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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선 안 알려주는 '왕따 골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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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선 안 알려주는 '왕따 골프' 이야기

[정희준의 어퍼컷·15] 한국여자골프 완전정복 <1>

어느 방송인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얘길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기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생각해보니 맞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하지만 '내가 하고 내가 즐기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게 아니라 보는 스포츠, '국가대표' 스포츠에 열광한다. 그저 이기길 바랄 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엔 경기에서 지더라도 드라마가 있고 감동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의 경우 스포츠의 감동은 이길 때만 허용된다.

세계를 상대로 무찌르고 격파할 때 호들갑을 떨며 감동을 쥐어짠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성공하면 온 국민의 열광은 '오토매틱'이다. 월드클래식베이스볼대회(WBC)란 것도 사실은 야구가 올림픽 종목에서 탈락하자 미국이 급조한 일종의 '초청대회'인데 4강에 오르니 세계 4강이란다. 야구 하는 나라가 몇 나라나 되나. '오바'도 좀 심하다.

또 월드컵 4강에 오르니 이젠 '경제4강'이란다.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는 브라질은 빈곤계층만 3000만 명이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고 축구도 공차기일 뿐이다.

스포츠 갖고 벌어지는 골때리는 '오바'들
▲ 1998년 IMF 경제위기로 인해 온 나라가 암울했을 때 박찬호와 함께 조국을 구할 잔다르크로 여겨졌던 박세리 ⓒ로이터=뉴시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1998년 IMF 경제위기로 인해 온 나라가 암울했을 때 박찬호와 함께 조국을 구할 잔다르크로 여겨졌던 박세리. 그가 그 유명한 '맨발투혼' 끝에 US오픈을 우승하는 순간 아버지는 딸이 캐디와, 특히 상대 선수와 악수를 나누기도 전에 그린 위에 난입해 딸을 부둥켜안고 흔들어 대며 그린을 독점해버리고 SBS 카메라맨 역시 따라들어와 그린 한복판을 차지했던 추태는 국제적 망신거리였다. 그럼에도 평소 예절을 그렇게도 강조하던 국내 골프인과 언론,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다? 아니다. 4~5년 전 대륙간 골프대항전인 라이더컵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미국선수들이 유럽선수의 마지막 퍼트가 남아 있음에도 그린 위로 몰려 들어가 환호하자 유럽 언론들은 스포츠맨쉽도 모르는 무뢰한들이라고 지독하게 비난한 바 있다.

여하간 박세리의 '맨발의 투혼'은 당시 공보부가 정부수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제2의 건국' 광고에 등장한다. 배경음악으로 <상록수>가 흐르는 가운데 말이다. 솔직히 연장전에서 신발, 양말 벗고 공을 친 그 어느 구석이 '투혼'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양말 벗고 물에 들어가는 정도는 주말골퍼도 한다. 어쨌든 그 광고는 '꼴푸'와 '상록수'를 짝 지어버린, 참으로 기가 막힌 광고였다. 골프 즐기는 우리나라 공무원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절묘하고도 골 때리는 '오바'였다.

국위선양? 웃기고 계신다

우리 선수들이 이긴다고 무조건 국위선양으로 연결시킬 일은 아니다. 월드컵에서 유럽국가들을 연파하고 4강에 오르는 바람에 유럽에 있던 유학생과 교민이 난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기 바란다.

'한국낭자군'은 LPGA를 압도하면서 올해 US오픈을 'US한국여자오픈'으로 만들어버렸다. 156명의 출전선수 중 한국 국적 선수가 35명이었고 한국계까지 합하면 45명으로 출전선수의 약 30%였다. '김씨'만 열명이었다. 어느 대회는 톱10에 무려 일곱명의 한국선수들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여자골프를 무찌르고 점령하기 위해 온 듯한 이들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꽤 쌀쌀하다. 우선 표면적으로는 한국선수들 때문에 백인, 특히 미국선수들의 우승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스웨덴의 애니카 소렌스탐이나 호주의 캐리 웹까지는 같은 백인이니 별 문제가 없는데 한국인들이 거의 절반의 대회를 휩쓸자 스폰서가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백인중산층(와스프·WASP)에 의존하는 미국 골프시장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이런 현상을 따져보자면 미국의 인종차별을 탓하기 쉽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더라도 LPGA에서 활동하는 한국선수들이 미국 문화는 물론 골프 예절, 그리고 규칙조차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영어와 미국문화에 익숙치 못해서이긴 하겠지만 한국선수들은 그곳 선수들과 별로 교류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우리 선수가 우승을 하면 축하하는 이는 온통 한국선수들 뿐이다.

'정복'하고도 '인정' 받지 못하는 선수들

그리고 프로선수라면 당연히 의무감을 가져야 할 소속 리그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없다. 미국 프로골프대회는 대부분 대회 전날 일종의 전야제 성격의 프로암대회를 갖는다. 지역주민과 출전선수들이 한 조를 이뤄 라운딩 하는 것이다. 프로골프를 홍보하고 특히 지역주민들에게 일종의 팬서비스를 선사하기 위해서인데 참가자는 별도의 참가비까지 내고 참여한다. 그런데 상당수 한국선수들은 같이 라운딩 하는 사람을 무시하듯 냉담하게 대해 참가자들이 라운딩 후 주최측에 항의하는 일이 종종 있어 LPGA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특히 문제는 미국에서 '골프 대디'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한국 아버지들이 경기 중 딸에게 수신호와 한국말로 코치하는 등 규정위반을 하고 또 이를 문제 삼는 외국 선수들과 시비까지 벌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2003년 골프 100대 뉴스에는 한 중견골퍼와 에티켓 논쟁을 벌인 미셸 위 아버지 위병욱이 46위, 한국의 골프 대디가 48위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미국선수 잰 스티븐슨이 "아시아선수가 투어를 망친다"고 한국선수들을 비난했고 LPGA는 한국선수들에게 코스에서 부모와 한국말로 이야기하지 말라는 권고를 해 인종차별 시비에까지 휩쓸렸다. 우리는 종종 승리에 매몰되어 그 승리를 놓고 온갖 자화자찬성 논리비약을 하면서도 과정에 대한 성찰을 곧잘 잊어버린다.

'바짓바람' 창조한 골프대디들, "내 딸은 내가 지킨다"
▲ 미셸위 아버지 위병욱씨와 어머니 서현경씨가 미셸 위 선수의 연습라운드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선수들의 아버지가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데엔 몇가지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다. 우선 여성의 사회진출이 제한된 한국사회에서 많은 부모는 딸을 문화, 예술이나 스포츠 쪽으로 진출시킨다. 아무리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졌어도 중간관리자 이상을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자유직'이나 '프리랜서' 분야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골프의 경우 미국에 진출하면 일종의 로드매니저가 필요하다. 프로선수가 미국에서 캐디와 함께 움직이려면 일년에 15만 달러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 아버지가 딸의 캐디가 되는 첫째 이유는 바로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다. 둘째, 밖에 내보내는 딸을 당연히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매우 아버지다운 염려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골프 대디들이 외국 언론의 입방아에까지 오르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이다. 사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부모의 눈에 차는 변변한 코치가 없었다. 한국의 골프는 역사도 짧고 선수도 소수였기 때문에 몇몇 이름있는 선수는 있어도 권위 있는 코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 코치라고 해 봐야 어차피 싱글 수준인데 역시 싱글 수준의 아버지라면 당연히 자기가 더 낫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결국 골프 대디들은 자식의, 그리고 자기 가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사명감에 손수 딸을 가르치려 들게 되고, 스폰서계약도 직접 챙기게 되고 이역만리에서 대륙횡단하며 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딸을 위해 핸들도 손수 잡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은 박사골퍼도 있지만 과거엔 선수건, 코치건 골프장 직원 출신 아니면 학력도 보잘 것 없는, 출신 배경도 의심스러운(?) 이들이 많았기에 자식 맡기기에는 맘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딸자식인 다음에야. 그래서인지 박세리의 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골프코치라는 데이비드 리드베터가 딸에게 지도한 스윙을 '내 딸은 내가 안다'며 간섭하는 과도한 열의(?)를 보이다 결별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어린 '브레드위너'들

한국에서 자식에게 골프를 시킨다는 것은 사실상의 투자다. 일단 골프의 길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면 그곳엔 '사생결단'만이 있다. 따라서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게 되고 오직 승리를 위해 학업은 포기하고 '골프기계'가 된다. 아버지가 직장을 관두는 것은 흔한 일이다. 사실상의 도박이다.

어린 나이의 자식의 미래를 오직 하나에 고정시키고 그 외 자녀의 감수성이나 취향, 그리고 다양한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일찍이 포기하고 모두 배제시켜 버린다. 그리고 스포츠가 상업화되면서 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욕망과 등치된다. 자식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미래 브레드위너(breadwinner·생계 책임자)의 역할을 부여한다. 선수가 프로인 이상 그를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

마냥 자랑스럽고 그저 즐거우신가

그런데 우리는 마냥 즐겁다, 마냥 자랑스럽다 한다. 골프 좋아하시는 분들 혹시 연습장에서 코치한테 맞는 초등생 보신 적 없나. 골프팬들, 언론이 박세리를 위시한 한국의 낭자군단이 야기하는 문제나 이를 고민하는 LPGA에 대한 이야기 들어 본적 있는가. '혹사' 수준의 어린 시절을 보내는 그 수많은 골프 꿈나무의 교육환경을 염려하는 기사 본 적 있는가.

부모에 등떠밀려 나홀로 유학을 떠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들춰본 적 있는가. 그의 부모가 '자녀학대' 수준의 문제를 야기한다며 미셸 위를 불쌍히 여기는 미국 여론에 대해 한국 기자들이 관심 가져 본 적 있는가. 그냥 '일등' 가지고 '우리끼리' 놀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도 허구헌날 애국타령에 국위선양 빵빠레 일색이다.

다른 종목의 선수들도 그렇지만 우리의 골프낭자군은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온통 떠받들기만 하다가 박세리가 망가졌듯 이들의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에 대해서 적당한 꾸짖음도 필요하다. 그게 약이다. 맨날 세계화를 떠들면서 '정복'하려고만 들고, 남을 이해하려는 배려도 친구 삼으려는 노력도 없으면 되겠는가.

(2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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