고 판단해서인지 아니면 이회창의 등장으로 졸지에 군소후보로 전락해버린데 따른 위기의식의 발로인지 그도 아니면 단일화 말고는 달리 해볼 만한 일이 없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지금 국면에서야 갈라져 있는 여권이 어떤 형태로든 하나로 모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물론 이제 비로소 시작된 단일화가 순탄하게 진행될 거라고 예단하기는 아직 어렵다.

정동영, 이인제 간 후보 단일화 합의에 대해 문국현 후보 측이 "원칙 없는 무조건적 단일화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문국현과 범여권 사이에는 무언가 계속 어긋남이 있고 "결이 다른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범여권이 처한 지금의 현실이야말로 '무조건 단일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떤 대의명분도 한나라당과 이명박에 대항하는 '민주, 평화, 민생, 개혁 세력의 총집결'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 범여권의 정치 현실이고 범여권지지 기반의 정서이자 상식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추세와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보수진영에게 지금 국면은 지난 1년여 간 이명박이 만들어 온 '경제를 살릴 유능한 실용보수 흐름'과 이회창이 만들어내고 있는 '정통 강경보수라는 새로운 흐름'이 격돌하고 있는 국면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어느 일방이 상대의 흐름을 제압하는 순간 그 흐름은 전보다 더 강한 힘으로 밀어닥칠 가능성이 크다. 승자는 명실상부하게 보수세력의 대표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문국현 후보. ⓒ뉴시스

그러므로 어느 순간 이회창의 버티기가 무너진다면 이명박 대세론은 지금까지의 막연한 대세론과는 달리 비온 뒤 땅이 굳듯 매우 구체성 있는 대세론으로 더욱 강력하게 밀어닥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범여권이 단일화든 뭐든 판을 흔들기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면 이회창의 버티기가 유지되는 요 며칠이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범여권에게 시간이 없다는 말은 선거가 30여일밖에 안 남았다는 뜻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 볼 시간이 불과 1주일~2주일 밖에 안 남았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문국현이 여전히 추상적인 가치 논쟁 운운하면서 범여권의 통합움직임을 냉소하고 우화시킨다면 여기에서 어떻게 진정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냉혹한 정치현장에서의 정치협상이나 연대의 경험이 전혀 없는 후보이니 만큼 작금의 범여권 단일화 흐름이 생소하고 어색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문국현이 문제이지 정치현실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문국현은 자신이 완주할 것을 강조하면서 "아시아 최고 연봉을 받는 사람인데 중간에 그만둘 거면 왜 나왔겠느냐"고 말을 했는데. 이야말로 초보자의 오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정치를 국민과 지지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흐름과 구도와 세력관계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이 독단으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업정도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문국현은 지금이라도 '오만한 초보'의 모습을 버리고 그에 대한 지지를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으로 높이는 겸손함과 열린 자세로 정치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후보 단일화든 뭐든, 역사에 기록되고 국민과 지지자들의 마음에 새겨지는 종합예술로서의 정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야 비로소 아마도 마지막이 될 기회가 한번은 더 주어지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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